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도사 보광선원 뜰아래 가면 목련 한 그루가 서있습니다. 지난 동안거철에 나는 그 목련을 보면서 그동안의 내 삶을 반조해보는 기회를 가져보았습니다.

영축산에는 흰눈이 덮여있고 나뭇가지로는 삭풍이 스쳐 가는데도, 지난 가을 이파리마저 모두 땅으로 돌려보내고 삭막한 가지만을 간직하고 있던 목련의 마디마디에는 어느새 꽃몽우리가 하나둘 피어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는 어느새 꽃망울까지 터트릴 듯 하였습니다. 거기에서 나는 무심히 보고 흘려 지나쳐버리면 아무런 의미도 없을 목련 한그루지만, 그 생명체 역시 모든 것이 멈춰있고 죽어있는 것 같은 한겨울에 끊임없이 봄을 준비하고 있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범부의 눈으로 보면 춘하추동(春夏秋冬) 사계절도, 인생의 생로병사(生老病死)도 구분지어 나누어져 있는 것 같지만 이 역시 한겨울에 봄을 준비하고 있는 목련과 별반 다를 바가 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오늘 법회에서는 이와 같은 마음을 담아 <대반열반경(大般涅槃經)> 제16권에 나오는 부처님의 게송을 전해 드리겠습니다.

 

“불자들아, 보살마하살(菩薩摩訶薩)은 가르치는 이가 없지만 스스로 보리의 마음을 내었고, 마음을 내고는 부지런히 정진하며, 설사 큰불이 몸과 머리를 태우더라도 마침내 구원을 청하느라고 법을 생각하는 마음을 버리지 않느니라. 왜냐 하면 보살마하살이 항상 생각하기를 내가 한량없는 아승지겁(阿僧祗劫) 동안에 혹은 지옥(地獄)이나 아귀(餓鬼)나 축생(畜生)이나 인간(人間)이나 천상(天上)에 있으면서, 여러 가지 번뇌의 불에 몸을 태웠지만, 일찍이 결정한 법을 얻지 못하였으며, 결정한 법은 곧 아뇩다라삼먁삼보리(阿多羅三三菩提)이니, 나는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위하여 몸과 마음과 목숨을 아끼지 않겠으며,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위하여서는 이 몸이 티끌처럼 부서지더라도 뜻을 버리지 아니하고 부지런히 정진하리라. 왜냐 하면 부지런히 정진하는 마음이 곧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원인이기 때문이니라. 이와 같이 보살마하살이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보지 못하고도 이렇게 몸과 목숨을 아끼지 아니 하건데, 하물며 이미 보았음이랴. 그러므로 보살이 불가사의하니라.”

 

방금 들려드린 부처님의 법문은 ‘원하는 바에 대한 확신과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신념, 즉 신심을 확고히 하여 윤회(輪廻)를 부정하지 않고 인과(因果)를 믿으며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아 지니게 되면 그러한 사람은 이미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이루었기 때문에 말하고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 또한 이와 다르지 않다’는 가르침이라고 설명할 수 있습니다.

여기에서 인과라는 것은 직접적인 원인(原因)과 간접적인 결과(結果)를 말합니다. 이처럼 직접적인 것과 간접적인 것은 늘 함께 존재합니다. 화엄경(華嚴經)에서는 이를 이사무애법(理事無法)이라고 했습니다. 이를 떠난 사가 없고 사를 떠나서는 이 또한 없습니다. 마음 떠난 몸이 없고 몸을 떠나서는 마음 또한 없듯이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증득하는 것과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증득하기 위해 수행정진하는 것은 별개의 사안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그렇다면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증득하기 위해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첫째, 철저하게 자기를 버릴 줄 알아야 합니다.

지난 동안거철에 삼성동 봉은사 주지스님을 비롯해서 조계사와 도선사 주지스님 등 평소에 인연을 맺어왔던 여러 스님들이 통도사를 찾아 보광선원에서 안거수행중인 스님들께 대중공양을 하였습니다. 그 중 나와는 더욱 각별한 인연이 있는 봉은사 주지스님께서 ‘서울에서 그 많은 일을 벌려놓고 또 꾸려나가야 할 위치에 있으면서 어떻게 3개월씩이나 자리를 비울 수 있는지’를 물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대답을 했습니다.

“죽은 요량하고 왔습니다.”

나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무슨 큰일을 할 때면 항상 ‘나를 버린다’는 마음가짐과 자세로 임해왔습니다. 어떤 불사를 시작하든지 한 번 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으면 나를 접는 일부터 했습니다. 다시 말하면 세상에 내가 안 태어났다고 생각을 하고 일을 했다는 말입니다. 태어났다는 생각을 할 때 내 인생도, 내 삶도, 내 생활도 생각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났다는 생각을 접어두게 되면 내 인생도, 내 삶도, 내 생활도 한발짝 뒤로 물릴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해야만 마음먹은 불사에 일념으로 매진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그렇지를 못하는 것 같습니다. 그것은 마치 80, 90을 먹은 시어머니가 살림을 며느리에게 물려주지 못해 열쇠꾸러미를 쥐고 벌벌 떠는 모습과도 같은 것입니다. 평생을 해온 일이기 때문에 자기가 해야만 집안이 돌아갈 것 같고 살림이 될 것 같지만, 결국 언젠가는 그 시어머니도 죽게 될 것이고 죽게 되면 누가 해도 그 살림은 해나가게 되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때가 되었다 싶으면 미련 없이 내주어야 합니다. 세상 떠난 요량 하고 줄 줄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때를 알아서 주게 되면 옆에서 지켜볼 수가 있기 때문에 단점을 보완할 수도 있고 장점은 더욱 살려나갈 수도 있어서 그 집안은 더욱 번성해질 수가 있는 것입니다.

