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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향廻向할 줄 아는 불자가 되자

정우頂宇 스님
본지 발행인 | 구룡사 회주


세존世尊께서 이 땅에 오신 참뜻은 열 개開, 보일 시示, 깨달을 오悟, 들 입入, 개시오입開示悟入이라 하셨습니다.
진리眞理의 실상實相인 생명력生命力을 열어 보이시여, 우리 중생들로 하여금 깨달음의 세계에 들어오도록 이 땅에 출현出現하셨던 것입니다.


원력보살願力菩薩은 환생還生이라 하고, 업력중생業力衆生은 인과因果로 세상에 태어난다고 합니다. 오고 싶어서 온 것도 아니고, 가고 싶어가는 것도 아닙니다. 업력으로 어느 세상인가에 태어나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법구경法句經』에서는 󰡐배움을 좋아하지 않으면 마음이 오그라든다.󰡑 하였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옹색하고 인색한 마음은 마른 완두콩 송곳으로 구멍 뚫기보다 더 어렵다󰡑고 하신 것입니다.
협소해진 마음은 세상살이에 끊임없이 치우치고 집착하는 얽매임이 수갑처럼 채워져 가고 있습니다. 그 무엇에도 집착하지 않는 삶이 지혜智慧 있는 이들의 현명賢明한 수행법修行法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옷깃만 스쳐도 지중한 인연因緣이라 하였습니다. 하물며 부부로 맺어진 인연, 부모와 자식의 인연, 형제지간의 인연은 얼마나 소중하겠습니까?
이렇게 소중한 인연들은 모두가 다 법연法緣으로 이어져야만 합니다.
부처님께서 제자들에게 “자! 길을 떠나자. 처음도 좋고 중간도 좋고 끝도 좋으니, 조리 있는 말로 알아들을 수 있도록 설하자. 모든 이의 이익과 안락과 행복을 위해서 길을 떠나자. 갔던 길로 되돌아오지 말고 두 사람이 함께 가지도 말자. 나도 우루벨라 병장촌 고행자들이 있는 곳에 가서 법을 설하리라.” 전법의 길을 간곡하게 말씀하셨는데, 하물며 한 울타리 안에 살고 있는 가족들이 함께하지 못해서야 되겠습니까.
동쪽으로 기운 나무는 동쪽으로 넘어지기 마련입니다. 이처럼 한 가족은 인연이 깊다는 것을 인식하면서 부처님 품안에서 잘 살아갔으면 합니다.


『화엄경華嚴經』에 󰡒나는 일체중생들을 제도하기 위해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을 일으킨 것이지, 내 자신의 편안함이나 안락을 위해서 위없는 도를 구하려고 보리심을 일으킨 것이 아니다.󰡓 하신 이 가르침을 가슴 깊이 새기면서 살아갔으면 합니다.
우리들 내면에는 서로 다른 수많은 자기의 모습을 지니고 있습니다.
지금보다 훨씬 나은 모습도 있고 지금보다도 못한 모습이 있습니다.
지옥地獄·아귀餓鬼·축생畜生·아수라阿修羅·인간人間·천상계天上界에 살고 있을 수많은 생각들이 공생共生하고 있습니다. 우리들은 몸이 우선입니다. 근본은 생각에서 출발하지만, 이 몸을 잘 다스려야 하는 것 입니다.


믿음은 도의 근본이요 공덕의 어머니라 하였습니다. 믿음은 곧 부처님의 법신法身이기 때문입니다. 믿음은 법신에서 나오는 에너지입니다. 믿음은 중생들을 해탈解脫에 이르게 하고 번뇌煩惱와 망상妄想을 소멸하게 합니다. 계정혜戒定慧 삼학三學이 탐진치貪瞋癡 삼독三毒을 여의게 하는 것은 믿음이 곧 불보살의 화현이기 때문입니다.
어떤 이는 지옥地獄을 부정합니다. 그에게는 지옥은 없습니다. 그러나 고통과 괴로움은 있습니다. 불교는 그것을 지옥이라 가르치고 있습니다.
인과因果와 윤회輪廻를 부정하면 불자佛子라 할 수 없습니다.
불법승佛法僧 삼보 전三寶前에 돌아가 의지하고 오계五戒, 십계十戒 등을 받아 지니고 실천해야 하는 불자는 반드시 인과를 믿어야 합니다.
선인선과善因善果요 악인악과惡因惡果입니다. 콩 심은데 콩 나고 팥 심은데 팥 나는 이치를 믿어야 합니다. 이와 같이 계정혜 삼학을 지니고 살면 탐진치 삼독은 저절로 사라지게 되어 있습니다.
믿음 없는 중생은 부처님을 만날 수 없습니다. 부처님께서 설하신 가르침을 믿지 않는 이들은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욕심이 많은 사람입니다.
화를 잘 내는 사람은 어리석고, 화를 잘 내는 것만큼 욕심이 많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니 화내던 마음을,  감사하는 마음으로 작은 것에도 고맙고 감사한 마음을 잊어버리지 말고 살아가야 합니다.
오늘의 내가 있기까지 보살핌과 은혜를 주었던 이웃들에 대한 보답을 할 줄 알아야 합니다. 갚아야할 빚을 내생까지 모아두었다가 갚으려 하지 말고 미리미리 갚을 줄 알아야 합니다. 주변에서 우리들과 함께 더불어 살아가고 있는 어렵고 힘든 이들에게 어른으로부터 받았던 감사함을 이웃들에게 전해주는 것을 잊지 말아야할 것입니다.


내가 과거에 지은 업業의 결과는 자작자수自作自受요 자업자득自業自得이며 자승자박自繩自縛한 것들입니다. 그러니 그에 대한 과보는 반드시 받는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빚지고 안 갚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저는 빌려준 것은 잊어버리는데, 남에게 빌린 것과 도움 받은 것은 잊어버리지 않고 살아가려고 합니다. 그런데 세간에서는 빌려준 것은 평생 동안 기억하는데 빌려 쓴 것은 금방 잊어버린다고 합니다.
신세진 것은 꼭 갚아야 합니다. 잊지 말아야 합니다. 고마움을 지니고 살아가야 합니다. 인과응보因果應報라, 과거에 지은 일들에 대한 결과는 언젠가 반드시 갚아야 합니다. 언젠가는 반드시 갚아야 될 빚이라면 금생에 이 몸으로 그 빚을 갚는 것이 낫지 않을까 싶습니다.
금생에 그 업을 받지 않으면 지옥, 아귀, 축생, 삼악도三惡道에 태어나 힘든 세상을 살아가야 한다고 합니다. 그러니 금생에 빚은 짓지 말아야 합니다. 빚을 지었다면 금생에 갚아야 합니다. 우리 불자들은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현장에서 신심信心으로 발심發心 해서 진지하고 여법如法하게 회향回向할 수 있었으면 합니다.


소유한 자는 절대 회향할 수 없습니다. 소유한 물건은 내려놓을 수 없습니다. 내 것이라고 집착하며 쥐고 있는 한 이 손은 자유롭지 못합니다.
내려놓으면 편안합니다. 붙들고 있으면 한없이 불편합니다.
그러니 내려놓고 자유롭게 인생을 살아갈 수 있었으면 합니다.
온 가족이 부처님의 품안, 따뜻한 가정에서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asanjungwoo@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