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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마경의소

박경희
도서출판 중도 디자인실장



대승경전으로서 출가와 재가를 자유자재하게 넘나들면서 사부대중에게 설법을 펼쳤던 󰡔유마힐소설경󰡕에 대한 길장의 주석서 󰡔유마경의소󰡕가 동국대 불교학술원 HK연구교수인 김호귀 박사의 번역으로 도서출판 중도에서 출판되었다. 널리 알려져 있듯이 󰡔유마경󰡕은 비유와 역설의 수사학을 통하여 대승불법의 도리를 펼치면서 불교의 수행에 대한 지침으로서 큰 역할을 해왔다.
특히 중국의 선종에서는 보리달마로부터 가장 보편적으로 활용되었고, 초기선종의 시대부터 선종의 문헌에서도 어떤 경전보다도 빈번하게 인용되어왔고, 현재에도 가장 보편적으로 읽히고 있는 대승경전 가운데 하나이다.
본 󰡔유마경의소󰡕는 경전의 원문에 대한 낱낱의 대목마다 주석을 붙이는 방식으로 전개되어 있어서 길장의 학문적인 스타일을 잘 보여주고 있다. 전체적인 내용에 대해서는 방편혜와 실혜의 이혜二慧를 중심으로 전개하고 있다.
한편 길장은 󰡔유마경의소󰡕에 앞서 󰡔정명현론󰡕의 저술을 통하여 󰡔유마경󰡕의 대의를 비롯하여 경전 전체의 구성과 의의 등에 대하여 저술하여 당시에도 사부대중이 󰡔유마경󰡕을 이해하는 데 큰 역할을 하였다.


책 속으로
대저 지극한 취지趣旨는 언설이 없지만 현묘한 책들이 널리 퍼져 있고, 법신은 형상이 없지만 미혹한 중생은 곧 형체가 있다고 말한다. 때문에 언설이 없지만 언설로 말하지 않을 수가 없고, 형상이 없지만 형상으로 나타내지 않을 수가 없다. 언설이 없지만 언설로 말하지 않을 수가 없기 때문에 장대한 교망이 생사의 바다에 펼쳐져 있고, 형상이 없지만 형상으로 나타내지 않을 수가 없은 즉 일체의 유위법이 환幻과 같은 줄 이해하는 지혜(如幻智)에 머물면서 육도를 유희한다. 이런 까닭에 이 󰡔유마경󰡕에 대하여 인人과 법法의 두 가지로 들어보면 다음과 같다.
그 인人이라는 말은 소위 정명淨名이다. 청정한 덕성이 안으로 충만하고 아름다운 명성이 밖으로 충만하여 천하에 널리 가득하므로 정명이라 말한다. 어찌 번뇌의 원적怨賊을 항복시키는 것에 그치겠는가. 모든 외도를 제어하고, 또한 오백의 성문이 스스로 불민不敏하다고 말하며, 팔천의 보살이 상대하지 못하도록 만들어버렸다.
말한 바 법法은 소위 불사의해탈不思議解脫이다. 안으로는 공용功用이 없어서 사량에 의거하지 않고, 밖으로 교화가 유미幽微하여 사람들이 헤아릴 수가 없으므로 부사의라고 말한다. 자재하게 노닐면서도 진루塵累에 구속되지 않고, 말씀과 관찰이 함께 어울려서 심心과 혜慧의 두 가지 지혜가 항상 병립하므로 해탈이라 말한다.
나 길장은 대저 개황開皇 연간(581~600) 말기에 몸에 병이 생겼지만 스스로 『현장玄章(정명현론淨名玄論)』을 지었다. 그리고 인수仁壽 연간(601~605)의 종말에 명을 받들어 『문소文疏(유마경의소維摩經義疏)』를 찬술하였는데, 언사가 거칠어 이본二本(정명현론淨名玄論과 유마경의소維摩經義疏)이 동일하지 않았다. 무릇 이 『유마경』은 중성衆聖의 영부靈府이고 방등方等의 중심中心이며 구경究竟의 현종玄宗이고 무여無餘의 극설極說이기 때문에 제불이 탄식하였고 제자들이 손목을 불끈 쥐었다. 무릇 지극한 취지가 오묘하고 그 법문이 심묘하였지만, 혹자或者는 끝내 오시五時에 망집妄執하여 이치가 미만未滿인 것처럼 말하기도 하고, 혹 사교四敎를 허담虛談하여 그것을 반자半字라 일컫기도 하였다.
나 길장이 삼가 성문誠文을 살펴서 그 득실을 고찰해보니, 마땅히 오시五時 및 사시四時에 천착하는 것을 폐지하고 일극의 玄宗을 내세워야 할 것이다.
(첫째로) 이 『유마경』의 (방편품)에서는 ‘그대들이여. 이 몸은 무상無常하여 심히 환염患厭할 것이다.’고 말한다. 그러므로 반드시 불신佛身을 누려야 한다. 불신은 곧 법신이다. 무릇 생사의 무상을 비방(毁)하고 법신의 상주를 찬탄하여 이 생사를 멀리하고 저 법신을 기뻐한 즉 통별通別의 교敎를 성취하고 흔염欣厭의 관觀을 내세워야 한다. 만약 생사가 무상하고 법신이 다시 기멸한 것이라면 곧 모두 염기厭棄해야 할 것인데, 무엇을 기뻐할 것인가.
또한 생사의 무상을 설함으로써 상견을 타파하고 법신의 상주를 설명함으로써 단멸을 배척하여 이변二邊을 원리하고 중도를 드러내야 한다. 만약 생사와 법신이 모두 무상한 즉 무릇 상常을 배척해야 한다. 아직 무상을 타파하지 못한 즉 병을 씻어냄이 고루 미치지 못하고 이理를 드러냄이 충족되지 못한다.
-제1권 제1 천심淺深을 결정하다 중에서-


