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생몽사(醉生夢死)라는 말은 누구나 하는 말이긴 하지만, 실은 지극한 말이다.

세상에는 대개 부유하고 가난한 두 부류의 사람이 있다. 가난한 자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마냥 바삐 의식을 걱정하고, 부유한 자도 욕락(欲樂)을 누리는 일에 마냥 분주하기만 하니, 그 수용하는 것은 같지 않으나 바쁘기는 매한가지인 것이다.

그러나 바쁜 생활은 죽고 나면 그만이지만 그 분주한 마음은 끝나지 아니하여 이 마음을 그대로 지니고 가서 다시 태어나며, 다시 바삐 서두르다가 다시 죽으니 죽고 태어나고 또다시 죽고 태어나서 정신이 아득하고 혼미한 것이 술에 취한 듯 꿈을 꾸듯 하여 백겁 천생을 지날지라도 벗어날 기약이 없는 것이다.

아! 훤출하게 홀로 여기에서 깨어난 자는 대장부라야 가능할 것이다.'

≪죽창수필(竹窓隨筆)≫에서

나를 아는 많은 사람들 중에는 신심과 원력으로 기도하며 열심히 대중 포교의 현장에서 살아가는 원력 보살이라고 칭찬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사바세계는 좀처럼 다른 사람을 칭찬하며 살기가 쉽지 않다고들 하는데도 말입니다.

그러나 생각해 봅니다. 너는 누구를 얼마나 칭찬하며 살아가고 있는가를―.

오래간만에 일산(一山) 여래사 만불전 불사를 마치고 한가로운 듯 지내고 있습니다만, 그래도 주어진 자리에서 열심히 살아가는 것이 본분사라 생각하고 이번에도 출가일로부터 열반일까지 종단에서 경건주간으로 정한 대로 발심정진기도를 하였습니다.

새벽기도, 사시기도, 저녁기도를 직접 집전하고자 할 때 얼마나 기쁘고 자랑스러웠는지 모릅니다. 어찌 생각하면 당연한 일인데도, 석가모니 부처님을 향한 기도는 108 대참 기도로 이어지고, 불자들과 함께한 금강경을 사경한 책은 이번 극락전 부처님 점안식에 복장물로 모시고자 합니다.

오늘은 저녁 법회도, 저녁 불교대학 강의도 없는 날이라, 참 오랜만에 이 몸을 방바닥에 일찍 눕히는 걸로 편안함을 찾고자 하였습니다. 그러다가 문득 몇일 전 어느 객스님이 주고 간 ≪죽창수필(竹窓隨筆)≫이라는 책이 손에 잡히어 한 장 한 장 그냥 그렇게 볼 요량으로 보기

시작하였습니다.

처음에는 편안한 마음으로 무료해서 방바닥에 눕힌 몸 그대로 ≪죽창수필≫을 읽었는데, 어느듯 앉아 있는 내 모습을 만나게 되고, 그리고 새벽 도량석 목탁소리에 삼매(三昧)에서 현실로 돌아온 듯 안면만 있는 그 객스님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400여년 전, 중국에서 운서 주굉 스님은 열반에 드셨으나 그 거룩한 가르침이 연관 스님의 번역과 불광출판부의 인연으로 우리들 가까이에서 십 년 넘게 기다리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죽창수필≫을 보면서 느낀 것은 '어쩌면 그렇게도 서산 대사의 선가귀감의 맛과 흡사할까?'하는 것이었습니다. ≪선가귀감≫에 버금가는 가르침의 담백한 맛의 법열을 혼자 가질 수 없어 불광출판부에 1,000 권을 주문하고 구룡사와 여래사에서 함께 공부할 귀중한 인연들을 찾아야 하겠습니다.

매주 수요일은 구룡사에서, 금요일은 여래사에서 중국과 조선에서 같은 시대에 살았던 두 스님의 가르침도 함께 찾을 수 있었으면 합니다.

달라이 라마 스님께서는 ≪아름답게 사는 지혜≫에서 '진정한 자비심을 일으키기 위해서는 우선 평등심을 닦아야 한다. 모든 중생에 대해서 평등심을 갖지 않으면 남들에 대해서 편견을 갖게 되기 때문에 평등심은 매우 중요하다.'고 하셨습니다.

우리들의 일상생활 속에서 일어나고 있는, 느끼고, 이해하고, 행동할 수 있는 것을 가르쳐 주고자 하신 자비심에는 그 무엇으로도 장막을 칠 수 없고 가로막을 수 없는 실상(實相)입니다. 진여(眞如)입니다. 서원의 힘을 키워가야 하겠습니다. 감로법이 되어 한량없는 법열을 가지게 하는 것도, 그 무엇에 집착하지 아니하도록 한 가르침도 자비심에 있습니다.

≪죽창수필≫을 주고 간 스님은 얼굴만 알고 법명도 모르나, 그 스님은 언제나 절에 오면 주지실로 직접 옵니다. 올 때마다 한 달만이든 반 년만이든, 언제나 "일 년만입니다. 잘 계셨습니까?" 그리고 나서 포교당에서 하고 있는 불사나 법회에 대한 칭찬을 합니다.

결코 미워할 수 없는 스님이기는 하지만 도심 사찰에서 살다보면 소임자들에게는 불편한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늘 하는 것처럼, 적지만 모두에게 여비는 교통비 조로 드리지만 솔직히 말해서 너무 많이 오는 날이나, 객스님들은 귀찮은 존재이기도 한 것입니다. 그래서는 안 되는 것도 사실이지만 그러나 현실이기도 합니다.

이번 인연으로 자기가 서 있는 자리에서 동서남북을 바라보지만, 우리의 동해바다가 일본의 서해바다이고, 우리의 서해바다는 중국의 동해바다인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스스로 구분지어 결론내리고 정하는, 그런 인생살이가 되어서는 안 될 것이라고 믿어집니다. 이젠 좀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었으면 합니다. 아무리 주어진 자리에서 바라보는 관점이 다르다 하여 모두가 다 달라질 수는 없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죽고나면 바쁜 생활은 그만이지만 그 분주한 마음은 끝나지 아니할 것"이라는 가르침이 삶의 본질에 투영되었으면 합니다. 인연은 참 묘하다는 생각입니다. 하나의 생각을 분기점에서 전환하고 보니 도리어 기다려지고, 훗날 다시 만나게 되면 고마움의 표현을 해야 하겠습니다.

여러 날 잠이 부족하였으나 정신은 맑아지고 마음이 이렇게 편안하여지니 즐겁기 그지없습니다.

요즘 부처님 오신날을 맞이할 준비가 한창입니다. 연등이며, 팔모등이며, 많은 불자들이 모든 사찰에서 운력중입니다. 지극한 정성의 동참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