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반경(涅槃經)≫에 보면 사자후보살(師子吼菩薩)이, 「늘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지혜(智慧)가 능히 번뇌(煩惱)를 깨트린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어찌해서 다시 선정삼매(禪定三昧)를 닦아야 하는 것입니까?」라고 부처님께 여쭙는 대목이 나옵니다.

사자후보살의 질문에 부처님께서는, 「불자들이여, 만일 선정을 닦으면 바른 지혜와 바른 소견(所見)을 얻느니라. 이런 뜻으로 내가 말하기를 만일 선정을 닦으면 색수상행식(色受想行識)의 생멸(生滅)하는 모양을 본다 하였느니라. 불자들이여, 선정을 닦지 않고는 세간(世間)의 일도 알지 못하거늘 하물며 출세간(出世間)의 일을 어찌 알며, 만일 선정에 힘이 없으면 평지에서 엎어지고 마음으로 다른 법(法)을 반연(攀緣)하고 입으로 다른 말을 이야기하고 귀로 다른 소리를 듣고 마음으로는 다른 이치를 이해할 것이며, 다른 글자를 만들려고 손으로 다른 글을 쓰고 다른 길로 다니려고 몸을 딴 데로 가려 하거니와, 만일 선정삼매를 닦는 이는 크게 이익되어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이르느니라.」라고 대답하셨습니다.

여기에서 지혜는 무엇입니까? 요즘 시대에 관심이 있는 단어로 말하자면, 비파사나라고 할 수 있고 우리 불가(佛家)에서 그동안 일상적(日常的)으로 써왔던 단어로는 반야(般若)입니다. 또 선정이라는 단어 역시 요즘 시대에 관심이 있는 단어로 말하자면, 사마타라고 할 수 있고 우리 불가에서 일상적으로 쓰고 있는 단어로는 삼매(三昧)입니다.

즉, 원효(元曉)스님이 ≪금강삼매론(金剛三昧論)≫에서 ‘금강반야(金剛般若)는 지혜요, 금강삼매(金剛三昧)는 선정’이라고 말씀하셨듯이 반야와 지혜는 둘이 아니며, 선정과 삼매 역시 둘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일상의 일을 비유로 들어본다면, 얼마 전에 한 사람이 내게 찾아와서 자신의 잘못을 참회(懺悔)한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의 이야기를 가만히 들어보니 나에게 참회할 일이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 참회해야 할 일이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그런 번뇌와 망상(妄想), 그런 중생심(衆生心)을 일으킨 현재의 자기 모습이 본래부터 청정무구(淸淨無垢)했던 자기의 본심(本心)에게 미안한 마음을 가져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중생들은 참된 자아(自我)가 곧 부처성품의 자리임을 망각한 채 방황(彷徨)하고 갈등(葛藤)하고 고통(苦痛)받고 괴로움에 시달리면서 자신의 삶을 스스로 탕진(蕩盡)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지금 우리가 수행정진(修行精進)을 하고자 하는 것은 우리를 본성(本性)의 자리로 이끌어가는 방법(方法)이요 수단(手段)인 것입니다.

여기서 선정삼매를 나를 들여다보는 것으로 생각하면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현대적으로 말하면 명상(瞑想)이요, 참선(參禪)입니다.

그런 명상, 그런 참선, 그런 선정삼매를 해야 바른 지혜와 바른 소견이 나온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지혜가 있는 사람은 언제 어떤 상황이 벌어져도 일도양단(一刀兩斷)을 할 수가 있습니다.

지금은 고인(故人)이 된 현대그룹 정주영 회장의 행적(行蹟)을 들여다보아도 쉽게 이해가 갈 것입니다. 예를 들자면, 현대건설이 사우디에서 일을 수주해서 마쳤는데 당시 그 나라가 혼란스러워 공사대금을 받지 못할 상황이 되었다고 합니다. 이로 인해 직원들은 불안해하고 회사의 운영 또한 진퇴양난(進退兩難)의 위기를 맞았다고 합니다. 그 때 정회장의 결정은 돈 대신 기름을 가져오는 것이었습니다. 거기에 달러는 없겠지만 기름은 많으니까 공사대금을 기름으로 가져와서 팔면 된다는 판단에서였답니다.

