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글에 '꽃은 봄을 보내지 아니하려하나 봄은 가고 사람은 나이를 먹지 아니하려하나 늙음은 저절로 온다.'는 말이 실감나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그런 세상에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 또 한해는 그렇게 저물어 가고 있습니다.

삼십년 전 통도사 대웅전에서 사부대중이 모인 법회에 월하 대종사 님과 벽안 대종사 님께서 함께 하신 자리에서 약관 이십대 중반의 나이에 그것도 출가한 지 십여년된 정우에게 법문을 청하셨으니 지금도 생각해보면 가슴이 뛰고 등골에 식은땀이 흐르던 기억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법문을 마치고 어른 스님 방에 찾아뵙고 부끄러움에 인사드리니 월하·벽안 큰스님께서 칭찬해 주셨습니다. 아마, 그때의 칭찬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이렇게나마 지금의 정우는 오십대 중반의 초로(初老)가 되었습니다. 엊그제 불혹의 나이를 대견스러워했었는데, 아니 벌써 오십대 중반에 접어든 세월을 들어 보이게 되었습니다.

며칠 전 연년이 통도사 화엄산림법회에 법문을 하고 있습니다만, 이번 일요일날은 1만 명이 넘는 대중이 설법전에서 청법하는 신심과 정진력을 바라다보는 것만으로도 환희심 그 자체였습니다.

'나는 누구인가?'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내가 갖고 있는 소유물이 아니라 내가 누구인가 하는 것입니다. 단지 생활하고 소유하는 것은 장애물이 될 수도 있고 무거운 짐일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으로 우리가 어떤 일을 하느냐가,

인생의 진정한 가치를 결정짓는 것입니다. "― 아름다운 삶, 사랑 그리고 마무리에서

어리석은 이는 늙음과 죽음으로 인해서 고통 받는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지혜로운 이는 이것의 참모습을 잘 알고 슬퍼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마음은 무상(無常)해서 언제나 변화되어지는 것이지만 부처 성품은 항상 합니다. 그래서 더욱 자신 있게 마음을 변화시킬 수 있는 것입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통해서 따뜻하고 편안한 기운을 찾을 수 있는 것입니다.

달라이 라마께서도 "자유로운 신행생활을 한다는 것은 가장 복되고 행복한 삶이다. 특별히 바라는 것도 없다. 기도정진을 하면 짐을 벗는 것처럼, 무거운 짐을 벗는 것처럼 몸과 마음이 가벼워지는 것이다. 착한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런 삶이 의미 있고 목적이 있는 삶이다. 수행정진도 하지 않고 말뿐인 종교나 믿음은 녹음기와 같다. 생명력이 없다. 인생에 쓸모 없는 것이다."라고 하셨습니다.

늘 우리도 그렇게 살아가도록 노력하고 있어야 하지만 산사에서 정진하고 있던 스님들이나 불자들의 정진력은 우리들에게 더 열심히 살아가도록 힘을 주는 가르침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네 생활불교 현장에서도 수행방법을 근기따라 인연 따라 행해지고 있습니다. 지금도 삼동결재 기도며 동지기도며, 성도재 정월기도, 입춘기도, 부처님 출가로부터 열반에 이르는 정진기도…. 수없이 인연 맺으며 정진하고 청법하며 오늘에 이르러 또 한해를 보내고 맞이하는 그런 자리에 우리는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사바세계는 대다수가 물질적인 경계에서 행복을 느끼며 산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 행복은 우리를 진정으로 만족케 하거나 우리가 지닌 여러 가지 문제들을 해결해 주지는 못합니다.

아이리스 머독(Iris Murdoch, 1919∼1999)이라는 여류 작가는 한 소설에서 '나의 행복은 슬픈 얼굴 되어서 다가온다. 나의 행복은 슬픈 얼굴을 하고 있다. 너무 슬퍼서 오랫동안 나는 그것을 불행인 줄 알고 내던졌었다. 행복은 때때로 슬픈 얼굴로 다가온다.'

며칠 전 조간신문에 '웃는 듯 마는 듯 살짝 내비치는 모나리자의 미소를 미국 일리노이 주립대와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대학교 연구진이 공동 개발한 '감성 인식 소프트웨어'로 분석한 결과는 미소 뒤에 숨겨진 모나리자의 감정은 행복이 지배적이었지만, 그림 속의 모나리자의 감정을 행복한 감정 83%, 혐오 9%, 두려움 6%였고 2% 정도는 화난 감정도 있더라는 것이었습니다.

세간에서 그린 얼굴로는 최고의 찬사를 보내는 다빈치의 명화라고 합니다만 겉으로는 웃는 것으로 보이지만 그 이면에는 다른 감정도 복합적으로 얽혀 있더라는 기사를 보면서 느끼는 생각은 세속적인 세간 사람들의 모습입니다. 그러나 불교에서 모신 탱화 속의 관세음 보살님이나 미륵반가사유상의 모습은 우리네 어머니의 모습에서 우러나오는 따뜻한 기운이 믿음으로 다가옵니다.

내가 지나온 모든 길은 곧 당신에게로 향한 길이었다.

내가 거쳐온 수많은 여행은 당신을 찾기 위한 여행이었다.

내가 길을 잃고 헤맬 때조차 나는 당신을 향해 걸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내가 당신을 발견했을 때, 나는 알게 되었다.

당신 역시 나를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는 사실을….

시(詩)/ 잘랄루딘 루미(Jalāl ud-dīn Muhammad Rūmī)

보살이 십바라밀다(十波羅蜜多)* 중에 다른 것을 행하지 아니함은 아니지마는 힘을 따르고 분수를 따라 행함이 불자의 보살행을 알았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