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불자들의 보시행(布施行)을 살펴보면 크게 세 가지 유형으로 나눠지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그 첫 번째는 스스로 마음을 내는 발심(發心)의 보시행입니다.

우리들이 부처님께 기도하고 법회에 참석하고 또 수행정진을 하는 것을 보아도 그렇고 보시하고 시주하고 공양하는 것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스스로 마음을 내서 자발적으로 하는 것이 그 첫 번째입니다.

오늘 이 법회에 마지못해서 억지로 오신 분들은 안 계실 것이라고 봅니다. 부처님을 뵙고 법회에 참석하기 위해 기쁜 마음으로 오셨을 것입니다. 이처럼 발심해서 움직이는 것을 우리는 첫 번째의 보시행, 즉 보살행이라고 합니다.

두 번째는 상대의 필요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보시행입니다.

소도 언덕이 있어야 비빈다는 속담이 있듯이, 언덕은 있는데 소가 없다면 비빌 일 또한 없게 마련입니다. 우리가 어려운 이들을 돕고 장애인들에게 보살핌을 주는 등 다양하게 봉사활동을 하는 분들을 잘 응용해서 생각해보면 알 수 있습니다. 자의적으로 발심해서 하는 것이 으뜸이요, 그 다음으로 상대의 필요에 따라 행동해야 할 일 또한 있게 마련인데, 그것이 두 번째 유형의 보시행입니다.

또 세 번째는 가르치기 위해서 이루어지는 보시행입니다.

부모가 또는 할아버지 할머니가 어린 자식과 손자의 손을 잡고 법당을 찾는 불자가족을 살펴보면 이에 대한 경우를 단편적으로 알 수 있습니다. 아장아장 걷는 아이의 손에 시주금이 든 봉투를 쥐어주면서 불전함에 같이 넣는 행동을 보여 주게 되면 그 다음에는 아이가 혼자서도 스스럼없이 불전함에 돈을 넣고 절을 하게 됩니다. 이러한 유형이 바로 가르치기 위해서 하는 세 번째 보시행입니다.

선후를 따지기는 했지만, 이 세 가지 유형은 어느 것 하나 버릴 것이 없고 모두가 필요한 것이라는 생각을 가져보면서, 「회향은 새로운 시작」이라는 명제에 대해서 함께 생각해보고자 합니다.

신심(信心)과 원력(願力) 그리고 정진(精進)과 회향(回向)을 나는 신 삼귀의(新三歸儀)요, 사홍서원(四弘誓願)이라고 표현합니다. 신심과 원력과 정진과 회향은 출가한 승가의 일원인 스님들이나 사부대중으로서의 일원인 재가자들이나 똑같이 필요한 것들입니다. 신심이 있어야 하고 정진력을 가져야 하며 또 원력이 있어야 하고 반드시 회향하는 삶으로 마쳐야 하는 것입니다. 진정한 회향은 곧 새로운 시작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불자들아, 여래의 공덕은 가령 시방에 계시는 일체 모든 부처님께서 불가설 불가설 불찰 극미진수의 겁을 지내면서 계속하여 말씀하시더라도 다 말씀하지 못하느니라.

만약 이러한 공덕문을 성취하고자 하거든 마땅히 열 가지 넓고 큰 행원을 닦아야 하느니라. 열 가지라 함은 무엇인가. 첫째는 부처님께 예배하고 공양하는 것이요, 둘째는 부처님을 찬탄하는 것이요, 셋째는 널리 공양하는 것이요, 넷째는 업장을 참회하는 것이요, 다섯째는 남이 짓는 공덕을 기뻐하는 것이요, 여섯째는 설법하여 주시기를 청하는 것이요, 일곱째는 부처님께 이 세상에 오래 계시기를 청하는 것이요, 여덟째는 항상 부처님을 따라 배우는 것이요, 아홉째는 항상 중생을 수순하는 것이요, 열째는 지은바 모든 공덕을 회향하는 것이니라.』

 

아마 오늘 법회에 참석한 노보살님 중에는 10대 때 출가를 해서 20년 가깝게 통도사에서 수행했던 어린 시절의 내 모습을 기억하시는 분들도 계실 것입니다.