또 아산만을 막아 간척지를 개간할 때도 간만(干滿)의 차가 심하여 둑을 막는 일이 쉽지 않았답니다. 바위와 자갈을 섞어 막아놓으면 물살에 휩쓸려가기를 반복하자 정회장이 생각해낸 방법은 낡고 큰 배를 고철로 사와서 아산만에 턱 얹어놓고 둑을 쌓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둑을 다 쌓은 뒤에는 그 배를 뜯어서 고철은 다시 용광로에 넣어 쇠를 만들어 배 값으로 사온 돈보다 몇 배를 더 남겼다고 합니다.

이러한 일은 이론(理論)과 논리(論理)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선정삼매를 통해서 반야지혜를 증득한 뒤 소견을 얻게 되어야만 가능한 일입니다. 학문(學問)과 이론만으로 모든 일이 되는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상황에 따라서 일도양단할 수 있는 올바른 소견을 가질 수 있는 것은 선정삼매를 통해서 반야지혜를 증득할 때만이 가능한 일이라는 말씀입니다.

≪반야심경(般若心經)≫에서도 말씀하기를 『관자재보살(觀自在菩薩)이 깊고 깊은 반야바라밀다(般若波羅蜜多)를 행할 때에 오온(五蘊)이 공(空)함을 비추어 보고 고해(苦海)를 여의었느니라. 사리자야, 색(色)이 공(空)과 다르지 아니하며 공(空)이 색(色)과 다르지 아니하니, 색수상행식(色受想行識) 또한 그러하느니라.』라고 설했던 것입니다.

여기서 ‘색수상행식’이라는 오온을 공한 이치로 본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있는 그대로가 곧 공이라는 것입니다. 또 색이라는 현상은 무엇입니까? 있는 현상이 곧 색입니다. 다시 말해서 있는 현상과 있는 그대로는 다르지 않다는 것입니다. 다만 느끼고 못 느낄 뿐, 보고 보지 못할 뿐, 알고 알지 못할 뿐입니다.

그러나 선정삼매를 닦으면 바른 지혜와 바른 소견이 나와서 오온의 생멸하는 모양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누가 반야지혜를 닦아야 하며, 누가 선정삼매를 닦아야 하고, 누가 버리는 것을 닦아야 하겠습니까?

이에 대한 대답을 부처님께서는 ≪열반경≫에서 이렇게 설하셨습니다.

『불자들아, 보살 마하살이 두 가지 법을 구족하면 크게 이익을 얻으리니, 하나는 선정삼매요, 둘은 반야지혜니라. 불자들아, 왕골을 비빌 적에 급히 서두르면 끊어지나니 보살이 이 두 가지 법을 닦는 일도 그와 같으니라. 불자들아, 굳게 박힌 나무를 뽑을 적에는 먼저 손으로 흔들면 뒤에 빠지기가 쉽듯이 보살의 선정과 지혜도 그와 같아서 먼저 선정으로 흔들고 나중에 지혜로 뽑아야 하느니라. 불자들아, 때 묻은 옷을 빨 적에 먼저 잿물에 담그고 뒤에 맑은 물로 씻으면 옷이 깨끗하여 지나니, 보살의 선정과 지혜도 그와 같으니라.』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조리 있게 말을 하고 쓸 줄 알며 상대가 이해할 수 있으면 그것을 지식(知識)이라고 합니다. 그렇지만 지혜(智慧)는 눈으로 보는 것도 아니고, 귀로 듣는 것도 아니고, 말이나 필설(筆舌)로 가늠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지혜는 이론(理論)으로 성립(成立)되는 것도 아니고 그냥 얻어지는 것도 아닙니다.

보시·지계·인욕·정진·선정·반야(布施·持戒·忍辱·精進·禪定·般若) 즉, 육바라밀(六婆羅蜜)을 반야에서부터 거꾸로 생각해 보면 지혜는 그냥 생기지 않음을 알 수 있습니다. 선정삼매가 이루어져야 반야지혜가 드러납니다. 그렇다면, 선정삼매는 그냥 생깁니까? 반드시 진지한 수행정진이 선행(先行)되어야만 이루어집니다.

