맑고 밝은 마음으로 부처님오신날

원각사지 파고다공원에 있는 만해 스님의 비문碑文에 시詩가 있습니다.
만해卍海 스님은 양산 통도사 안양암에서 3년 정도 사셨다고 합니다.
『화엄경』을 가르치던 그 시절에 쓰신 시詩가 아닐까 싶습니다.


봄날이 고요키로 향을 피고 앉았더니
삽살개 꿈을 꾸고 거미는 줄을 친다
어디서 꾹꾸기 소리 산을 넘어 오더라.
따쓴 볕 등에 지고 유마경 읽노라니
가벼웁게 나는 꽃이 글자를 가리운다
구태여 꽃 밑 글자 읽어 무삼 하리요.
대실로 비단 짜고 솔잎으로 바늘 삼아
만고청수 수를 놓아 옷을 지어 두었다가
어즈버 해가 차거든 우리 님께 드리리라.


이런 시심詩心을 가지면 다투거나 더럽혀지거나 오염되는 일은 없지 않을까 싶습니다. 부처님께서 보살菩薩이 구족具足해야 할 열 가지 가르침으로, 신심信心, 계율戒律, 선지식善知識, 내관사유內觀思惟, 정진精進, 바른 생각(正念), 바른 말(正語), 바른 법(正法), 바른 행동(正行), 애민섭수哀愍攝受로 살아가면, 세상과 더불어 다투지 않고 더렵혀지지도 않는 삶을 살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만해 스님의 이 시詩에도 보살이 구족해야 할 가르침이 그대로 녹아있습니다. 출가한 지 50년이 지났습니다. 구룡사에서 33년입니다. 지난날들과 함께해온 구룡사의 삶을 되돌아보면, 참 행복한 날들이었습니다.


조정래 작가의 『황홀한 글 감옥』에 이런 대목이 나옵니다.


“행복이 무엇이냐는 질문을 가끔 받습니다.
불행을 느끼지 않을 때가 바로 행복한 때라고 대답합니다.
그러고 보면 인생은 불행할 때보다
행복할 때가 훨씬 더 많습니다.
그러나 우리 인간의 탐욕은 늘 저 먼 데를 보고 있어서
바로 눈앞에 있는 행복을 못 보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인생은 불행한 시간보다 행복한 시간들이 훨씬 더 많았습니다.
흔히 네 잎 클로버를 행운이라 하고, 세 잎 클로버는 행복이라고 합니다.
그런 네 잎 클로버는 잘 없습니다. 대부분이 세 잎 클로버입니다.
사람들은 세 잎 클로버는 관심이 없고 네 잎 클로버만을 찾고 있습니다.
행복은 방치해두고 행운만을 찾고 있는 것처럼, 네 잎 클로버만 찾고 있습니다. 인간의 탐욕貪慾은 늘 저 먼데를 바라보고 있어서 바로 내 앞에 있는 행복을 알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나에게도 먹지 않는 음식이 있습니다. 쑥떡과 미역국입니다. 쑥떡과 비슷한 모양의 보리겨 개떡(보리방아 찐 찌꺼기로 만든), 어머니가 한 끼니를 위해서 만들어 놓은 보리개떡을, 식탐 많던 어린 아이는 대소쿠리 채 갖다놓고 먹다가 얹혀, 심하게 고생한 기억이 아직도 남아 있습니다. 69년도 통도사 보광전 선방과 지금의 주지실을 지을 때 미역처럼 생긴 우뭇가사리를 원통 방 가마솥에 한 달 이상 매일 끓이며 맡았던 그 냄새, 횟가루에 반죽해서 벽면을 칠하기 위한 일이었지만 생김새는 미역처럼 생겼으나 그 냄새는 50년이 되어도 미역국에 우뭇가사리 끓일 때 맡았던 그 냄새가 아직도 남아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깨달은 게 있습니다. 음식도 심하게 겪으면 몸에서 평생 거부하는 일이 생기는데, 가슴에 못 박는 일을 하게 되면 얼마나 큰 아픔과 고통과 괴로움을 겪게 되는가를 살피는 마음이 들게 됩니다.


