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지기도 때 나누어 드릴 내년도 달력을 만들기 위해 그동안 찍어온 사진들을 살펴보고 있습니다. 그런데 세상이 얼마나 좋아졌냐면, 디지털 카메라로 찍어온 사진을 컴퓨터에 연결해 보니 너무나 편합니다.

처음 사진을 찍을 때는 일반 필름을 사용했고, 어느 날부터인가 슬라이드 필름을 사용했는데, 하루는 조그만 디지털 카메라로 사진을 찍어보았습니다. 그랬더니 필름을 넣을 일이 없었습니다. 여기서 조금 더 욕심을 내어 해상도가 좋은 디지털 일안리플렉스(DSLR) 카메라를 장만하여 9월 달에 수미산을 순례하며 몇 천 커트를 찍어 보았습니다.

이렇게 찍은 사진을 예전처럼 현상이나 인화의 작업없이 잠시 잠깐 컴퓨터에 연결하면 시디에 옮길 수도 있고, 별도의 과정없이 바로 컴퓨터 화면에서 펼쳐볼 수도 있었습니다. 또, 사진이 저장된 ‘메모리 카드’는 필름과 달리 사진을 지울 수도 있고, 저장된 사진을 지우면 몇 번이고 다시 사용할 수 있다고 합니다. 필름을 사용하던 예전에는 사진 작업을 일주일이나 열흘을 해도 사진이 마음에 안 들고, 어떤 사진은 아무리 좋아도 인연이 안 닿으면 안 보였습니다. 한 달이 넘는 시일동안 살펴봐야 할 사진도 많고 그렇게 고른 사진들은 우리가 한 달이라 약속한 365일을 곁에 두고 늘 봐야 하는 사진입니다.

제가 보기에 달력에 사용되는 사진은 편안해야 하고 좋아야 하고 인위적이지 말아야 합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이러한 사진을 찾는데 이틀 밤을 작업해서 끝냈습니다. 세상 좋아졌습니다. 그렇게 좋아졌을 수가 없습니다. 컴퓨터로 연결된 사진들은 컴퓨터 화면 안에서 마치 전시장 사진처럼 차악 차악 펼쳐지니 마음이 편합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수천년 수만년 시작이 없는 세월로부터 억겁천생을 살아오며 반복해서 살아왔습니다. 앞으로도 살아갈 것이라는데 앞의 것 다 잊어버리고 거기서 따라붙은 그림자처럼 업풍으로 작용하는 일들만 나타나고 있습니다. 우리는 언제까지 이러한 상황 속에서 반복할 것인가, 한번 들여다 볼 수 있는 내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부처님의 가르침과 승가(僧家), 스님들께 몸과 마음을 다 일으켜서 의지하고 그것을 행동으로 옮길 수 있는 발심이 중요합니다.

욕심은 적으나 만족함을 안다고 할 것이 없는 사람도 있고, 만족할 줄도 아나 욕심이 적다 말할 것도 없고, 욕심도 적고 만족함을 아는 이도 있고, 만족할 줄도 모르고 욕심도 적다고 할 수 없는 사람이 있습니다.

불자는 삼귀의 오계를 지녀야 하며 인과를 믿고 윤회를 부정하지 않아야 합니다. 이런 말씀은 다른 스님이나 불교를 믿고 있는 이들은 다 숙지하고 있는 부분입니다. 불자라면 불법승 삼보전에 돌아가 의지하고 살생하지 아니하며 방생하고 남의 물건 훔치지 아니하며 보시하고 사음하지 아니하며 맑고 청정하게 살고, 거짓말 하지 아니하며 진실 된 말을 하고, 술을 먹지 아니하며 온전한 삶을 살도록 노력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요즘 세계적으로 부는 바람에 허깅(hugging) 운동이 있습니다. 이를테면 품에 안아주는 운동입니다. 오늘 새벽 철야기도 회향하면서 끝나는 시간에 불자님들께 이런 말씀을 드렸습니다. “오늘 땀 흘린 신심과 서원의 정진력을 가져다가 남편을 꼭 보듬어 안고 그 에너지를 주고, 남편이 왔었다면 아내에게, 부부가 함께 왔다면 둘이서 함께 상응하는 나눔을 가지고, 자식이나 시어른도 오늘 철야 정진한 그 기운과 위신력 가피력을 가지고 인사를 드리면 굉장히 기뻐하고 좋아하실 것이다.”라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저는 원효대사의 이야기에 나오는 대안스님 정도로 살고 싶습니다. 무애행을 했던 원효스님보다 길거리에 다니며 대안(大安)! 대안(大安)을 외치던 대안스님을 더 닮고 싶습니다. 어미가 죽어서 죽어가는 새끼 동물에게 젖을 구해다 먹이며, 작은 생명을 살리는 그런 모습의 대안스님께 저는 더 깊이 감동합니다.

