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남자여, 도를 닦는 이라야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느니라. 선남자여, 그대가 말하기를 "중생들이 모두 부처 성품이 있으므로 마땅히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을 것이 자석과 같다." 함은 잘한 말이니라.

부처 성품의 인연으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는 것이다라 하여, 성인의 도[人正道]를 닦을 필요가 없다고 함은 옳지 아니하니라.

선남자여, 어떤 사람이 넓은 벌판을 걸어가다가 갈증이 심할 적에 우물을 만났는데, 그 우물이 깊어서 물이 보이지 않지마는 물은 반드시 있거니와, 이 사람이 여러 가지 방편으로 두레박을 구하여 길어내고야 물을 보게되나니, 부처 성품도 그와 같아서 모든 중생에게 있기는 하지마는 모름지기 무루인 성인의 도를 닦은 뒤에야 보게 되느니라.

선남자여, 참깨가 있으면 기름을 볼 수 있지마는 방편을 여의고는 보지 못하나니 사탕무우도 그와 같느니라.' ≪열반경≫

≪화엄경≫에 "보살이 누구든지 선지식의 가르침을 순종하면 모든 의심과 두려움이 없어지고 편안히 있어 마음이 흔들리지 않으니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얼마전, 설악산 백담사에서 만해 포교상을 받으면서 솔직한 심정을 수상소감으로 말씀드린 일이 있었습니다. 지금도 변함 없는 생각입니다. 얼마나 많은 스님들과 불자들이 주어진 자리에서 열심히 살아가고 있습니까? 다만 저는 대중들에게 드러나 보인 것일뿐입니다.

달라이 라마는 가르침에 기본적으로 전제되는 것은 오랜 시간을 요한다는 것입니다. 즉각적인 결과를 기대한다는 것은 참을성이 없다는 증거라고 하셨습니다.

금년 여름은 유난히도 더운 날씨가 많았습니다. 그 무더운 여름을 부처님의 가르침인 경전과 조사어록, 그리고 몇 권의 세속 글을 보면서 지내고 있습니다.

그 중에서 최인호 작가가 쓴 조선시대 대상 임상옥을 그린 소설 ≪상도(商道)≫는 많은 생각과 자신을 돌아다보게 하였습니다.

몇 구절 인용해보면 "평생을 크게 소유하였지만 그것이 자신의 것이라고 생각하여 본 적은 없었다. 세속의 길을 통해서도 도인의 길을 걸었던 수도자", "이익이란 결국 나 자신을 위한 것이므로 다른 사람에게는 손해를 주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익이 있는 곳에는 반드시 원망과 원한이 생기게 되는 것이다.", "무릇 모든 사람들은 인정을 받으려 하고, 존경을 받으려 하고, 발자취를 남기려고 해서는 안 된다. 그러한 욕망은 그의 공덕을 일시적이거나 한시적으로 만들기 때문이다. 자신이 죽은 후에라도 자신의 이름을 남기려고 해서는 안 된다.", "진정한 참행복과 참자유는 돈을 벌었으나 돈에 집착하지 않았으며 명예를 얻었으나 명예를 누리지는 않았고, 풍류를 즐겼으나 쾌락에 탐닉하지는 않았기 때문에 진정한 길을 갈 수 있는 것이다." 소설 ≪상도(傷悼)≫ 중에서

원효 스님의 무애가에서도 "모든 것에 걸림이 없는 사람이라야, 한 길에서 나고 죽음을 벗어나노라." 하셨습니다.

세상의 뜬구름 같은 이름을 탐하는 것은 부질없이 몸만 괴롭게 하는 짓이고 잇속을 따라 허덕이는 것은 업(業)의 불에 섶을 더 보태는 격이라 하였습니다. 불교가 인생과 다르지 아니하듯 세간을 떠나 또 무엇이 있겠습니까.

약의 가치는 병을 치료하는데 있는 것이지, 그 약의 값어치에 있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아무리 귀하고 비싼 약이 있다 하더라도 그것이 병든 이에게 적절하지 않다면 그 약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그래서 요의경(了義經)에 의지할지언정 불요의경(不了義經)에 의지하지 말라 하신 것입니다.

"사람만이 항상 높은 곳을 찾아 앉으려 하고 좋은 곳을 찾아 앉으려 하고 한번 앉으면 그곳을 떠나려 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사람은 눈송이 (낙엽 등) 하나 보다도 못한 존재인 것이다."는 말을 듣고 있는 것입니다.

옛말씀에 꽃은 봄을 보내지 아니하려 하나 봄은 가고, 사람은 나이를 먹지 않으려 하나 늙음은 온다 하였습니다. 살아가면서 보고 느끼는 감정은 그렇습니다. 세상에 익숙해지면 무엇이든지 쉬워지지 않는 것이 없다 하였습니다. 그러나 늘 만나고 있어서 더 쉽게 잊어버릴 수도 있을 것입니다.

요즘 통도사 일로 자주 장거리 고속도로를 이용하고 있습니다. (어릴 적 꿈이 운전사였지만….) 그냥 운전하고 다녔습니다. 그러다가 고속도로에서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무리지어가는 자동차 대열에서 속도를 내어 앞서가다 보면 또 다른 무리의 자동차 대열을 만나게 되는데, 결국 후미에서 따라가고 있더라는 것입니다. 인생도 그럴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결국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더라도 조화롭게 서두르지 아니하는 삶이어야 하겠구나 싶습니다.

그러나 그 길에서 서두르고 짜증내고 화를 낸다면 그는 그러한 인생이 고통스럽고 괴로울 것입니다. 그것을 뜻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조급증일 수도 있습니다.

자기 스스로 만족하려는 행위가 얼마나 큰 욕망에서 비롯되는 것인지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불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부나방은 꽃이라고 생각한다고 합니다. 우리가 물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아귀는 불이라고 생각하는 이치는 어리석음입니다.

공자님 말씀에 유좌지기라는 말이 있다고 합니다. 그 그릇은 속이 비면 기우러지고 적당하게 물이 차면 바로 서 있고 물이 가득 차면 엎질러진다 하였습니다.

옛 선인들만 늘 곁에 두고 보는 그릇이 아니라 이 시대에 어쩜 절실히 요구되는 가르침이 아닌가 싶어집니다.

방거사의 가르침에 이 세상에 앉지 않아야 할 곳을 찾아 앉는 사물은 오직 인간 뿐이라 하셨는데, 나는 어디에 있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