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자 도올 선생이 어느 날 달라이 라마에게 여쭈었습니다.

“불교가 무엇입니까?”

이 질문에 달라이 라마께서는

“불교는 과학이오.” 답했습니다.

도올 선생은 이 말씀을 들으면서 울컥 가슴에서 감격해서 눈물이 났다고 합니다. 만일에 과학자가 와서 불교가 무엇이냐 여쭈어 보면 제가 추측컨대 달라이 라마께서는 “불교는 철학이다.”라고

답변했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저에게 불교가 무엇이냐 누군가 물어온다면 저는 “불교는 인간학입니다.”라고 답할 것입니다. 불교가 인생과 다르지 않듯이 부처님의 가르침은 세간을 떠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중생을 도와 이롭게 할 수 있을 때 육도 윤회의 업연은 사라질 것입니다. 중생을 도와 이롭게 할 수 있을 때 이것은 보살행을 의미합니다. 정견(正見)으로부터 정사유(正思惟), 정어(正語), 정명(正命), 정정(正定)이라는 성인의 도인 팔정도를 실천하고 육바라밀을 닦아 나가는 그 보살은 중생을 위하는 일입니다. 불사(佛事). 여래사 불사, 용인 법계선원 불사.... 불사라는 말을 많이 쓰고 있는데 불사의 적절한 대의는 부처님 일입니다. 부처님 일은 중생을 이롭게 하는 일입니다.

법회를 마치고 옆자리 분들을 한번 봐 주세요. 눈빛도 한번 보고 얼굴 색도 한번 보고, 그 분의 몸에서 일어나는 에너지 기운을 한번 느껴 보십시오.

우리는 중생을 도와서, 뭇 중(衆), 날 생(生). 뭇 살아 있는 모든 생명을 도와서 이롭게 할 수 있을 때 업연으로 육도를 윤회하는, 업력은 윤회를 낳고 원력은 환생을 낳습니다. 지장보살님이 지옥에 환생하고 관세음보살이 사바에 환생하고 환생하는 그 이치를 보게 되면 육도윤회의 업연이 사라집니다. 타던 불이 꺼져야 끓던 물은 잠잠하고 생각 생각이 보리심을 여의지 않으면 염념보리심(念念菩提心)이면 처처(處處)가 안락궁(安樂宮)입니다. 안락궁이라는 것이 따로 규정되어 정해져 있지 않습니다. 저는 늘 그런 생각을 합니다. 불교보다 더 좋은 종교나 불교보다 더 좋은 가르침이 있다면 저는 스스럼없이 불교를 떠날 수 있습니다. 제가 좋아서 있는 것이지 여러분들에게 붙들려서 있는 것은 아닙니다. 저도 무지하게 이기적인 사람입니다. 여러분들과 함께 어울림을 갖는 것은 제가 좋아서 하고 있는 것입니다.

나이가 들어 먹고 싶은 음식을 먹으면 보약이라 했습니다. 불자로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저는 어느 날부터인가 지장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그 전까지는 지장보살 기도를 은사 스님이 돌아가셨던 30여년전, 스님의 어린 제자들과 함께 49일간 한 적이 있었습니다. 은사 스님처럼 훌륭한 덕목을 지닌 스님께서 임명종시(臨命終時) 즉득왕생(卽得往生)해서 가시면 언제 오실지 모르겠지만, 은사 스님께서 무엇 때문에 49살에 세상을 떠나셨는지 모르겠지만, 스님이 인도환생하시게 하기 위해서 어린 20대에 지장기도를 하였습니다.

당시 제가 상좌들 중 제일 맏이라서, 저와 그 어린 다른 상좌들이 49일 동안 1주일씩 돌아가며 스님께서 인도환생하시길 한 마음으로 기도드렸습니다. 아쉽고 미진한 부분 다시 한번 살피시라고 기도 드렸습니다. 제 주변에는 전생에 인연 있는 이들이 제 가까이 사는 것을 목격한 일이 여럿 있습니다. 우리 스님도 오셨는데, 조금 더 관찰하고 있었습니다. 여러분들께서 인연이 있는 현재의 환경에 따라 기도하는 대상이 틀려집니다. 관세음보살님이나 지장보살님, 대세지보살, 문수, 보현, 미륵보살님이나 다 보살님입니다.

그렇지만 우리가 참선이나 기도나 절이나 주력을 해보면, 그 중 번뇌망상이 일어나지 않고 시간가는 줄 모르는 이러한 것들을 삼매라 할 수 있습니다. 삼매라는 것은 정지된 시간을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원효 스님도 ‘금강반야(金剛般若)는 지혜요, 금강삼매(金剛三昧)는 선정이다.’ 이렇게 규정지으신 것을 보면, 내가 여기에 머무는 것은 누가 붙잡아 있는 것이 아니고, 내가 좋아 머물고 있는 것처럼 불보살님이 나를 묶어두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자! 우리는 이렇게 짧은 시간, 수없이 많은 일들을 만나고 받아들이고 고개고개 넘어 열 두 고개 넘어 여기까지 왔는데, 저 또한 50고개 넘어 60고개에 걸쳐졌습니다.

제게 있어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기분 좋은 일입니다. 이상은 높고 현실은 어줍잖은 젊었을 때는 에너지는 넘치고 이 산 저 산, 이 강 저 강 헤매다 신세 버릴 뻔도 했습니다. 여기까지 버티는데 그게 보통 일이었습니까. 돌아가신 월하 큰스님께 스님의 젊은 시절을 어느 날 여쭈어 봤습니다.

