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담바라꽃이 피었습니다
우리 부처님께서 6년간의 설산(雪山) 고행으로 도를 이루시고 법륜을 굴리신 이후, 33조사를 통해 불법은 이심전심 전해졌으며 또한 각 국으로 전파되어 각각  여러 종파를 이루었습니다. 이렇듯 불법의 전래 과정과 그 이어온 불맥을 우리는 흔히 ‘우담바라’라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우담바라라는 꽃은 중생들의 육안으로는 그 실체를 파악할 수 없고, 오직 혜안이 밝은 이나 법안을 가진 사람만이 그것을 바라볼 수 있는 것입니다.

33조사를 통해, 그리고 이후 수 많은 나라의 스님들이 갈래갈래 꽃잎 하나씩을 피워 지금 우리의 우담바라는 갖추어져 있습니다. 또한 앞으로도 각 국을 통해 꽃잎 하나하나에 빛을 더하고 그 꽃에 생명력을 더할 스님들이 얼마나 세상에 나올지는 부지기수라 하겠습니다.

부처님으로부터 전해져 내려온 이래 우리나라에서도 부처님 법은 여러갈래로 나뉘어져 있는데, 만약 종이와 먹으로써 부처님의 종지를 나타내고자 한다면, 보조일종(菩照一宗)은 이 땅에 떨치고도 남음이 있을 것입니다. 이러한 가운데 묘리가 있으며, 우리는 그 의미를 깊이 새겨 보아야 합니다.

우리가 앉아 있는 이 법당은 깨치기 위한 방편으로써 존재하는 것입니다. 수행을 하는 스님들과 부처님을 따르는 이들을 위하여 세워진 것이지, 여기에서 무슨 종(宗)을 나타내는 것은 아닙니다. 종이라는 것은 눈에 보이는 것도 아니요, 종이라 하는 것은 그 보이지 않는 가운데 궁극에 위치한 깨우침의 거처인 것입니다.
그러기에 절은 설사 없어져도 부처님의 종지는 없어지지 아니하고, 더하고 모자람도 없으며 그대로 이어져 내려오는 채 보이지 않는 우담바라는 그 어디에도 존재해있게 되는 것입니다.

총상적으로 볼 때 온 세상이 한 송이 꽃이라면 각국에 퍼져나간 불맥은 꽃잎이라 하겠습니다. 우리가 앉아 있는 이 법당을 놓고 보더라도 총상적으로는 우담바라꽃이요, 별상적으로는 기와 한 장, 서까래, 기둥, 문짝 등등이 그 꽃잎에 해당된다고 하겠습니다.

우리가 수행하는 방법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이는 불법에 많은 방편과 천칠백 가지의 공안이 있고 팔만사천 세행이 있다고 하지만, 개별적 견지에서 본다면 그 모두는 각각 총체적 불법을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담바라꽃을 눈으로 보고 손으로 잡으려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마음의 눈으로만이 보여지고, 마음의 손으로써 거머줘야 그 실체를 획득할 수 있습니다.
지금도 우담바라의 광명은 시방세계에 두루 변조하며 모든 중생들이 그 혜택을 입고 있지만 눈 어둔 이 보지 못하고, 귀 어둔 이 듣지 못하고 있습니다. 부디 온 중생들이 모두 자신의 자등화(自燈火)를 밝혀 시방세계에 두루 반조하기를 바랍니다.

- 불기 2533년 야단법석 법어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