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남자여, 비유컨대 안개가 아무리 자욱하더라도 해뜰 때까지만 있는 것이요. 해가 뜨면 할 수 없이 스러지나니.

선남자여, 모든 중생의 지은 나쁜 업도 그와 같아서 세상에 머물러 있는 세력은 대반열반 (大般涅槃)의 해를 볼 때까지니 대열반의 해[태양]가 뜨면 모든 나쁜 업이 소멸하게 되느니 라.

선남자여, 어떤 사람이 출가하여 머리를 깎고 가사[승복]를 입었으나 사미의 십계(十戒)를 받지 못하였을 적에 어떤 장자가 스님의 공양을 청하면 대중과 함께 가서 공양을 받나니 계 (戒)는 비록 받지 못하였으나 대중 축에 들어 있는 까닭이니라. ≪열반경≫

출가한지 40여년 살아온 시간들을 뒤돌아보면 허송의 세월을 시주의 은혜와 보살핌으로 한없이 복된 날들로 잘살아 왔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린 시절이야 철없던 나이에 전생의 선근 인연으로 출가하여 산중의 대중처소에서 세상 의 가난 속에서도 배고픔 없이 살아왔다는 아련한 추억만 남아있었을 뿐입니다.

그래도 철이 들면서 하나둘씩 떠오르는 기억들은 아무래도 청소년 시기를 지나, 세상 물 정을 알게되던 20대 후반, 출가 정신을 스스로 찾고 느끼던 시절이 아니었는가 싶어집니다.

육군에서 사병으로 복무하던 때, 무던히도 그리워지는 산사의 품…. 그래서 '부처님 곁으 로 갈 것이냐? 부처님을 우리 곁으로 모셔 올 것이냐? 가게 되면 탈영이 되고 모셔오면 법 당이 생기게될 텐데, 열악한 환경의 사병 생활로 어떻게 그런 일을 할 수 있을까?' 그것은 바로 그 시대에 젊은이들의 핏속에서부터 목말라하는 부처님의 가르침이 군불자들과의 자연 스러운 만남을 주선하게 되었고, 나는 불교중대를 창설하게 되었고 연대법당 '호국 황룡사' 와 사단법당 '호국 일월사'를 세우게 됩니다.

어쩌면 그 시절의 인연이 없었더라면 지금도 어린 시절 출가할 때의 마음처럼 도사의 꿈 을 키우며 살고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3년 복무를 마치고 돌아 온 후 10여년.

어른 스님[老天 月下 大宗師]께서 말씀하신 구룡사에 올라와 30대 중반의 나이로 구룡산 자락에서 20여년을 보냈습니다.

이젠 결코 세속의 나이로는 어리지 않은 50대 중반의 나이가 되었으니 어느덧 반백의 세 월이 흘러 갔습니다.

서울에서의 20여년은 참으로 많은 상념을 일으키게 하고 있습니다.

천막법당 가건물법당, 부처님 금란가사 친견법회, 만불전 법당 불사 중에 사보(寺報)로 발 간했던 ≪구룡사보≫가 ≪월간 붓다≫가 되어 창간 지령 200호를 어느새 맞이하게 되었으 니…. 세월의 깊이를 어찌 눈치나 챌 수 있었겠습니까?

시월달에 200호가 세상에 나오게 되면 어디 한번 200권 다 모아 놓고 한 권 한 권씩 표지 부터 속속들이 살펴보아야 겠습니다. 마음 속 깊이 숨겨 두었던 감춰진 보물들을 헤아려보 면서 다시 한번 세월의 깊이를 볼 수 있었으면 합니다.

살아온 시간보다 앞으로 남은 시간이 훨씬 적게 남아 있겠지만, 그래도 그 시간들을 귀하 고 소중하게 다루며 살고 싶습니다.

구룡사에서 살아온 20여년은 결코 만만치 않은 시간들이었습니다. 최소한 밥먹고 잠자는 것을 잊고 살았습니다. 그런데도 병원신세 안지고 살도록 천성적으로 건강한 몸을 빌려주신 세속의 부모님과 여한 없는 인생을 살아갈 수 있도록 믿어주시고 격려해 주시던 통도사의 어른 스님의 은혜를 잊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대중 포교 현장에서 믿고 의지해 주셨던 불자들의 보살핌이 없었다면 또 어찌 무 딘 가슴 부여잡고 살아올 수 있었겠습니까? 생각하면 가슴저리고…. 그 은혜를 다 갚을 수 야 없겠지만 수행자의 모습을 잃어버리지 않도록 열심히 살아가겠습니다.

금년에는 유난히 바깥출입이 많았습니다. 티벳, 인도, 네팔, 미국, 대만….

가는 곳마다 선지식을 만나게 되었으니 헛된 시간은 아니었습니다. 그래도 불자들 곁에서 멀어진 거리들을 이제는 기도하며 정진하는 시간으로 더욱 가깝게 다가가는 날들을 많이 만 들어 가며 살겠습니다.

이번 합창단과 함께 간 불광산사 방문은 많은 것을 얻고 거두게 했습니다.

그 동안 종단으로부터 소외되고 종단환경을 탓하면서 좌절하고 포기했던 일들이며, 어둡 고 그늘진 곳과 동떨어진 생활 속에서의 나태함을 모두 털어 버리고 돌아 왔습니다.

대만 불광산사의 이곳 저곳을 돌아보면서 티벳의 달라이 라마 스님과 성운 대사님의 가르 침이 문자와 언설로 이루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네 본분사를 잊어버리지 않으면, 그 실 천 덕목은 스스로에게 있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소박한 모습으로 다가오는 참사람 이었습 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이제 서로가 서로에게 관심과 배려로 친절하게 대하는, 그런 생활 불교 인이 되었으면 합니다. 스스로에게 다짐해 봅니다.

이 시대의 뻐꾸기가 되어 남의 둥지 차지하고 살다가 어느 날 어미 새가 되어 날아가 버 리고 마는 그런 인생은 살지 말아야 겠다는 것을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