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남자여, 이런 이치는 안식(眼識)으로 알 것도 아니고, 내지 의식(意識)으로 알 것도 아니고, 지혜(智慧)로야 알 것이니라.

만일 지혜가 있는 이면 나도 그 사람에게 두 가지 말을 하지 아니하고 그도 내가 두 가지 말을 하지 않는다 할 것이건마는 지혜가 없는 이에게는 결정하지 않는 말을 하고 그 지혜 없는 사람도 내가 결정하지 않는 말을 한다고 하느니라.

선남자여, 여래(如來)가 가지는 모든 선행(善行)은 모두 중생들을 조복하기 위한 것이 니라. 마치 의원에게 있는 약방문이 모두 온갖 병(病)을 다스리기 위함과 같느니라.

선남자여, 여래는 국토를 위하는 연고며, 시절을 위하는 연고며, 남을 위하여 말하는 연고며, 다른 사람을 위하는 연고며, 여러 근기를 위하는 연고로 한 법 중에 두 가지 말 을 하며, 한 이름에 한량없는 이름을 말하며, 한 가지 뜻에 한량없는 이름을 말하며, 한 량없는 뜻에 한량없는 이름을 말하느니라.' ≪열반경≫

출가 이후 철이 들어가던 그 어느 날부터 수미산을 생각하면 가슴이 뛰고 늘 그곳에 갈 날들을 꿈꾸어 왔으니, 그 시간은 이십 년이 훅 지나가 버린 세월입니다.

수미산(須彌山)! 이 년 전에 범어사의 관조 스님을 모시고 다녀온 그때의 일들을 떠 올리면 환희법열의 시간이었습니다. 육체적으로 힘든 상황은 잊어버린 지 오래입니다. 함께 했던 대중들은 한 번의 경험과 한 번의 인연으로 매듭짓고 맙니다.

그러나 작년에는 사스(Severe Acute Respiratory Syndrome: SARS)로 통행이 자유롭 지 못해 외국인들은 아무도 갈 수 없어, 가고 싶은 마음을 접어야 했습니다. 그리고 금 년에는 힘들고 어려운 수미산 행을 굳은 결심으로 다녀왔습니다. 힘든다는 생각도 없이 너무나 기쁘고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이 년 전에는 마냥 좋기는 하였으나 너무 힘들고 고통스러웠다면, 이번 순례 길의 나 를 생각하면 마냥 좋아서 허허 웃고 있을 뿐입니다.

그 순례 길에서 많은 이들을 만났습니다. 몇 년, 몇 달을 두고두고 말해도 다 말할 수 없는 만큼 많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인도(印度)에서 출발해 온 몇 백 명의 수미산 순례단은 수미산을 향해 오던 길에서 숨을 거둔 이가 있었는데, 길가에서 버스를 세워두고 화장하던 일이나, 아프리카 흑인 여성이 혼자서 수미산 행을 하고 있던 모습은 잊혀지지 않는 기억입니다.

너무 힘들었던 일들이 떠올라 가는 길에 약품이며, 텐트며, 옷이며, 침낭 등은 영하 30℃도 견딜 수 있을 만큼 준비해 갔었지만 그래도 아쉬움은 늘 남기 마련인가 싶기도 합니다. 하루도 성한 날이 없이 우박이며, 눈보라며, 돌풍의 소용돌이며, 고산지대의 산 소 결핍은 참으로 견디기 어려운 환경의 한 모습입니다.

그 속에서 우리는 만나고, 만남 속에서 소박했지만 참 많은 것을 주고받았습니다. 옷 깃만 스쳐도 지중한 인연이라 하는데, 그 인연의 깊이는 깊고 깊어 숙세의 인연이었습 니다. 금생의 만남이 전생의 어디에서 만났던 인연인가를 들여다보고 싶었습니다. 정확 한 인연의 장소를 볼 수 있는 처지는 아니라 하더라도 분명히 느낄 수 있었던 것은 어 느 때 함께 하며 살았었다는 사실을 감지하게 되더라는 것입니다.

이틀 밤을 천막 텐트에서 함께 했던 사람, 가족이 함께 왔던 노부부, 십 년 전에 어머 니를 잃고 아버지와 함께 수미산에 야크(yak) 몰이를 하며 며칠을 같이 한 열 살, 열두 살 먹은 소년들의 해맑은 얼굴들이 자꾸 되살아나고 있습니다. 유목생활을 하던 한 가 정을 방문했을 때, 너무 행복해 보여 나도 이렇게 살고 싶다 하니, 언하(言下)에 그러면 바꾸자 하던 선지(禪智)가 서릿발 같았던 가족의 사진은 아버지와 딸의 모습으로 화보 집에 실었습니다.

대한민국이 어디에 있는 지도 모르는 사람들이 가는 곳마다 린포체(Rinpoche) 스님 오셨다고 아픈 곳 다 드러내며 약보다 더 영험 있을 따뜻한 손길을 원하던 영롱한 눈빛 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7월 중순경에 동국대학교의 법산(法山) 스님 일행이 수미산을 가신다 하여 그곳을 함 께 가게 될 김상길 불자에게 부탁하고 약속한 일들이 있었는데(약, 등등…) 금년에는 갈 수 없게 되었다 하니 난감합니다. 그 약속을 지킬 방법을 강구하고 있는데, 결국 그 일 을 하기 위해서는 저 스스로 다시 가야 될 것 같습니다.

우리가 그동안 세상에 드러내지 않고 해 왔던 불사(佛事)가 있었습니다. 어렵고 힘든 이들과 함께 하는 그늘진 곳에서의 어울림입니다. 그것은 붓다 월드(Buddha World) N. G. O. 활동이라는 역할이었습니다.

세상에 윤활유와 비타민의 역할이 되게 하는 일에 우리 불자들이 더욱더 원력(願力) 을 세우게 되는 시간들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 간절합니다.

이번 수미산에 다녀오면서 간직하고 돌아온 숙제가 하나 더 있습니다. 평소의 생각은 '벗어라', '비워라', '놓아라' 하는 가르침에 옷깃을 여미면서 살아 왔다면, 이번 수미산에 서 느꼈던 것은 입었던 옷도 벗으니 짐이 되고, 다시 입으니 내 몸의 한 부분이 되더라 는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사리불에게 말씀하시기를 "조심하여 영리한 사람에게 법을 광범하게 말하 지 말며, 둔한 사람에게 법을 간략하게 말하지 말라." 하신 참 뜻을 실천하고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