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의 성품 ‘무자성’

‘스스로부터도 아니고 다른 것으로부터도 아니며
그 둘로부터도 아니고 원인이 없는 것으로부터도 아니다.
어떠한 사물이건 생겨남은 결코 존재하지 않는다.’
- 『중론』의 주석 「붓다빨리따」의 서론 중에서 -


일 년만의 같은 날이다. 8월 29~9월 1일 총 4일간 열린 아시아불자를 위한 달라이라마의 법회가 인도 다람살라 겔룩빠 산하 남걀사원에서 열렸다. 총 1,500명에 달하는 아시아불자가 이번 법회에 동참했으며 8개국의 언어로 전 세계에 생중계 및 동시통역이 되었다. 지난해부터 통합된 아시아불자 법회는 싱가포르가 주도를 하고 한국이 이에 편승되어 올해로 합동법회 2회 차를 맞았다. 이렇게 아시아불자의 합동 법회가 된 것은 무엇보다 달라이라마의 건강상 이유를 가장 큰 원인으로 꼽았다. 반면 대만 법회는 10월 초 단독으로 다람살라에서 열린다.
최근 달라이라마(티베트의 정신적 지도자, 82)의 아프리카 보츠와나 방문이 급작스레 취소되고 캐나다 토론토 법회마저 연이어 취소됐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보츠와나 국왕은 내년에 달라이라마를 자국에 다시 초대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다. 매년 여름이면 라다크에서 한 달 가량의 개인 수행 일정을 보내온 달라이라마 역시 체력이 예전과 같지 않음을 비췄다.
지난 8월 31일, 법회에 앞서 달라이라마와 한국법회 관련인의 단독 친견이 있었다. 아침 7시 30분이 되자 달라이라마는 특유의 환한 미소와 함께 접견실에 모습을 드러냈다. 비서진에 의해 15분으로 잡힌 친견시간이었지만 그 두 배인 30분 동안 진행되었다. 한국 달라이라마방한추진회와 티베트대장경역경원에 관한 대화가 주로 오갔고 일본 동대사에 모셔진 8세기 무렵 태장계만다라와 금강계만다라 복원작에 가피를 받았다. 달라이라마는 지난 미국 방문 당시 무릎 관절을 시술 받은 이후 복용중인 약의 부작용으로 몸에서 열과 땀이 자주 난다며 대화 중 시원한 물수건을 찾기도 했다.
달라이라마방한추진회는 한국의 현 정세에서 달라이라마의 한국 방문 추진의 고충을 털어 놓았다. 달라이라마는 충분히 이해를 한다고 답하면서 한국의 불자들이 귀한 시간을 내어 인도 다람살라까지 법문을 청하고 또한 방문한 것에 깊은 감사를 표했다. 달라이라마의 한국 방문에 대한 명분에 관한 대안이 대화로 오가기도 했다. 역대 노벨평화상 수상자들의 만남을 한국에서 추진하는 방식이 거론되기도 했다. 한국은 고 김대중 대통령이 노벨평화상 수상자이면서 최근 문재인 대통령이 노벨평화상 수상자로 거론이 되기도 해 종교를 넘는 이상의 가치 실현을 위한 보다 큰 목적으로 달라이라마의 한국 방문 기대를 점치기도 했다.