금강경을 보면 수타원(須陀洹), 사다함(斯陀含), 아나함(阿那含)이 나옵니다. 여기서 욕심이 적은 이는 수다원이요, 만족함을 아는 이는 연각(緣覺)이며, 욕심이 적고 만족함도 아는 이는 아라한(阿羅漢)이요, 욕심도 적지 않고 만족함도 모르는 이가 보살(菩薩)입니다. 그런데 저는 다른 부분은 몰라도 절 짓는 쪽 욕심도 적지 아니하고 만족함도 모르니…. 이제 위로가 됩니다.

우리들이 지니고 있는 ‘에너지’라는 것은 착한 마음으로부터 우러나는 선근과 지혜로써 갈무리 되어지는 자비입니다. 이러한 지혜와 자비가 복합적으로 일어나야 한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우리 말 가운데 “노느니 염불한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염불은 집에서도 할 수 있습니다. 아니 계신 곳 없는 부처님, 나보다 더 날 사랑하는 불보살님들이 늘 함께하는데 어딘들 안 들리는 곳이 있겠습니까. 그런데 나이 먹어가면서 운동하는 것도 공부하는 것도 기도하는 것도 뭔 일인가 하는 것도 혼자 하는 그게 만만치 않습니다.

공부도 독학한 사람들은 경계가 굉장하다 생각되어집니다. 나이 먹어 정년퇴직한 후, 대학원에 입학하고 노인대학에 들어가 수학하며 이런저런 일을 하는 많은 분들을 보면 보통 인물로 보이지 않습니다.

지혜와 자비를 이야기할 적에 따뜻한 마음으로 관심을 갖고 배려를 하고 어울림을 지니는 우리들이 되어야 한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이 자리에 제가 있기까지 얼마나 많은 분들이 저를 가꾸었겠습니까? 또 키워주셨습니까? 그리고 자양분이 되었겠습니까? 저는 또 얼마나 많은 이들의 은혜 속에 살았겠습니까? 그냥 독불장군처럼 자수성가한 것처럼 이 자리에서 제가 있게 된 것이 아닙니다.

세상에 좋은 일을 하면 세 가지 유형으로 드러납니다. 하나는 스스로 발심해서 하는 일입니다. 내가 스스로 마음을 일으켜서 하는 일입니다. 두 번째는 상대가 원해서 필요하기 때문에 하는 일입니다. 재해나 연말연시 불우이웃 돕기와 독거노인 돕기 등이 여기에 해당됩니다. 세 번째는 가르치기 위해서 해야 하는 일입니다.

보리심(菩提心)이라는 것은 자비심(慈悲心)이고, 이타심(利他心)이고, 선근(善根)이고 올바른 마음이라 하는 것입니다. 불법승(佛法僧) 삼보(三寶)에 돌아가 의지하는 것을 서약하고 보살계(菩薩戒)를 받고 불교의식에 공식적으로 동참해서 참가하는 것만이 불법승 삼보전에 참으로 돌아가 의지할 그런 확신, 신념, 그러한 스승, 그러한 가르침, 그러한 선지식, 이런 관계가 구성되어서 어울림을 가질 때 설혹 계를 받지 않고 그런 불교의식에 참여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그 사람도 참 불자라는 사실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