“스님, 젊은 시절에 어찌 그 고비를 넘기셨습니까?”

“선방에 정진하다가.”

저는 30대 중반에 서울에 와서 20년 넘게 이곳에서 대중포교 한다고 하는 그 시간이 결국 저의 청춘을 소화시켜냈습니다.

어른은 어디 계셔도 보입니다. 어른은 어디에 있어도 자기 있을 그 자리에 있는 이가 어른입니다.

그동안 우리는 무엇을 했고 무엇을 얻었으며 지금 무엇과 함께 하고 있으면 가고 있는가.

남은 것은 무엇이고 남길 것은 어떤 것인가. 아마 그것은 허상의 그림자일 뿐 아무 것도 없다는 생각입니다. 사이버 공간에서, 가상 세계에서 현실을 실체가 있는 것으로 생각하는데 성주괴공(成主壞空) 생로병사(生老病死)는 시작 없는 곳에서부터 끊임없이 억겁(億劫) 전생으로부터 이루어진 우리의 과정은 온전하게 드러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어느 스님 말씀에, “우리의 삶이 이번 한 번으로 끝난다고 하면 아마 우리는 사람의 의미나 진정한 죽음의 깊이를 알 수도 없고 알 수 있는 기회도 주어지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다행스럽게 삶이라 하는 것은 태어남과 죽음의 연속되는, 반복되는, 지속되는, 변화하는 춤과 노래 같은 것일 뿐...”이라 하셨습니다.

생이라는 것은 어느 것을 쫓아왔으며 죽음이라는 것은 어느 것을 쫓아가느냐. 생이라는 것은 한쪽 구름이 허공에 일어남과 같고 죽음이라는 것은 한쪽 구름이 바람결에 흩어지는 것과 같습니다. 구름이라는 것은 본래 실다움이 없는 것처럼, 중생들의 생사거래, 나고 죽는 것도 또한 그렇습니다. 그러나 거기에 끄달림 없이 언제나 한결 같은 모습을 잃지 않는 주인공이 있으니, 생사에 끄달림이 없는 담연불수생사(湛然不隨生死), 나고 죽음에 끄달림이 없는 그러한 내 모습이 있다는 것을 잊어버리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욕심이 적고 만족함을 아는 이는 아라한입니다. 우리나라의 스님들 가운데 아라한이 많습니다. 그러나 저는 아라한은 되지 못해도 아라한으로 만족하지는 못합니다. 욕심도 적고 만족함을 알면 나도 안주해야 합니다. 그만 벌려야 합니다.

예전에 성철 스님은 삼천 배해야 사람들은 만나줬다고 합니다. 그 큰 스님의 법력도 크지만, 사람들이 삼천 배하는 동안 그 사람의 질문에 대한 해답은 다 나온 것입니다.

삼천 배를 아무리 빨리 해도 8시간 걸리는데, 8시간을 엎어졌다 일어났다 반복하며 오만 가지 생각을 했을 겁니다. 그런 연후 큰스님과 턱하니 만나, 척하니 한 말씀, 지나가는 말씀만 들어도 그게 모두 금쪽같은 말씀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여러분들게 기도하라고 권유합니다.

저 뒤에 있어도 보이는 이가 있고 앞에 있어도 안 보이는 이가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모르는 이니까 안 보이는 것입니다. 아는 이는 저 뒤에 있어도 보입니다. 왜냐하면 인식기관이라는 六根으로 보고 듣고 느끼는 것은 이미지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들의 얼굴은 영원한 자기 얼굴이 아닙니다. 제가 거처하고 있는 방에는 제 나이 15살 때 장삼 입고 법당 앞에 앉아서 찍은 사진이 하나 있습니다. 옛날 절에는 사진사가 상주했는데, 아마도 그 사진은 그때 찍은 사진인 모양입니다. 흑백 사진으로 찍어 놓은 그 사진이 제게는 없었는데 누간가가 갖고 있기에 아주 작은 반 짜리 그 사진을 확대해서 방에다 두었더니 듬직하게 느껴집니다. 그 사진만 봐도 알아봅니다. “평생 절에 머물다 가게 생겼구나.”, 그게 아마도 15살인가 14살인가 그랬을 때입니다.

요즘 들어와 사진으로 저 자신을 돌이켜 보면, 제일 좋았을 때 사진은 40 전후로 찍은 사진입니다. 아마 앞으로 향후 10년 후에는 지금의 제 얼굴 “좋네! 젊네!” 이럴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그 모습이나 그 생각이나 그 관념 전부는 허상의 그림자일 뿐입니다. 지금의 내 모습을 소중히 간직하자는 것입니다. 지금 내 모습에 불만을 가지지 말자는 것입니다. 그런데 보살은 욕심도 적지 않고 만족함도 모르는 삶을 삽니다. 세속적으로 황당한 이야기로 보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그 욕심은 어디다 다 쓸까요?

보살은 끊임없이 회향하는 연고로 중생을 위하는 일이 아니면 하지 않는 그 모습이 보살이요, 육도를 윤회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는 그 모습입니다. 여기서 열심히, 마음, 초심(初審)을 일으켜 발심(發心)을 해서 행동으로, 행동이 수반되는 선근(善根)과 지혜가 결여되지 않는 이런 상태의 내 삶이 바로 수행이요 정진입니다.

열심히 기도합시다. 열심히 정진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