요즘 4차 산업혁명의 콘텐츠에 대해서 수많은 사람들이 염려하고 걱정을 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다가올 세상에는 돈이 없어지고 평생직장도 없어진다고 합니다. 인간이 기계문명의 부품화로 전락해버리고, 이성理性이 사라지고 일종의 기계화 되어간다는 걱정과 기계에 접목된 인간지능에 지배당하는 상상입니다.
4차 산업혁명으로 진행되고 있는 현상을 살펴보면 화엄세계華嚴世界입니다.
프랑스 솔로몬 대학의 프랑시아 슈너 교수는 2년 전, 한국에 와서 말하기를 ‘21세기에 과학과 융합할 수 있는 대안은 불교밖에 없다’고 했습니다.
달라이라마도 방송을 통해서 끊임없이 과학자들과 토론하고 있습니다. 종교적인 분들의 대다수는 주관적인 철학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철학적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다 철학적인 요소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인간은 필요한 모든 것을 갖추고 있으면서도 늘 건강하게 살 수 있는 존재라는 사실을 가슴 속에 담아두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불행한 일이 아닌가 싶습니다. 천년만년 살 것처럼 오늘 하루도 살고 있습니다만 그래도 중요한 것은 우리 모두는 우리 몫의 객관적인 과학의 접근법이 있어야 합니다.


요즘 매일 한 시간이상 두 시간 정도씩 걷고 있습니다. 10분에 1천보 정도를 걸으니까 대략 1만2천보 걷습니다.
그간 무릎관절이 안 좋아서 절하는데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젊은 시절에 절을 너무 많이 해서 무릎관절이 안 좋아져 그런 줄 알았습니다. 그때가 좋았습니다. 1080배 3000배 할 때, 매일 108배 세 번씩 할 때, 어떤 불자들은 그때를 떠올리면 짠하다고 합니다. 그랬는데 요즘 불과 두 달 정도 걸었는데, 걸으면서 느끼는 것은 오르막길과 내리막길에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계단 오르고 내리는데 괜찮습니다. 절하는데 훨씬 좋아졌습니다. 마지막으로 구룡사에서 백일기도 한 번 하고 갈까를 생각하기도 합니다. 옛날처럼 생각하기도 합니다. 만나면 헤어져야 합니다. 헤어진다는 것은 이제 통도사로 가겠다는 뜻입니다.


나는 통도사를 한 번도 떠나 본 일이 없습니다. 구룡사에서 30년 넘게 살았지만 통도사를 떠나서 구룡사에 와 있은 적은 없습니다. 또 통도사에 가서 주지 소임 본다고, 통도사에 내려가 있었지만, 구룡사를 떠나서 통도사에 있은 적도 없습니다. 우리는 살면서 많은 사람을 만나서 인연을 맺습니다.
참 많은 분들과 인연을 맺었습니다. 구룡사에서 맺은 인연도 아마 십만 세대의 불자 가족은 넘을 것입니다.
어떤 인연을 만나서 어떤 꽃으로 피어나느냐에 따라, 인생은 결정되어집니다. 성공하는 사람들의 대다수가 그런 인연 속에서 자신의 향기로움을 드러낼 줄 아는 사람이 삶의 현장에서 행복한 사람이 아닐까 싶습니다.
우리는 각자 열심히 살고 있고, 조화롭기 위해서 애쓰고 있는데, 국민과 나라를 걱정한다는 이들이 텔레비전에 비치는 걸 보면 걱정이 되기도 합니다.


일본에서 발표한 장수長壽하는 사람의 직업별 순서를 보니까 종교인, 경제인, 정치인, 연예인 순으로 오래 산다고 합니다. 단명短命하는 사람들은 시인, 소설가, 예술가, 체육인 순이라 하였습니다. 일본의 모리교수는 ‘자유분방한 예술가 타입은 빨리 죽고 뱃심 두둑한 정치인 타입은 오래 살더라’ 하였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도 역시나 종교인, 정치인, 연예인, 교수, 고급 공무원이 오래 산다고 합니다. 일본은 경제인이 오래 살고 있는데 우리나라는 기업인, 법조인, 예술인, 체육인, 문학인, 언론인이 단명합니다. 왜 우리나라는 경제인들이 세상을 빨리 떠날까요. 애간장이 녹아서 그렇습니다. 주면 줬다고 잡아가고 안주면 안줬다고 어찌하는, 저승사자들이 있습니다. 우리나라도 경제인들이 가까운 일본처럼 오래 살 수 있는 나라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최인호 작가는 이렇게 글을 썼습니다.


“사람의 얼굴은 유전적으로 타고나기도 하지만 살아가는 도중에 자신의 성격대로 자신의 이미지대로 변해 가는 것을 내 얼굴의 변천사를 봐도 잘 알 수 있다. 마치 매일 가는 산도 봄, 여름, 가을, 겨울이면 그 풍경이 바뀌듯 얼굴도 나이에 따라서 그 풍경이 바뀌고 있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얼굴은 그 사람의 역사이며 살아가는 현장이며 그 사람의 풍경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