『유마경維摩經』의 완전한 명칭인 『유마힐소설경維摩詰所說經』은 달리 『불가사의해탈경不可思議解脫經』·『유마힐경維摩詰經』·『정명경淨名經』·『불법보입도문삼매경佛法普入道門三昧經』·『설무구칭경說無垢稱經』이라고도 하는데, 반야부 계통 경전 이후에 성립된 경전으로서 반야개공般若皆空의 사상에 의거하여 대승보살의 실천을 보여준다.
비야리성의 장자인 유마힐(維摩詰, Vimalakīrti)이 소승의 견해를 지니고 있는 불제자들을 일깨워 대승에 눈뜨게 하려고 방편으로 병을 보이고 문병을 유도하여 찾아온 그들에게 대승의 이념에 바탕한 보살행에 대하여 설법한다. 후대에 화엄종·삼론종·천태종·선종 등에서도 널리 유통되었다.
후진後秦의 구마라집(鳩摩羅什, Kumārajīva)이 406년에 장안長安의 소요원逍遙園에서 번역하였는데 3권 14품이다. 현존의 한역이역본으로 오吳의 지겸支謙이 번역한 『불설유마힐경佛說維摩詰經』(유마힐소설부사의법문지칭일명불법보입도문삼매경維摩詰所說不思議法門之稱一名佛法普入道門三昧經) 2권본 14품, 당唐의 현장玄奘이 번 역한 『설무구칭경說無垢稱經』 6권본 14품 등이 있다. 한역의 7부 가운데 현재는 3부가 전한다.
① 후한後漢 령제靈帝 중평中平 5년(188) 엄불조嚴佛調 고유마古維摩
② 오吳 황무黃武 2년(223)부터 건흥建興 연간(252~253)에 걸쳐 30여 년 동안 지겸支謙이 번역한 18부경 가운데 2번째로 유마힐경維摩詰經 2권이 들어 있음. <현존>
③ 서진西晉 혜제惠帝 원강元康 원년(291)에 축숙란竺叔蘭이 비마힐경毘摩詰經 3권
④ 축법호竺法護 대안大安 2년(303) 유마힐소설법문경維摩詰所說法門經
⑤ 동진東晉의 지다밀祗多密이 유마힐경維摩詰經 4권
⑥ 후진後晉 홍시弘始 8년(406) 상안대사常安大寺에서 사문 1200명 참여 유마힐소설경維摩詰所說經 3권 번역 <현존>
⑦ 당唐 정관貞觀 연간(627~649) 당안 대자은사大慈恩寺 설무구칭경說無垢稱經 6권 <현존>
『유마경의소』를 통해서 길장이 제시해주고 있는 내용을 제명과 명칭과 종지로 나누어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제명題名의 근본은 불이법문不二法門이다. 일도一道가 청정하기 때문에 ‘불이不二’라 말한다. 진극眞極으로 통하는 궤도이기 때문에 ‘법法’이라 말하고, 지극히 오묘하여 허공까지 통하기 때문에 ‘문門’이라 칭한다.
불이不二에도 무릇 삼단계가 있다.
첫째는 중인衆人이 불이不二라 말하지만 불이不二가 무언無言인 줄을 모르는 것으로 소위 하下의 단계이다. 둘째는 문수의 경우에 비록 무언불이無言不二가 無言인 줄 알았지만 무언無言이라는 말이 남아 있는 것으로 소위 中의 단계이다. 셋째는 정명의 경우에 무언불이無言不二가 무언無言인 줄 비추어보아 무언불이無言不二라는 말조차도 없는 것으로 소위 상上의 단계이다.
삼단계의 설명은 이치의 심천을 설명한 것이지 중생에 대응하는 가르침을 변별한 것이 아니다. 불이不二의 이치는 말하자면 부사의의 본문本門이고, 중생에 대응하는 가르침은 말하자면 부사의의 적문迹門이다. 본문이 없으면 수적이 있을 수가 없기 때문에 이치를 인하여 교敎를 시설한 것이다. 그리고 적문이 없으면 본문을 드러낼 수가 없기 때문에 교에 의거하여 이치에 통하는 것이다. 문수는 곧 이치를 설했지만 언설이 없었기에 그 언설은 지극한 이치이건만 또한 이치라 칭할 수가 없고, 정명은 이치를 비추어보았지만 언설이 없었기에 그 이치에는 언설이 없어서 비로소 이치에 나아갈 수가 있었다. 이치에 계합된 무언이기 때문에 무언無言으로 말할 수가 있었고, 이치에 계합된 형상이기 때문에 무상無像으로 형상을 드러낼 수가 있었다.
중인衆人은 이치에 계합된 무언無言이 불가능한데 어찌 무언無言으로 말할 수가 있겠으며, 이치에 계합된 무상無像이 불가능한데 어찌 무상無像으로 형상을 드러낼 수가 있겠는가. 때문에 문수의 언설은 얕고 정명의 침묵은 심오하다는 세 단계로 논한 뜻이 여기에 있다.
-해제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