또, 정진이라는 진지한 삶의 모습은 그냥 되는 것입니까? 참지 않고 사는 사람이 어떻게 진지하게 살 수 있겠습니까? 인욕이라는 것은 슬프고 괴로운 것만 참는 것이 아니라 기쁘고 즐거운 것도 참을 줄 아는 것, 극과 극에 치우치지 않는 것, 고행에 빠지지 않으며 쾌락에 빠지지 않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면 인욕이라는 것은 또 그냥 되는 것입니까? 그것은 지계정신(持戒精神), 준법정신(遵法精神)의 경계 안에서 살 줄 아는 것입니다.

지계가 없으면 인욕을 할 수 없습니다. 인욕하지 못하는 사람은 정진하지 못합니다. 진지한 삶을 살 수 없습니다. 따라서 수행정진하지 못하는 사람이 어떻게 선정삼매에 들며 선정삼매를 닦지 못한 사람이 어떻게 반야지혜를 드러내겠습니까?

결국 시작은 보시로부터 해야 합니다. 나눔이 없는 사람이 준법정신, 지계정신을 지니고 살 수 있겠습니까? 어리석은 사람이 나눌 수 있겠습니까?

지혜 있는 사람만이 나눌 수 있는 것입니다. 결국 지혜가 있어야 나눌 수 있고, 나누는 사람이 준법생활을 할 수 있으며, 그 사람이 인욕도 할 수 있고, 바로 그런 사람이 수행정진도 제대로 할 수 있으며, 또 그런 사람이 선정삼매에 들 수 있고, 반야지혜를 드러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반야지혜가 있는 사람이어야만 나눌 수 있는 것입니다.

왕골을 꼴 적에도 급하게 서두르면 끊어집니다. 여러 가닥이 살살 얽혀야 끊어지지 않고 튼튼하게 꼬이는 것처럼, 두 가지 법을 구족해야만 크게 이익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그 큰 이익 두 가지 중 하나는 선정이요, 나머지 하나는 지혜입니다. 이 둘은 수레의 양쪽바퀴와 같은 것입니다.

나무를 뽑는 것처럼 선정으로 뿌리를 흔들고 지혜로 뽑는 것도 이와 같은 이치입니다.

다시 ≪열반경≫의 부처님 말씀을 인용해보면 이렇습니다.

『부처님이시여, 어떤 것을 보살이 때와 때 아닌 것을 안다고 합니까?』

『불자들아, 보살마하살이 즐거움을 얻는다하여 교만심(驕慢心)을 내거나, 법을 잘 연설한다 하여 교만심을 내거나, 수행정진을 한다고 하여 교만심을 내거나, 이치(理致)를 잘 알고 문답(問答)을 잘한다 하여 교만심을 내거나, 나쁜 벗을 가까이 하면서 교만심을 내거나, 소중한 물건을 보시하면서 교만심을 내거나, 세간의 선한 공덕(功德)을 짓는다 하여 교만심을 내거나, 세상의 지위(地位)높은 사람들에게 공경(恭敬)을 받는다 하여 교만심을 내거든 이때에는 지혜를 닦지 말고 선정을 닦아야 할 줄을 알지니, 이것을 이름 하여 보살이 때와 때 아닌 것을 안다 하느니라.』

부처님의 이 말씀은 벼가 익으면 익을수록 더 고개를 숙이듯이 훌륭한 인격을 지니고 사는 사람은 인격을 갖추면 갖출수록 더 겸손하고 겸허하게 사는데, 그렇지 않은 사람은 조금 안다싶으면 목에 힘부터 들어갑니다.

연설을 잘 한다 하여, 기도를 잘한다 하여, 수행을 잘 한다 하여, 정진을 잘 한다 하여, 이치를 알고 문답을 잘 한다 하여, 소중한 물건을 사회에 내놓고 시주를 했다하여, 세간의 선한 공덕을 짓고 헌신했다고 하여 상을 내고 교만심을 부리는 이들이 이들이라 할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 모두는 교만심이 날 때에는 지혜를 버리고 선정삼매 즉, 나를 들여다볼 수 있는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그리고 때와 때 아닌 것을 아는 공부를 해야 합니다.

그렇게 해야만, 헝클어진 매듭을 풀 듯 중생의 경계인 번뇌와 망상을 풀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