그리고 30대 중반이었던 1985년 음력 5월 초하룻날 어른 스님의 뜻에 따라서 서울 구룡사의 주지 소임을 맡아 통도사를 떠났습니다. 당시 구룡사는 지금의 양재동에 있지 않고 가회동에 있었는데, 신도라고 해야 10여명에 불과했습니다. 그것도 통도사하고 인연 맺어서 근근이 찾아오는 이들이 전부였습니다. 그렇게 주지 소임을 맡아서 구룡사에 도착해보니, 70이 넘은 한 할머니가 마치 양귀비가 “소후(小后 : 작은 황후)야” 하고 부르듯이 뒷짐을 딱 지고서는 “주지 새로 왔다며?”라고 큰 소리로 물어왔습니다. 그렇게 구룡사와의 첫 인연을 시작으로 22년간 서울에서 포교활동을 하면서 현재 양재동의 구룡사를 비롯한 20여개의 통도사 포교당을 만들어놓고 22년 만에 다시 통도사로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그 22년도 지금 생각해보니 금방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22년의 기간 동안 내 나름의 이상은 높았습니다. 그러나 힘은 넘쳐났지만 현실은 어줍잖았습니다. 그 당시의 심정을 나는 「부처님 품안 따뜻한 가정」이라는 책을 통해, 「내 어릴 적 꿈은 운전수였네」라는 책을 통해, 그리고 「길을 묻는다. 불에 달군 돌을 입에다 물고」라는 책을 통해 표현을 했습니다. 불에 달군 돌을 입에다 물 수 있습니까? 당시 나는 사람 살아가는 것이 어쩌면 그 모습처럼 보였습니다. 또 언젠가는 한 노스님께 “스님, 봄인가 싶으면 가을입니다.”하고 물으니까, 씨익 웃으시며 하시는 말씀이 “나는 천 길 낭떠러지로 떨어지고 있는 기분이다.”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시간 가는 것이, 세월 가는 것이, 나이 먹는 것이 천 길 낭떠러지로 지금 떨어지고 있는 숨 가쁜 심정임을 그렇게 단적으로 표현 하실 때 나는 소스라치게 놀라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신심과 정진력과 원력으로 회향하는 삶을 살아야겠다고 발심을 했습니다.

그러한 생각 때문인지 나는 통도사 주지 소임을 맡은 뒤 하루 이틀 상간으로 후원을 들어갑니다. 후원이 뭐하는 곳입니까. 반찬 만들고 국 끓이고 채전 다듬고 하는 공양간입니다. 그곳에 들어가서 소임자들을 격려하고 다독거리고 부족한 것 있으면 채워주고 하려고 들어갑니다.

왜 그렇게 하겠습니까?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가는 지난 40년간의 세월을 그냥 흘러간 세월로만 바라보지 않고 처음 출가했을 때의 초심, 서울 구룡사 주지 소임을 맡았을 때의 초심을 잃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다시 말씀 드리면, 유행가 가사에서처럼 100년 살기도 힘든 세상인데 천년을 살 것처럼 계획을 잡아서 살고 있는 게 우리들의 현실이지만, 살아있는 순간순간을 최선을 다해서 열심히 살아 갈 수 있도록 노력하는 사람이 진정으로 후회 없는 인생을 사는 것이 아닐까를 다시금 생각하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그렇게 살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앞에서 언급했듯이 신심이 있어야 하고 정진력을 가져야 하며 또 원력이 있어야 하고 반드시 회향하는 삶으로 마쳐야 하는 것입니다.

그 중 신심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곧 생명력입니다.

화엄경에서는 신심을 도의 근본이요, 공덕의 어머니라고 했습니다. 믿음이라고 하는 것은 줄자로 잴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질량의 법칙에 따라 저울에 달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그 신심이라는 생명력이 있어야만 원력을 세울 수가 있습니다.

원력이라는 것은 정직한 마음을 가지고 살아갈 때 올바로 세울 수가 있습니다. 즉 신심이라는 생명력을 가지고 정직한 마음으로 세상을 살아가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또 정직하다는 것은 성실한 삶을 의미합니다. 그것이 곧 정진이요, 육바라밀도요, 보살행입니다. 그렇게 발심을 통해서 어울림을 가지고 세상을 살아가는 것이 보살행입니다.

