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엄경(華嚴經) 이세간품(離世間品)에 '이른바 진실한 법이니 말한 대로 수행하는 연고며, 취함을 여의는 법이니 능히 취함과 취할 바를 다 여의는 연고며, 다툼이 없는 법이니 모든 의혹과 다툼이 없는 연고며, 고요한 법이니 모든 뜨거운 번뇌를 멸한 연고며, 욕심을 여의는 법이니 모든 탐욕을 다 끊은 연고며, 분별이 없는 법이니 반연하는 분별이 아주 쉬는 연고며, 생사가 없는 법이니 허공같이 동하지 않는 연고며, 함이 없는 법이니 나고 머물고 멸하는 여러 모양을 여읜 연고며, 본 성품의 법이니 제 성품이 물들지 않고 청정한 연고며, 모든 오파제(烏波提 외도나 스승이 깨닫는 열반) 열반을 버리는 법이니 모든 보살의 행을 내어 닦아 익히고 끊어지지 않는 연고니라.
이것이 열이니 만일 보살들이 이 가운데 편안히 머물면 여래의 위없는 광대한 법을 얻느니라.' 

얼마 전 여래사 만불전에서 일천 부처님을 원불(願佛)로 봉안(奉安)하는 점안식이 있었습니다.

11월 중에는 적멸보궁 통도사에서 친견법회를 하였던 부처님 정골사리를 여래사에 모시고 친견법회를 하고자 불자들은 지극한 마음으로 기도정진중에 있습니다.

그리고 부처님 사리 친견 법회 중에 고승대덕(高僧大德) 큰스님네를 모시고 설법회도 봉행할 것입니다.

15년 전, 구룡산 자락에 터를 잡고 만불전 불사를 가건물 법당에서 시작할 때, 통도사에 모셔진 석가여래 부처님 금란친착가사를 구룡사에서 모셔와 친견법회를 하였습니다.

그 때 많은 불자들과 맺은 인연은 만불전을 회향할 수 있게 하였고 그 인연은 도심 포교의 전법도량이 될 수 있도록 하는 힘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십여년이 지난 오늘, 여래사 불사로 이어지게 한 것입니다.

이번 사리친견 정진법회 중에 모실 삼천불은 이 시대 불자들이 원불로 모시는 부처님입니다.

불모(佛母) 석정 스님이 조성하신 신중탱화 점안식과 만불전에 모실 관세음보살님과 대세지 보살님은 조성중에 있으니 곧 모셔오게 됩니다.

그 동안 구룡사에서 불자들과 함께 얼마나 많은 일들을 하였습니까. 화엄경산림 백고좌법회며 대승경전 산림 백고좌법회며, 만불전에서 만불명호 사경법회며,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불사를 해 왔습니다.

그 중에서도 서울 근교의 신도시에 포교당과 유치원을 건립했던 일들은 서로가 칭찬해 주어야 할 것입니다. 특히 경제적으로 어려운 시기에 일산 신도시의 여래사(연건평 3,000평) 불사는 이 시대의 불교 현실로 보면 불가사의한 불사였다고 생각됩니다.

어찌 불보살님의 가피력이 아니며 불자들의 신심어린 원력의 회향이 아니겠습니까?

도심포교의 현장에서 살아온 15년을 뒤돌아보면 불자들의 보살핌이 울타리가 되어서 마음 먹은 대로 큰 어려움없이 많은 일들을 할 수 있었음을 가슴 깊이 새기고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이젠 어디론가 떠나야 할 때를 생각해 봅니다.

그래서 자유로워질 수만 있다면 떠나야 할 것입니다. 허허롭게 살고 싶습니다.

마음 속에 간직한 맘 잊어본 적 없었습니다. 다만 미력한 힘이나마 보탬이 될 곳에 머무르고 있었을 뿐입니다.

출가정신을 저버린 적은 없었습니다. 업(業)이 무거워 지혜가 부족하고 용기가 없었을 뿐입니다. 가까운 스님들 중에 지극히 나를 이해하시고 용기를 주시는 스님들이 없는 것도 아닙니다.

종단적으로 어려움을 겪은지도 벌써 2년이 다 되어가고 있습니다. 종단이 어려울 때 분연히 일어서기도 하였고 내[我] 있을 곳에서 불자들과 함께 열심히 살아오기도 하였지만, 그 동안 여래사 불사를 할 수 있었던 것은 불자들의 간절함을 버릴 수 없었기 때문인 듯합니다.

그래도 떠난다 하니 잘 지은 여래사로 가겠지 하는 불자도 있을 수 있을 것입니다. 아니면 그 곳(히말라야)으로 가는 건 아닌가 하는 마음들도 있어 보입니다.

스님들 중에는 절대로 떠나지 못할 것이라고 말하는 스님도 계십니다. 그러면서 원력보살이라 치켜세워주기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젠 떠나야 합니다. 그러면서도 떠날 수 없는, 아직도 해야할 일들이 너무 많습니다. 여래사 만불전 불사며, 각 포교당과 유치원 불사의 분양금 정리며, 대학식 대학원인 불교문화대학원을 세우고 싶은 서원은 사라지려 하지도 않습니다.

이런 번다한 생각 자체가 속(俗)된 것인 줄 알면서도, 번뇌 가득한 가슴을 들여다보면 아파오는 슬프디슬픈 일들이 있습니다. 얼마나 더 긴 시간이 필요한 것일까요?

출가의 본분사가 무엇입니까?

잠 못 이루는 밤의 깊이는 가을을 타고 넘기에는 너무 어둡습니다. 그래도 우리네 인생을 들여다 볼 조용한 시간이 필요합니다.

다 꿈인 것을, 꿈 속에서 부질없는 꿈을 꿈인 줄 모르고 지내다가 깨어나서도 꿈을 꿈인 줄 모르는 인생이 되어서야 되겠습니까?

어느 날, 이 몸조차 떠나보내야 하는(부서진 수레는 굴러가지 못함) 아픔과 갈등이 있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지난 세월의 깊이만큼이나 참 많은 생각과 이야깃거리가 있습니다. 그러다가 들여다보니 나이답지 않게 이력서에 세속적 화려한 경력들이 두 장 가득 채워져 있었습니다.

여래사 불사가 회향되어지는 날, 저기 저 히말라야 만년설이 덮인 곳에 마지막 쉼터를 잡고 조사선(祖師禪)이든 여래선(如來禪)이든 마지막 만나야 할 진정한 주인공을 찾아나서야 할 것입니다.

그 무엇에도 집착하지 않는 수행자의 모습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종단에서도 살펴주어야 합니다.

아마 아침에 일어날 때 천년만년 살 것처럼 하루를 시작하고 저녁이면 밤이 깊어지도록 잔무처리하며 오늘이 마지막 밤이지 하면서 잠자리에 들었던 일들을 되살아나게 합니다.

그 기다림은 오늘도 불자들과의 만남이 되고, 그 기다림은 오늘도 더 열심히 살아갈 수 있는 힘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