「붓다빨리따」는 『중론』의 첫 주석서입니다. 티베트의 불교는 붓다의 중간법륜은 반야십만송 이만오천송 팔만천송 팔천송 반야만송 반야섭송의 총 여섯의 불모경과 논서의 구전 법맥을 내림에 붓다의 법을 논사의 논거에 의지하여 스승으로부터 제자에게 직접 전수되는 방식을 따라왔습니다. 오늘 우리는 이 자리에서 중관의 논을 달라이라마로부터 구전을 받았다 생각하고 꾸준한 수행의 지침으로 삼아주시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21세기를 맞아 대화와 공존의 시대를 지향함에도 불구하고 여전한 갈등과 충돌의 시대에서 혼돈하고 있습니다. 인간의 본성이 선함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우리의 일상 경험에서조차도 자주 화를 내는 이를 보면 그 주변이 매우 위축된 분위기임을 느낍니다. 반면 항시 맑고 선한 이를 만나면 주변이 평안하고 여유롭습니다. 오늘날 지구 인류의 70억은 단 한 명의 예외가 없이 어머니의 젖을 먹고 성장하였습니다. 때문에 어머니의 사랑에 근거한 배려와 자비야말로 인간의 본성입니다.
일상에서 부정적인 것 옳지 못한 것을 마음에서 멀리할 수 있도록 스스로 점검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불교도는 업을 믿고 이에 근거하는 삶을 살아갑니다. 선한 일을 한 이는 그에 준한 좋은 결과로 돌려받으며 악한 일을 저지른 이 역시 그 대가를 치른다는 의미입니다. 마찬가지로 법을 알고 나를 둘러싼 벗을 위하는 마음을 일으킨다면 오직 나만을 위하는 것에 대한 문제를 자각하고 타인을 위하는 덕의 가치를 인정할 것입니다. 모두가 동등한 인류의 한 사람으로서 상식이 통하고 인정되는 세상의 가치가 실현되도록 스스로 앞장설 수 있어야 합니다.
붓다빨리따는 티베트의 캄 지방의 저명한 한 학승에 의해 스승이 제자의 근기를 살펴 일러주는 금강승의 바라밀 법으로 전승되어 왔습니다. 금강승에서 정혈맥 수행을 할 때에 정의 다스림과 혈과 맥의 열림의 근기에 따라 수행의 단계가 세분화 됩니다. 이에 관한 법은 석가모니 붓다의 근본설인 사성제를 뼈대로 합니다.
티베트의 11세기경 티송데첸 법왕의 법력으로 인도 나란다 승원의 선지식을 모셨습니다. 중관과 유식의 사상을 근간으로 인명과 논리의 체계를 갖추게 된 시기입니다. 샨트락시타께서 티베트에 오신 이후에 티베트의 교학 체계는 굳건하게 되었습니다. 티베트가 인도에 망명한 이후 지난 반세기가 넘는 시기 동안 출가 수행자에게 항상 강조해 온 바는 현교의 가르침에 항상 충실하라는 것입니다.
준비되지 않은 제자가 금강승 수행을 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당부합니다. 총체적인 붓다의 법을 이해하고 붓다께서 누누이 강조하셨던 공사상의 지혜를 올곧게 이해하고 비로소 보리심을 일으켰을 때 금강승 수행에 입문하기를 권합니다. 샨티데바의 <입보리행론>을 보면 항시 보리심을 강조하는 것이 아닌 이타심을 일으켰을 때의 장점을 먼저 일깨워 점차적으로 보리심을 일으킬 수 있도록 권하고 있습니다. 공성이란 일체 법의 실상을 아는 지혜입니다. 법을 아는 이치는 지혜의 깊이와 비례합니다.
석가모니 붓다께서 보드가야에서 깨달음을 얻은 이후 잠시 홀로 은둔을 하셨습니다. 당시 인도의 철학가 사이에는 자아의 사상이 강하게 근저 하였습니다. 당시 가전연을 비롯한 5대 비구에게 첫 설법을 하셨습니다. 붓다는 설하는 동안 법을 주입하기보다 그들이 스스로 법을 청하고 깨우칠 수 있도록 하는 방식을 취하였습니다. 처음 사성제를 통해 해탈의 유무를 가르쳤으며 무아의 지혜의 사실 여부를 논하였습니다. 이러한 논리 체제가 삼전법륜에 해당하는 반야부의 중관 사상에서 궁극적으로 세분화 되면서 그 꽃을 피웠습니다.
우리는 항시 중립적인 시점으로 현상을 분석할 수 있는 자량을 키워야 합니다. 자신의 연구 분야에 집착하여 성과를 내는 현대 과학의 분야 역시 어떠한 편견이 없이 현상에 접근을 해야 합니다. 불교는 인과를 가장 보편적 사상의 논리로 삼습니다. 생하여 머물러 사라짐에 대하여 유식은 순간순간 생함이 멸함의 한 시점이라고 논하였습니다. 때문에 찰라 생멸하는 것이 업과 번뇌를 자극하는 원인이 된다고 하였습니다.
원인이란 결과를 발생시킴과 동시에 원인이란 또 다른 원인에 기인한 것이기에 생멸의 두 본질을 동시에 가지고 있습니다. 인간의 의식이야 말로 찰나의 생멸을 끊임없이 반복합니다. 의식이 생멸하는 본성은 하나의 상속을 이루어 갑니다. 그러한 상속에서 고집해 온 바가 하나 있으니 그것이 바로 ‘나’입니다. 유식에서는 의식으로부터 분리된 경계를 인정하지 않습니다. 오로지 마음의 반연이라고 하였습니다. 오온과 분리된 독립된 자아는 있지 않습니다. 나라고 하는 생각의 실체를 분석한 것에 대해 최종 중관학에 와서는 심식의 찰나 성질이 무자성한 연기의 상속일 뿐이라고 하였습니다.
실제 함이란 무엇일까요. 내가 그와 같이 보고 있기에 그 대상이 실제 하는 것일까요. 나라고 하는 대상이 머무는 곳은 어디 일까요. 오로지 이름뿐입니다. 사유에 있어 양변에 빠지지 않기란 쉽지가 않습니다. 저는 지난 60년 동안 무자성의 공을 꾸준히 고찰해 왔습니다. 역대 스승께서 일깨워 주신 공성의 가르침이야 말로 제 인생의 유일한 화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