나는 이와 같은 신념을 평소에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구룡사 주지 소임을 맡겨놓고 선원안거에 들어갈 수도 있었으며, 여래사처럼 그렇게 절을 잘 지어 놓고도 주지와 총무 소임을 다른 스님께 맡길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두 번째는 집착(執着)과 과욕(過慾)을 부리지 말라는 것입니다. 내 것에 대한 집착을 하고 심지어는 내 것이 아닌데도 내 것으로 만들려는 과욕을 부려서는 안 된다는 말씀입니다.

옛말에 ‘복 없는 사람은 산해진미로 음식이 차려지면 토사광란(吐瀉亂)만난다”는 속담이 있습니다. 이 속담은 쓸데없는 과욕을 부리지 마라는 선조님의 경계의 말씀이기도 합니다.

또 통도사에도 과욕을 경계하는 실화가 있습니다. 통도사에 월하 큰스님의 스승이신 구하 노스님이 살아계셨던 일제시대 때의 일입니다. 그 당시는 총독부에서 주지 임명장을 주던 시절이었는데, 대중으로 있던 다섯 명의 스님들이 모의를 해서 구하스님을 제치고 총독부로부터 주지 임명장을 받아서 내려왔다고 합니다. 그리고 저녁에 가족들이 살고 있는 집에서 주지 취임식 준비까지 다 마쳐놓고 다음날 함께 절에 들어가기 위해 한 방에서 잠을 자다가 그만 가스에 질식해서 모두 저세상으로 가고 말았다고 합니다. 이 이야기는 통도사에서 지금도 복이 없는 이의 과욕을 경계하는 가슴 아픈 실화로 전해 내려오고 있습니다.

또 세 번째는 분별심(分別心)을 버리라는 것입니다.

괴로움이 생기는 연유가 무엇이겠습니까? 무엇 때문에 고통과 괴로움이 생기는 것입니까? 그것은 바로 어리석은 중생들의 분별심 때문입니다.

달라이라마스님께서 서양의 유명한 종교학자들과 고통을 주제로 토론을 한 일이 있었습니다. 그 때 달라이라마스님께서 하신 말씀 중에 ‘고통의 원인을 다른 말로 말하면 착각과 혼란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 착각과 혼란을 일으키는 마음을 지니고 있으면 마음을 괴롭히는 감정들이 들어난다’고 했습니다.

작년에 내가 봉은사에서 법문을 하는 중에 불자들에게 고통과 통증이 어떻게 다른지 물어본 적이 있었는데, 이에 대한 대답이 ‘고통은 괴로운데, 통증은 괴롭지 않다’는 것이었습니다. 고통이 통증이고 통증이 고통인데, 어찌해서 고통은 괴롭고 통증은 괴롭지 않다는 것입니까? 그것은 바로 어리석은 자의 분별심 탓입니다.

‘왜 하필이면 나만 아픈가’라고 생각하면 고통스럽습니다. 그러나 만일 노인이 몸이 아파도 ‘나이 먹어서 아픈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면 아픈 것이지 그로 인해 고통스럽기까지는 않다는 것입니다.

다함께 생각해보십시오. 아뇩다라삼먁삼보리는 무상정등정각(無上正等正覺)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생각하면서 ‘언제 깨칠 것인가’라고 생각을 하면 요원하게만 느껴질 것입니다. 그러나 반야심경(般若心經)에서도 “삼세제불(三世諸佛)이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이뤄주신 것은 마하반야바라밀다(摩訶般若波羅蜜多)를 통해서 이루어졌다”고 설했듯이 아뇩다라삼먁삼보리라고 하는 깨달음은 부지런히 정진하는 수단과 방법 속에서 그것은 서로 이어져 있는 것입니다.

마하반야바라밀은 무엇입니까? 수행정진입니다. 수행자가, 그리고 우리 불자들이 가야 할 길이요, 모습을 바라밀이라고 합니다. 따라서 차안(此岸)과 피안(彼岸)이라고 하지만 결국 바라밀은 더불어 살아가면서 수행하고 정진하는, 어디에도 치우치거나 얽매이거나 흔들림이 없는 그 마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증득하기 위해서는 수행정진이라고 하는 수레바퀴의 두 축과도 같은 방편과 지혜를 잘 활용하여 여여롭고 한결같은 마음을 갖는 일이라 할 것입니다.

이처럼 한결같은 마음이 온누리에 충만하여 가족관계는 물론 이웃관계에서도 서로가 서로를 따뜻하게 대하는 마음을 가지며 살기를 바라면서 부처님의 게송을 읊겠습니다.

“불자들아, 마치 어떤 집에 불이 난 것을 보고 뛰어나왔으나, 여러 자식들이 뒤에 떨어져서 화재를 벗어나지 못하게 되었더니, 장자는 자식들이 불에 타게 됨을 알고, 다시 들어가서 구원할 적에 자기의 몸을 돌아보지 않듯이 보살마하살도 그와 같아서, 비록 나고 죽는 허물을 알지마는 중생을 위하여서 싫어하지 아니하고 그 속에 있음과 같나니, 그러므로 이것을 불가사의 함이라 하느니라.”

“불자들아, 한량없는 중생들이 보리심을 내었다가도 생각 중에 걱정이 많은 것을 보고는 마음이 퇴타(退墮)하여 성문(聲聞)도 되고 연각(緣覺)도 되거니와 보살들로서 이 가르침을 들은 이는 마침내 보리심이 물러나지 아니하여 성문이나 연각이 되지 아니하나니, 이러한 보살은 비록 초지(初地)의 변동되지 않는 자리에 이르지 못하였더라도 퇴타하지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불가사의라 하느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