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남자여, 어떤 것을 진실한 생각이라 하는가. 모든 번뇌를 끊어버리는 것이니라.

선남자여, 사랑을 닦는 이는 탐욕을 끊어버리고, 가엾이 여김을 닦는 이는 성냄을 끊어버리고, 기쁨을 닦는 이는 즐겁지 아니함을 끊어버리고, 버리는 마음을 닦는 이는 탐욕과 성냄과 중생이란 모습을 끊어버리나니 그러므로 진실한 생각이라 하느니라.

선남자여, 보살마하살의 네 가지 한량없는 마음은 모든 선근의 근본이 되느니라.

선남자여, 보살마하살이 만일 가난한 중생을 보지 못하면 사랑하는 마음을 낼 인연이 없고 사랑하는 마음을 내지 못하면 보시할 마음을 일으키지 못하려니와, 보시하는 인연으로써 중생들로 하여금 편안한 즐거움을 얻게 하나니….

보시할 적에 마음이 속박되지 않고 탐착함을 내지 아니하면 결정코 아뇩다라삼먁삼보리로 회향할 것이며, 그 마음에 의지함이 없고, 허망한 생각을 끊어버리고, 두려움이나 명예나 이양을 위하지 아니하여, 인간과 천상에서 받는 즐거움도 구하지 아니하고, 교만한 마음도 내지 아니하며, 은혜 갚기를 바라지 않고, 다른 이에게 속아서 보시하는 것도 아니며, 부귀를 구함도 아니며, 보시를 행할 때에는 받는 이가 계행을 가지거나 계행을 파하거나, 복밭이거나 복밭이 아니거나, 선지식이거나 선지식이 아니거나 보지 말며, 보시할 때에 정당한 그릇인지 그릇이 아닌지도 보지 말며, 보시할 때나 보시할 곳이거나 아닌 것도 가리지 말아야 하며, 또 흉년과 풍년도 알은 체하지 말고, 원인이나 결과나 중생이다 중생 아니다, 복이다 복 아니다 하는 것을 보지 말아야 하며, 보시하는 이와 받는 이와 재물을 비록 보지 아니하며, 내지 끊는 것과 과보를 보지 않더라도 항상 보시를 행하여 끊기지 말아야 하느니라.

선남자여, 보살이 만일 계행을 가짐과 계행을 깨트림과 내지 과보를 본다면, 마침내 보시하지 못하며, 보시하지 아니하면 보시 바라밀다를 구족하지 못하고, 보시 바라밀다를 구족하지 못하면 아뇩다라샴막삼보리를 이루지 못하느니라.'
≪열반경≫


며칠 후면, 음력으로 신사년 정월입니다. 모든 사찰에서는 정초기도가 있을 것입니다.

시간의 촉박함을 알리기라도 하듯, 양력으로는 1월달이 벌써 다 가고 있습니다. 세월이 참 빨리도 지나갑니다.

금년에는 히말라야 설산을 배경으로 찍은 사진들을 모아 달력을 5만 부 이상 만들어 불자들에게 나누어 드리기도 하고, 연하장을 대신하여 이곳저곳 보내기도 하였지만 늘 아쉽기는 마찬가지입니다.

또 구룡사에서는 10차 인도성지순례를 성도재일 마치고 오십여명의 불자들이 다녀왔습니다. 저도 함께 갔다가 먼저 돌아와서는 오랜만에 강원도 산간 토굴에 있는 도반 스님께 갔었습니다.

작은 공간 벽에 작년도 달력에 붙여 있는 금년 1월달 달력을 걸어놓고 좋아라 하는 모습에서 감격스러운 고마움을 느낍니다. 불사중이라 여러 가지로 어려움도 있었지만 포교의 일환으로 만들어 온 달력이라 어디선가 걸려 있는 달력을 보게 되면, 보람 같은 것을 느끼게 되기도 합니다. (다음에 저승갈 때 염라대왕이 나에게 인간 세상에서 무슨 일 하다가 왔느냐고 물으면 매년 달력도 만들었다고 해야겠지요.)

금년 순례 길에는 유난히 히말라야 설산을 배경으로 한 달력을 많이 가지고 갔었습니다. 가는 길목이 비슷하기 때문에 매년 가지고 가면 작년도 그림들은 벽에 도배하듯이 붙여두고 있는걸 보게 되기도 합니다. 참으로 기쁩니다.

이번 순례길에는 남인도 티베트 스님들이 공부하고 있는 간덴 사원을 방문하였습니다. 링 린포체(Ling Rinpoche) 스님과 함께 하는 오천여명의 스님들이 살고 있는 절입니다. 기후와 환경은 매우 어렵고 가난한 곳입니다. 그러나 신심과 원력의 힘으로 살아 숨쉬고 있는 도량이었습니다.

그곳에 여러 가지 약품 등 20여 박스의 물품을 가지고 갔습니다. 그 중에는 오천 명분 회충약도 들어 있었습니다. 아마 두고두고 어리석은 짓이 될지도 모르는 그런 일을 하였습니다.

원효 스님은 발심수행장에서 출가의 정의를 '마음 가운데 애착을 떠난 이를 사문이라 하고 세속을 그리워하지 않는 것은 출가라 한다. 수행인이 비단옷 걸치는 것은 개가 코끼리 가죽을 쓴 것과 같고, 도인이 세속을 그리워 함은 고슴도치가 쥐구멍에 들어간 것과 같다. 마음을 알고 근본을 통달하여 다함이 없는 법을 깨쳐야 수행자라 할 수 있다.' 하셨습니다.

진리를 보고 진리에 머무르면 소승(小乘)이라 하였으며, 진리를 보고 진리를 행하면 대승(大乘) 보살이라 하였습니다. 정진 중에 불현듯 인도 가는 길에 구충제를 가져가야지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는지는 알 수 없는 힘이 작용한 것 같습니다. 옛말에 '수입이 적어도 근검 절약하면 저축할 수 있고 아무리 수입이 많아도 과다한 지출을 하게 되면 저축할 수 없다.'는 가르침에 용기가 생긴 듯 합니다.

'한 부처님이 세상에 출현하시면 만 중생이 깨달음을 얻는다.' 하였습니다.

티베트 불교의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자비로운 보살행을 실천하고자 노력하는 당당함을 보는 것만으로도 우리에게 복된 신심이 저절로 우러나오게 하였습니다.

가장 안타까운 것은 수행하고자 정진하는 것에 비하여 한 조각의 빵은 너무 큰 가난이었습니다.

그래서 더욱 구충제는 내 마음 속에 '비타민'이라는 인식이 여전히 자리잡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동안 우리가 배운 보시의 개념은 세 가지가 청정해야 한다는 가르침이었습니다.

주는 자와 받는 자, 그리고 물건이 깨끗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번 순례 길에 공양올린 서원의 힘은 불자들의 간절한 신심에서 꽃피워진 바라밀이었습니다.

언제나처럼 지혜등불이 비추이는 어울림에서 시작되는 불자이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