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하늘은 한없이 높고 한 해의 농사를 갈무리하는 농부들의 일손은 쉴틈없이 움직이는 계절입니다.

어릴 적 고적한 산사(山寺)의 길을 가다보면 단풍이 아름다워 보였는데, 요즘 단풍진 나뭇잎이나 낙 엽은 땅에 떨어져도 자연으로 돌아갈 수도 없는 세상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오염된 환경이 산성비를 내 리게 한 것이 원인이라고 합니다.

그래도 자연은 아름다운 것이라며 연일 단풍구경 가느라 산길을 오르내리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제일 먼저 물들었던 나뭇잎이 무얼까 생각해보니 그건 아마도 옻나무였습니다. 옻나무 액은 약재로도 쓰이고 생활용품으로 사용되는 다양한 그릇이나 목기류에 칠해지기도 하지만 해인사 팔만대장경판에 벌레가 생기지 않도록 하는데도 사용되었습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인생이 무상하듯 자연현상의 무상함을 먼저 드러내 보이는 법문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덕운 하운청(德雲 河運淸) 불자는 ≪산(山)으로 가는 마음≫ '시다림 법문'에서 '전생에 무슨 짓을 하 였길래 현생이 이다지도 고달프냐고, 현생의 내가 전생의 나를 원망하며 살았듯이, 앞생에 무슨 짓을 하 였길래 금생이 이다지도 고단하냐고, 내생의 내가 현생의 나를 원망하며 살아갈 것을 생각하면 가슴이 미어지는지라. 이에 삼각게(三覺偈)를 그대에게 주어 미안한 마음을 대신하려 하노라.' 하였습니다.

우리들의 한 생애를 뒤돌아보면 쉼없이 변화되어온 육신의 몸을 들여다 볼 수 있었으련만, 큰 틀에서 의 삶만 보면서 살아가는 현실이 나뭇잎 붉어지고 푸르름의 싱그러움을 자연스럽게 떨어트려가는 나뭇 잎을 보면서 소멸되어 가는 우리 인생도 바라 볼 수 있었으면 하는 것입니다.

달라이 라마께서는 '불교에서 가장 중요하게 강조하는 것은 마음을 바꾸라는 것이다. 그런 변화는 명 상에 달려 있다. 제대로 명상하기 위해 우리는 지식[배움]을 가져야 한다. 그리고 공동체 의식 또한 지 식을 통해서 향상되어야 한다.' 하였습니다.

자연과학자들은 지구의 생성년대를 말할 때 46억년, 50억년 그리고 백억 만년쯤으로 이야기하고 있습 니다만 정확한 숫자적 시간의 개념이라는 게 그저 오래 되었구나 하는 정도일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런 시간은 상대적으로 잴 수 있는 잣대가 아니라 관념적이기 때문입니다.

어제 저녁에는 BBC 영국 TV에서 지구의 생성과정에서 바다가 생기는 모습과 해와 달의 역학구조로 조수의 간만차를 밀물과 썰물로 표현하며 바다 생태계의 변화를 보여주었는데 자연의 오묘한 이치가 파도의 일렁임으로 나타나는 현상이었습니다.

그 방송을 보면서 느끼는 것은 바다에 물이 잠기기까지의 시간을 6억년쯤으로 표기하는 걸 보았습니 다. 6억년―.

지구가 한바퀴 도는데 걸리는 시간을 하루라 하는 것에 비하면 그 시간의 거리는 불가사의한 거리의 숫자입니다.

얼마전 지구가 돌아가는 거리와 인생을 상대적으로 바라보면서 계산을 해 본 적이 있습니다. 하루동 안 돌아가는 거리가 4만Km나 되었습니다. 한 시간에 돌아치는 거리의 속도는 1,666.6Km입니다. 둥근 원(360。)을 도는데 하루의 시간이 소요되듯 1。의 거리는 111.11Km이었습니다. 그리고 4분의 시간이 필요한 거리이기도 하였습니다.

자동차가 고속도로에서 시속 1백Km이거나 비행기의 속도가 시속 1천Km라 하는 거리의 속도보다 훨씬 빠른 인생의 시간적 개념의 속도를 느낄 수 있는 안목이 있다면 지구 돌아가는 시간의 속도에 세 상을 쉽게 살지는 않을 것이라 생각되었습니다. 1초에 462.7m나 돌고 있는 지구의 속도는 우리네 인생 의 시간과 같은 개념의 속도로 움직이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 소중한 시간을 허비하며 인생을 방일하게 산다는 것 자체를 부처님은 염려하시고 걱정하고 계 시다는 것을 많은 경전에서 보이시고 있습니다.

≪화엄경≫에 '사람들은 모든 것이 덧없다는 사실을 모르기 때문에 끝없는 고뇌를 받고 있다.

그것은 부처님의 가르침에 대한 청정한 눈을 갖지 못했기 때문이다.

만약 일체의 마음을 알고자 한다면 먼저 부처님의 가르침을 바르게 볼 수 있는 눈을 갖추어야 한다.

그렇게 하면 진실한 부처님을 볼 수 있을 것입이다.

만약 부처님을 보고서 자기가 마음에 집착하지 않으면 진실을 깨달을 수가 있을 것이다.'

그렇습니다. 물 속에서만 사는 물고기가 거북이와 논쟁이 벌어졌는데 거북이가 육지를 증명할 수 없 다하여 물고기가 육지의 존재를 부정하며 의기양양하게 결론을 내렸다는 이야기입니다.

거북이는 육지와 바다를 모두 알고 있지만 육지의 실제적인 성질을 물고기에게 설명할 수 없었다고, 육지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물고기의 입장에서는 어찌 육지가 어떤 세상인지 상상이나 할 수 있었겠습 니까.

언어로써 표현할 수 없는 경지를 표현할 수 없다하여 없는 것은 아닙니다.

무거운 짐을 벗는 것처럼 홀가분한 과목(果木)의 모습이나 붉게 진 단풍의 잎사귀를 바라보면서 부 질없는 인생의 시간을 허비하지 않을 것을 다시 한번 찾아 볼 수 있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