마지막으로 회향을 함께 생각해봅니다. 회향이 무슨 뜻입니까? 되돌려 주는 것입니다. 주어도 주었다는 생각 없이 받을 것이라는 생각 없이 주는 것을 말합니다. 그 나눔의 개념이 곧 회향의 정신입니다.

개인적으로 나는 우리의 불자들이 더러는 인생을 몇 차례 정리하면서 시주하기도 하고 보시하기도 하고 공양하기도 하고 사회에 환원하기도 하고 복지기관이나 학교에 기증하기도 하지만, 가족들이 다함께 가신 분을 위해서 재를 올려주는 모습은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찾아볼 없는 아름다운 모습이라는 생각을 하곤 합니다. 이처럼 마지막까지 복을 짓고 덕을 쌓고 지혜를 증장할 수 있는 종교는 오직 불교만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기도의 시간을 가지는 것이 바로 49재요, 100재입니다.

또 개인적으로 나는 많은 법회와 많은 기도와 많은 만남을 여러 불자들과 함께 하고 싶다는 원력을 세워놓고 있습니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우리들은 세상에 가장 가까이 있는 이를 자기 자신이라고 생각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로미오와 줄리엣의 사랑을 최고의 사랑처럼 이야기 하지만 기실은 그렇지가 않습니다. 어머니들에게 물으면 젊었을 때는 남편을 사랑한다고 하다가 자식이 생기면 자식을 사랑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더 절박하게, 그리고 이성적이고 객관적으로 파고들어 가보면 이 세상에 가장 사랑하는 사람은 나요, 가장 미워할 수 있는 사람 또한 나입니다.

나보다 더 나를 사랑하시는 분은 불보살님입니다. 그러나 중생심을 가지고 있는 우리들의 마음으로는 나 스스로만이 나를 가장 사랑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나와 가장 가까운 이들은 가족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중생심을 가지고 있는 우리는 어떻게 어울림을 가져야 하겠습니까? 관심과 배려와 친절함으로 어울림을 가져야할 것입니다. 부처님께서는 그것을 이렇게 표현을 하셨습니다.

 

『불자들이여, 모든 중생이 병에 붙들리기도 하고 늙음에 시달리기도 하며 가난함에 쪼들리기도 하고 재난을 만나기도 하며 나라법을 어겨 형벌을 받게 될 적에 믿는 데가 없어 매우 두려워하는 이들을 내가 구제하여 편안케 하고, 다시 생각하기를 내가 모든 법으로써 중생들을 섭수하여 모든 번뇌와 나고 늙고 병들고 죽는 이들의 근심과 걱정의 고통에서 벗어나게 하며 선지식을 가까이 뵙고 법보시를 항상 행하고 착한 업을 부지런히 지으며 여래의 청정한 법에 몸을 얻어 반드시 변하지 않는 자리에 머물러 지이다 하느니라.』

결국은 태어나지 않았다면 늙을 일도, 병들 일도, 죽을 일도, 근심·걱정·고통·괴로움에 빠질 일도 없습니다. 요즘말로 말하면 도미노게임 같아서 무명이라는 무지한 어두움을 하나 밝음으로 비추어서 들여다보면 반사작용으로 일어나는 나머지의 것들은 다 사라진다는 말입니다.

불을 끄면 어둡습니다. 불을 밝히면 밝습니다. 그러나 불을 켰다고 해서 어두움이 쫓겨나는 것은 아닙니다. 밝은 것만큼 어두움은 사라지는 것일 뿐입니다. 결국 어리석음과 지혜는 한자리에 머무를 수가 없는 것입니다.

결국은 생명력을 가지고 정직한 마음으로 진지하게 살면서 나눔을 통해서 어울림을 가져야한다는 말씀입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보시와 시주와 공양을 통해 보살행을 닦는 것이 우리 불자의 길이라는 말씀입니다.

부처님께서는 보살이 보시하고 시주하고 공양하는 것은 명예나 이익을 얻기 위해서가 아니고 남을 속이기 위해서도 아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따라서 보시를 했다고 해서 교만한 마음을 내거나 내가 너에게 이런 도움을 줬으니까 은혜 갚기를 바라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보시를 할 적에는 스스로를 돌아보지 말아야 하고 받을 사람을 가려서도 안 된다는 말씀을 드리면서 오늘 법문을 마치고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