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 말을 잊었습니다.

우리 잡지의 통권 168호에…. 한번도 이런 일이 없었는데 할 말이 없습니다.

하운청 교수는 ≪산으로 가는 마음≫에서

세상을 버리고 / 산으로 가는

까닭이 무어냐고 / 누가 묻거든

그때는 나무의 / 숲이 무서워

사람들 사이에 / 묻혀 살다가

이제는 인간의 / 숲이 무서워

나무들 사이에 / 숨어살려고

세상을 돌아서 / 산으로 가는

까닭이 그거라고 / 말해 주거라

밤새도록 하염없이 흐르는 눈물처럼 비가 내리고 있습니다.

세상을 살다보면 누구에게나 이런 일 저런 일 있기 마련이지만, 어느 날 세면장에 걸린 거울 속에 서 불현듯 내가 아닌 내 아버지의 모습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헤아려보니 출가할 때 부친의 연배와 같은 나이가 되어 있음을 보았습니다.

그동안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었던 젊은 날의 번뇌가 묻어 있는 그런 모습이었습니다.

1998년 종단사태 이후 5년의 세월은 참으로 긴 시간이었습니다.

그래도 불자들의 울타리와 그늘에서 기도하며 정진하는 복된 인생을 살았습니다.

이젠 참 자유인이 되고 싶습니다.

돌아갈 산사에서 대중들과 바루공양이라도 함께 하며 지내고 싶습니다.

지금처럼 날밤새우는 그런 삶이 아니라 진정한 출가자의 참모습을 지니고 살아갈 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얼마 전에 본 알레한드로 아메나바르 감독의 영화 ≪오픈 유어 아이즈(Open Your Eyes)≫에서 "생각한대로 꿈을 꾼다. 꿈은 언제나 자네의 생각이라네. 이젠 고통을 끝내야 하네. 이건 다 허상일 뿐이고, 꿈은 이미지일 뿐이니, 울지 말고 이젠 눈을 떠야지."

자! 우리 함께 이제 눈을 떠야 합니다.

연꽃은 아무리 흐린 날이라 하여도 낮에만 꽃망울을 터트리고, 밤에 보름달이 청명한 대지를 비추 어도 결코 연꽃은 피우지 않는 이치를 실천하고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