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베트는 인류평화의 리트머스 시험무대
달라이라마의 정교일치(가덴포당)400년 역사가 막을 내리고 있다. 달라이라마의 정치적 지도자 은퇴 이후 불거졌던 후대 달라이라마 선정 여부도 표면적으론 잠잠한 상황이다. 지난 1년간 헌법이 개헌 되고 크고 작은 조직이 개편되었다. ‘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고 했던가. 티베트 난민들은 가늠키 어려운 내일의 불안을 안고 오늘을 살아간다. 곧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이라고 희망하던 그들의 난민사는 반세기를 훌쩍 넘고 있다.
‘달라이라마의 귀환(Dalai lama Return Back to TIBET) ’을 부르짖은 120명에 달하는 티베트인들의 분신 그리고 가난한 망명정부의 메아리 없는 호소. 비폭력 지향 정책으로 중국정부를 향해 큰 소리도 치지 못하고 있는 망명정부는 제 3국의 도움과 관심이 절실할 뿐이다. 그리고 지난 4월 13일 미국 정부를 대표해 존 케리(John kerry) 국무부 장관이 중국을 방문했다. 존 케리 장관은 이미 망명정부 총리 롭상상게(Lobsang Sangay, 45) 와 티베트 현안에 관해 미국서 작년 7월에 회동한 바 있다. 더불어 이번 중국 방문을 앞두고 롭상상게의 서신이 전달되기도 했다. 때문에 이번 방문에 망명정부가 거는 기대는 적지 않다. 망명정부는 단절된 양국의 특사 회담을 재개하고 분신 사태에 대해 티베트 진상 조사단을 파견할 것을 꾸준히 요구해 왔다.
13일 중국 방문에 앞서 12일 한국 외교부와 장관 회담을 치룬 존 케리 장관은 한반도 평화와 비핵화의 방향을 논의 했다. 같은 날 중국에서는 공산당 중앙위원회 정치국 상무의원이자 중국 인민정치협상회의 전국 위원회 주석인 유정성이 인민대회당 티베트청에서 중국정부가임명한 11대 빤첸라마(Qoigyi jabu, 23)와 사전 만남을 가진 것에 주목할 만하다.
유 주석은 12일자 인민일보를 통해, ‘사회가 안정될 때 건강한 종교로 발전된다. 종교의 흥성과 쇠락이 한 국가의 운명과 밀접함을 알아 사회주의 국가의 기대에 부흥할 것을 당부’한 것으로 전했다. 한국과 북한 그리고 티베트 3국이 복잡다단하게 중국에 얽혀 있다. 그리고 미국은 한반도의 평화를 돌본다는 명목 하에 이들의 행보를 주도하기를 희망하는 형국이다. 이러한 연기의 인과들은 과연 어떠한 미래로 전개될까.
한 때 달라이라마는 청중에게 느닷없이 물었다.
“당신은 인류가 균형을 이루었다고 봅니까. 아니면 불균형하다고 보는 입장입니까.”
민주화 바람을 타고 일부 사회주의 국가의 독재가 종식되었다고 하더라도 내부의 다수는 여전히 열등하다. 비단 개인뿐만이 아니라 국가와 국가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다. ‘나’라고 하는 한 인간을 두고 보더라도 하루를 얼마나 균형 있게 평상심으로 보내고 있는가를 반조해 보면 의식주 전반뿐만 아니라 대인관계의 대부분이 불균형함을 인정할 수 있다.
과연 우리는 불균형한 그 자체로 균형을 이룬 것일까. 그렇지 않다면 일체는 불균형하며 그 안에서 균형을 지향하는 것일까. 누구에 의해 무엇을 위한 완전함을 추구하는가에 따라 다시 누군가는 불완전할 수밖에 없는 현재를 살아가고 있지는 않은가.
결국 달라이라마(뗀진갸초, 78)가 화났다. 달라이라마의 중도정책이 실패했다는 여론이 국회 청문회에서 불거진 직후다. 신임 총리는 아직 젊었고 노장의 달라이라마는 강경했다.
“사랑하는 나의 동포 여러분. 티베트가 위태로운 현재를 보내고 있습니다. 우리가 티베트의 독립을 열망하기 이전에 우리가 처한 현재의 직면한 문제들을 해결해야만 합니다. 저는 12살의 어린 나이에 티베트의 법왕이 되어 달라이라마의 직위에서 60년 이상을 머무는 동안 단 한 순간도 나의 조국 티베트를 잊은 적이 없습니다.”
일부에서는 역대 13대 달라이라마(Tubten Gyatso) 의 보수 정책을 향수하기도 했다. 민주주의를 지향하는 망명정부 신임 총리 체재 1년이 흐른 지금, 일부에서는 젊은 지도자를 모함하는 여론이 조장되기도 했다.
“과거에 안주하려 하지 마십시오.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격동의 시기는 공포를 동반합니다. 지금이야 말로 우리 서로가 결속할 때입니다. 우리는 과거의 낡은 관습을 버리고 변화해야 합니다. 달라이라마는 더 이상 명령권자의 위치가 아닙니다. 티베트 본토는 과거의 달라이라마를 향수하며 시대의 변화에 유연하지 못한 대처로 상황을 암울하게 이끌어 가고 있습니다. 중국의 압박에 대한 저항의 수단으로 분신을 선택한 것은 참으로 비통하기 그지없습니다.”
1974년 중국과의 특사회담 당시 티베트와 중국은 승자와 패자를 양분하지 않는 모두가 승자가 되는 방안을 토의하고자 했으나 결론을 도출하지 못했다. 이후 1979년 덩샤오핑과 직접 대면하는 노력을 기울이기도 했던 달라이라마. 그러나 중국 역시 변화의 시기를 겪었고 따라서 티베트는 더욱 강력한 내부 규제 하에 처하게 되었다. 1980년대 후요방 집권 당시 티베트는 잠시 희망을 품기도 했으나 직접적인 성과를 이루지 못했다. 그리고 천안문사태가 일어났다.
“이렇게 30년이 더 흘렀습니다. 이제는 중국의 더 많은 지식인들이 달라이라마가 지향하는 ‘나라고 하는 상을 녹일 때에만 통섭할 수 있다’고 말하는 달라이라마. 티베트 법왕의 자리에서 종교인의 본분으로 돌아와 ‘나는 단지 달라이라마라는 이름을 지닌 승려일 뿐’이라고 자신을 내려놓는다. 그 자리에서 우리는 달라이라마와 눈을 맞추고 진정한 무상과 만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