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미산을 다녀온 지 한 달이 넘었는 데도 여전히 수미산 다녀온 생각뿐입니다. 열린 길 따라 언제든지 마음만 내면 다시 갈 수 있으리라 생각하면서 수미산의 꿈에서 깨어나야 할 때가 되었 습니다.

≪인욕경≫에 '마음을 멋대로 놓아두는 사람은 언제나 후회할 일만 있기 마련이고 교만하거나 방자한 마음이 부르는 재앙은 수미산보다 무겁다.' 하셨습니다.

옛 글에도 '꽃은 봄을 보내지 아니하려 하나 봄은 가고, 사람은 나이를 먹지 아니하려 하나 늙 음은 저절로 온다.' 했습니다.

꿈과 현실을 혼동하는 생활은 앞으로 나아갈 한 걸음도 내딛을 수 없는 얽매임만 있을 뿐입니 다. 그래서 더욱 쉼없는 정진을 통해서 삶의 진정한 의미를 볼 수 있었으면 하는 것입니다.

나를 아는 많은 분들은 히말라야를 좋아하고 티벳을 좋아하는 것이 전생에 그곳 사람이기 때문 일 것이라고 말을 합니다. 불자로써 전생을 믿고 내생을 바라보는 입장에서 어찌 전생사 일을 부 정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더 크게 다가오는 티벳인들이나 히말라야에서 만났던 인연들은 정감 이 있었습니다.

가난하지만 때묻지 않은 살아있는 생명력이 있다는 것입니다. 지난 세월 우리네 살림살이도 가 난했던 그 시절에는 지금보다 훨씬 서로가 서로를 생각해주는 순박함과 정서적인 풍요로움이 있 었습니다. 그때가 그리워지고 그때가 공부하는 출가정신이 더 살아 있었다는 것입니다. 물질의 풍 요로부터 자유로워져야 합니다.

세상 일에 익숙해지면 무엇이든지 쉬워지지 않는 것이 없다는 말씀이 있습니다. 작은 아픔에 익숙해지면 보다 더 큰 아픔도 받아들이고 참아낼 수 있는 법을 배울 수 있지만 목마름의 갈증을 바닷물로 해소시킬 수는 없는 것입니다.

≪열반경≫에 '보살이 두 가지 법을 구족하면 크게 이익하리라. 하나는 선정(禪定)이요 둘은 지 혜(智慧) 이니라.'

세존이시여, 어떤 것을 보살이 때와 때 아닌 것을 안다 하나이까.

'선남자여, 즐거움을 받는다 하여 교만을 내거나 법을 연설한다 하여 교만을 내거나 이치를 알 고 문답을 잘한다 하여 교만을 내거나 소중한 물건을 보시한다 하여 교만을 내거나 세상의 지위 높은 사람에게 공경을 받노라 하여 교만을 내게 되거든 이때에는 지혜를 닦지 말고 선정을 닦아 야 할 줄 알지니, 이것을 이름하여 보살이 때와 때 아닌 것을 안다 하느니라.

만일 보살이 부지런히 정진하면서도 이익한 열반의 즐거움을 얻지 못하거나 얻지 못한 연고로 뉘 우치는 마음을 내거나 근성이 둔하여서 오근(五根)을 조복하지 못함은 모든 번뇌의 세력이 치성한 연고며 계율(규범) 속에 사는 것이 이로울까, 해로울까 의심하는 연고니 이런 때에는 선정을 닦지 말고 지혜를 닦아야 할 줄을 알지니 이것을 이름하여 보살이 때와 때 아닌 것을 안다 하느니라.'

이 시대는 어느 때보다 때와 때 아닌 때를 아는 사람과 행동하는 사람이 절실히 필요합니다.

부처님께서는 만일 보살이 선정과 지혜의 두 가지가 평등치 못할 적에는 버리는 것[捨]을 닦지 않아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선정과 지혜가 평등하면 버리는 것을 닦아야 하지만 선정과 지혜를 닦다가 평등치 못하거나 번뇌가 일어나면 그럴 적에는 버리는 것을 닦지 않아야 한다고 하신 깊 고 깊은 뜻을 헤아릴 수 있어야 합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읽고 외우고 쓰고 해석하며 삼보를 생각하고 계율을 생각하고 버림을 생각 해야 함이 이것을 이름하여 버림을 닦는 것이다 하셨습니다.

우리가 일구어 꽃피워낸 부처님 품안과 따뜻한 가정의 실천덕목이 열매맺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이루어 낸 대중포교현장의 불사는 부처님 일이었습니다. 부처님 일이란 중생을 위하는 일 뿐입니다. 불보살님이 하시는 일은 중생을 위하는 일 외에 다른 일을 하신 적이 없으십니다. 우리도 우리 이웃에 함께 할 수 있는 소중한 인연을 지어가야 할 것입니다. 우리네 마음은 언제나 따뜻한 기운이 있습니다. 누구든지 마음은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얼마나 복된 일입니까.

자유로운 신행(信行) 생활을 할 수 있다는 것이 세상에서 가장 값진 행복일 것입니다.

티벳 수미산에서 만났던 불자들이나 히말라야 자락에서 만났던 불자들의 기도하는 모습은 언 제나 무거운 짐을 지고 가다 벗어 놓은 것처럼 몸과 마음은 한결같이 가벼워져 있는 기쁨이었습 니다.

때와 때 아닌 것을 알고 실천할 수 있는 용기 있는 불자가 되려고 노력할 때 선근과 지혜는 보 살의 자비심이 될 것입니다.

이런 삶이 의미 있고 값진 인생입니다. 그 무엇을 특별히 바랄 것도 없습니다. 그저 도반이 되 어 인생의 마지막 길을 함께 걸어갈 수 있었으면 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