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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누구인가

정우頂宇 스님
본지 발행인 | 구룡사 회주


어린 시절 기억 중에 ‘안녕히 주무셨습니까? 진지(식사) 잡수셨습니까?’
온 국민이 힘들고 어려웠던 가난했던 시절, 우리들 인사말이었습니다.
코로나 신종 바이러스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요즘, 편안들 하십니까?
수백만 명이 코로나에 확진되고, 수십만 명이 세상을 떠났다는 뉴스를 접하고 있습니다. 우리도 대구, 경북에서 시작된 모 종교집단의 감염으로 수천 명의 확진자들은 우리 사회에 어려움을 겪게 하던 일들이 엊그제 같은데, 우리의 코로나 대처 방법은 세계인들이 놀라워했고, 그러한 국민들에게 찬사를 보내주고 있습니다. 이 공적은 의료진들의 헌신적인 노력과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적극적인 대처와 국민들의 질서의식 결과가 아니었는가 생각을 합니다.
이 얼마나 위대한 국민인가를 다시 한 번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고 있습니다. 세상은 인드라의 망처럼 연결되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모두가 평안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불자님들께 인사를 드립니다. 성불 하세요. 성불 하십시오.


세상에서 가장 힘든 일이 인생무상人生無常이라고 합니다. 세상에 가장 큰 괴로움이라 합니다. 그러니 그 무상함에서 우리는 자유로워져야 합니다.
첫째는 인생무상, 그 가르침을 아무리 들어도 싫증내지 말아야하고,
둘째는 바르게 관찰해야 하며,
셋째는 가르침을 따라서 능히 실천해야 하고,
넷째는 그 가르침을 깨달음에 회향하고자 부단히 노력해야 합니다.
그 사람에게는 어찌 후생後生을 근심하고 걱정할 일이 있겠습니까.
어제도 잘 살았고, 내일도 잘 살아갈 것이기 때문입니다.
욕지전생사欲知前生事면 금생今生에 수자시受者是요,
욕지내생사欲知來生事인댄 금생今生에 작자시作者是라 하였습니다.
과거 현재 미래가 강물 흐르듯 이어져 있지만 우리들의 분별심分別心으로 과거 현재 미래인 어제 오늘 내일로 나눠서, 전생의 내 모습을 보고 싶으면 금생에 받고 있는 내 모습을 보고, 다음생의 내 모습을 보려면 금생에 내가 하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되면 알 수 있다는 가르침입니다.
인과응보因果應報는 자작자수自作自受요 자업자득自業自得이며 자승자박自繩自縛하는 그 이치를 알 수 있게 할 것입니다.
종단의 여러 스님들과 함께 ‘9명 스님들의 수행이야기’를 다룬 다큐멘터리를 보면서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지난해 겨울, 상월선원에 천막을 치고 무문관에서 수행하는 모습을 담아낸 영화인데, 스님들의 순수한 수행의 덕목이 우리들의 본심이었구나, 하는 마음을 가지면서 많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저는 히말라야 설산에 가서 극한 추위와 만나도 보았습니다. 티베트에서는 공기압 때문에 느껴야 했던 극한의 현상들도 체험으로 맛보았습니다. 저를 출가시켜주시었던 스님께서는 가난한 어린 시절 출가 후 절에서 힘들고 어려운 환경에 생긴 냉병으로 고생하시면서도 약으로 다스려지지 못하는 일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9명의 스님들 수행이야기’를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가 더 마음에 와 닿았는지 모르겠습니다. 힘든 환경에 노출되었지만, 그러면서도 서로를 격려하고 다독거리는 그 눈빛과 따뜻함 속에서, 몸은 힘들고 어려웠지만 마음은 어느 곳에 있을 때보다 더 좋았을 것이라는 그 마음을 헤아려 보았습니다.
그러니 더 잘 살아야 하겠고, 부처님 제자로 살아가고 있는 모습이 자랑스럽고, 고맙고, 기쁜 마음으로 서로 수순하며 가슴 깊이 다짐을 해 보았습니다.
탐진치貪瞋痴 삼독심三毒心과 재색식명수財色食名壽 오욕락五欲樂의 번뇌煩惱와 망상妄想은 스스로가 만들어내는 고통과 괴로움입니다.
그래서 『열반경涅槃經』에 이르시기를, “몸도 마음도 고요한 사람, 몸은 고요하나 마음은 번다한 사람, 몸은 번다한데 마음은 고요한 사람, 몸도 마음도 번다한 사람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몸도 마음도 고요한 사람은 부처님입니다. 몸은 고요한데 마음이 번다한 사람이 있습니다. 몸은 분주한데 마음은 늘 고요한 사람도 있습니다. 거리에서 몸도 마음도 번다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힘든 환경에 노출된 모습들을 보면서 현재 우리의 모습을 오버랩해서 느끼는 『무상계無常戒』의 법문을 떠올렸습니다.


