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제주도에 있는 도반 스님이 섬나라에 한 번 다녀가지 않겠느냐는 전화가 왔었습니다. 한 달 전에도 꽃이 한창 피고 있다는 전갈도 있었습니다.

어느 날부터인가 자연으로부터 소외된 삶을 살아가고 있다는 생각이 자꾸 들어집니다. 짧은 봄에 긴 여름, 그리고 가을인가 싶으면 겨울이 항상 우리 곁에 맴돌고 있습니다.

그동안 시계추처럼 일상적인 하루하루가 반복되는 도심 속 생활의 단조로움이 우리들의 현주소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누구이며 어디에 살고 있으며 어디로 가고 있는지 궁금해지기 시작했습니다.

며칠 전에는 일산(一山) 여래사에서 불자들과 ≪능엄경≫ 경전 공부를 마치고 오후 시간에 자유로 길에서 문산 쪽으로 자동차를 달려 보았습니다. 그리고 파주, 전곡, 포천, 운천, 일동, 도로 표지판에 적힌 이정표를 보면서 의정부 쪽으로 오게 되었습니다. 동부간선도로를 찾아 참으로 오랜만에 몇 시간을 길에서 보내다 돌아왔습니다.

그 길은 삼십 년 전 추억이 배어 있는 곳이었습니다. 불무리 부대에서 훈련받으며 100km 행군하던 길도 있었습니다. 지난 주 일요일에 방문했던 칠성부대 부대장이 그 당시 소위였다고 하니 세월의 길이가 참 덧없음을 보여 주었습니다.

강원도 산간에는 이제사 봄소식을 알리는 이름 모를 꽃들이 한창 피고 있다고 합니다. 부처님 오신날을 봉축하기 위한 장엄등이 사찰마다 걸리고 길거리에도 장엄되기 시작하였습니다. 월드컵을 상징하는 축구공등도 있었습니다.

구룡사·여래사 뜰에도 어김없이 찾아온 늦은 봄기운이 철쭉꽃이랑 자지러지게 피웠습니다. 이 모두가 무척 아름답습니다. 그곳에서 환경 친화적인 가르침을 배울 수 있었으면 합니다.

금년에는 올림픽 이후 유난히 분주한 한 해가 될 것이라고 합니다. 월드컵 축구가 있고 지방자치단체장 선거, 아시안 게임, 대통령 선거가 있는 해입니다. 우리 종단에도 중앙종회의원 선거와 총무원장 선거가 있을 것이라 합니다.

종교적으로도 보수적인 상좌부의 소승 불교와 진보적인 대중부의 대승 불교로 부파 불교를 정리합니다만 요즘 정치계에서 말하는 보수와 진보는 소극적이며 점진적인 것을 보수라 하고 적극적이며 개혁적인 것을 진보라 하는 것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사회적 측면에서는 보수와 진보의 논쟁은 정치적 현실의 이념적인 것이 아니라 국민의 복리 증장을 위한 정책이 필요한 것입니다. 모든 이론과 논리적 전개를 가지고는 결코 그 누구도 진실에 이르지 못하는 것이며 스스로도 자유롭지 못할 것임을 명심해야 합니다. 모든 논쟁은 철없는 아이들의 소꿉장난입니다.

진정한 삶의 질을 높이는 것은 그 어떤 논쟁도 없이 세상에 그냥 존재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진실은 증거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진실은 그대의 가슴만을 필요로 하고 있다. 머리로써의 논쟁이 아니라 사랑과 믿음 그리고 받아드릴 수 있는 자세만이 필요할 뿐이다." 하신 말씀에 동의하고 싶은 것입니다.

우리가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것은 목숨을 지닌 육신의 몸입니다. 재물도 명예도 부귀 영화도 다 이 몸 다음으로 생각하는 것이 중생의 분상입니다. 그것이 우리의 현실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능엄경≫에서 부처님은 "객주집에 왔다 가는 손님과 같고 허공 가운데 휘날리는 먼지와 같은 것을 내 몸이라 한다." 하셨으니 이러한 것들이 참내가 아닌 줄을 알면 비로소 나고 죽는 것으로부터 자유로워질 것입니다.

"생사(生死)란 이 몸이 나고 죽는 것이지 마음이 나고 죽는 것이 아니다." 세상에 온갖 것들, 옷이나 음식이나 다 이 몸이 필요해서 먹고 입는 것이지 마음은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이 세상에 탐욕을 내어 좋아하는 건 이 몸을 위한 것입니다.

봄기운이 가득찬 부처님 오신날을 봉축하는 21일 발심정진 참회기도에 동참하여 본 성품을 드리웠으면 합니다.

그리하여 움직이지 않는 참마음[眞心]을 살펴 살아갈 수 있으면 굳이 무엇 때문에 세간의 온갖 것들에 노예가 될 것이 무엇이며 사대[地水火風]로 이루어진 이 몸은 참내가 아닌데 흔들리며 요동치는 경계 가운데 왔다갔다 하는 윤회의 길에 있어야 할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능엄경≫에 "보리는 대승이요 아라한은 소승이라.", 객진 번뇌는 손님 같은 번뇌요 티끌 같은 번뇌라 하였습니다.

객진(客塵)은 번뇌장(煩惱障)이요 소지장(所知障)이라, 번뇌장은 거칠어서 알기 쉬운 번뇌요, 소지장은 미세하여 알기 어려운 번뇌라 햇빛이 들어와야 우리 눈에 보이는 것처럼 우리네 삶의 미세한 번뇌 망상은 그냥 보이는 것이 아니라 기도하고 정진하는 수행의 등불이 필요합니다. 왜냐하면 지혜의 빛은 수행 정진을 통해서 의지해야만 이 티끌 같은 번뇌를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이 사유하면 맑고 고요한 것은 허공이요, 요동치는 것은 번뇌이므로 번뇌를 여의는 공부를 이름하여 수행이며 정진이라 한 것입니다.

이번 부처님 오신날 정진기도법회에 발심하는 불자들은 지혜가 드러나며 저절로 번뇌가 사라져간 상락아정(常樂我淨)의 나를 볼 수 있는 봉축의 달이 되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