“부무상계자夫無常戒者는 입열반지요문入涅槃之要門이요, 월고해지자항越苦海之慈航이라. 시고일체제불是故一切諸佛이 인차계고因此戒故로, 이입열반而入涅槃하셨고, 일체중생一切衆生도 인차계고因此戒故로, 이도고해而度苦海하니라.”
무상계는 열반에 이르는 요긴한 문이며, 고해를 건너는 자비의 배이니, 모든 부처님들께서도 이 계를 인연하여 열반을 성취하셨고, 모든 중생들도 이 계를 의지하여 고해바다를 건너느니라.


업력중생業力衆生이라, 지옥地獄 아귀餓鬼 축생畜生 아수라阿修羅 인간人間 천상계天上界를 윤회하고 있지만, 극락極樂은 윤회하는 세상이 아닙니다.
원력보살願力菩薩이 왕래하는 곳이고, 원력보살이 다녀오는 곳이며, 원력보살이 일생보처一生補處에 오르는 곳이라 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극락세계에 가서 지내는 것보다는 그러한 힘과 용기와 지혜의 결정체인 공덕의 반야용선으로 살아가는 이들과 함께 마음을 나누고 발원하면서 살아가고자 합니다.


달라이라마 스님은 「수행의 씨앗과 자비심」이라는 법문에서 이렇게 설하셨습니다.
“일상생활에서 얼마나 오롯이 다른 이들을 위하는 이타심을 내셨습니까. 화를 줄이고 싶은 마음은 있었습니까. 그렇다면 화를 줄이기 위해서 어떠한 노력을 하고 계십니까.”
세상을 살다보면 화도 납니다. 화를 내려고 하는 것은 아닌데 화가 날 때가 있습니다. 내가 화를 내려고 하지 않았는데도 화가 나는 그 마음도 결국 내면을 깊이 들여다보면, 욕심이 과해서 일어나는 분심과 어리석음이 치성해서 일어나는 성냄이라는 가르침입니다. 그러니 그 마음이 분주하고 번다한 환경에 노출되어 있더라도 조복 받아 여여적적如如適適한 모습으로 살아갈 수 있어야 한다는 가르침입니다.


“오직 중생을 위하는 마음으로 보리심을 일으키는 것은 자비심에 의해서 가능합니다. 자비심은 모든 수행의 씨앗이기 때문입니다. 여전히 나만을 위하는 마음만 일어난다면 이번 생에 그 고통과 괴로움을 감당하기 어렵지만 그것은 당연한 현상이라는 것을 잊어버리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모든 수행의 씨앗은 자비심에 있다는 것입니다. 자비심은 선근과 보리심이 증장해야 일어나는 현상입니다. 서산대사는 『선가귀감禪家龜鑑』에서 “허물이 있으면 참회하고 잘못한 것이 있으면 부끄러워할 줄 알아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허물을 고쳐 스스로 새롭게 되면 그 잘못은 잘못이 아닙니다. 이내 사라집니다. 참회란 지은 허물을 뉘우쳐서 다시는 그것을 범하지 않겠다고 맹세하는 일입니다. 부끄러워함은 안으로는 자신을 꾸짖고 밖으로는 그 허물을 드러내는 일이라 했습니다. 사실 마음이란 본래 비어있어서 고요적적하기 때문에 죄업이 깃들 곳은 없습니다. 그것을 우리들은 충분히 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은,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으로 우리가 어떤 일을 할 수 있느냐가 진정한 가치를 결정짓는 일이라 하였습니다.
내가 살아가면서 가지고 있는 물건들이 아니라, 내가 누구인가 하는 것은 다른 것이 아니라, 우리가 그것으로 어떤 일을 하면서 살아갈 수 있는 인생을 살고 있는 것인가를 인생에서 봐야할 것들입니다.


우리가 그렇게도 기도를 통해 간절히 원하고 있는 것도 우리가 살고 있는 현장에서 그 어떠한 어려움에도 흔들림 없이 평상심으로 그 문을 통과할 수 있는 믿음이 마음의 안정을 유지하는 것은 매우 바람직한 일이고 중요한 일입니다.
원하는 바에 대한 확신과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신념으로 나타나는 덕목일 것입니다. 누가 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내 스스로가 해 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