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정, 믿음의 서약

그 얼마나 다행인가
가만의 큰 배 사람의 몸을 얻었으니
자신과 더불어 타인을 윤회의 고해에서 건지기 위함이라
밤낮으로 항시 게으름 없이 듣고 사유해야하니
비로소 실천할 때 보살의 수행이라네
- 보살의 37 수행법 가운데 -


석가모니 붓다가 6년간의 고행을 접고 궁극의 깨달음을 성취할 수 있었던 계기는 수자타의 유미죽 공양에서 비롯되었다. 우리는 그 공양을 타락죽이라는 또 다른 이름으로 부른다. 티베트의 정신적 지도자이자 전 세계 인류의 바른 조언자로 대표되는 달라이라마(뗀진갸초, 82). 티베트에서는 그를 관세음보살의 화현으로 여긴다면 오늘의 불교도는 21세기 붓다의 화현에 비유한다.
달라이라마는 올해 첫 날에 맞춰 비하르주 보드가야에 도착했다. 가장 먼저 마하보디사원을 참배하고 4일부터 인도불자를 위한 법문을 시작해 25일까지 한 달여간 법회를 열었다. 중간의 뿌네 일정을 소화 후 14일부터 다시 시작된 3일간의 법회는 용수보살의 보리심석과 웅울추 톡메상뽀의 보살의 37 수행법을 주제로 하였다.
이번 법회에는 전 세계 70개국에서 3천 300여 명의 외국인을 포함, 1만 명의 티베트 승려와 함께 총 3만 명이 찾았으며, 법회 주관은 몽골 불자의 권청으로 성사되었다. 달라이라마는 법문의 동기를 밝히며 법을 설하는 법사의 자세에 대해 언급했다.
몽골의 큰 스승으로 꼽히는 쭐로뚤꾸 린포체는 항시 법을 설하는 이와 법을 구하는 제자 간의 청정성을 강조했음을 그 예로 들었다. ‘법사는 부와 명성에 대한 그 어떤 기대를 하지 않으며 법을 사업화 하지 않는다. 법에 들어선 수행자는 채식 이외의 육식을 삼가도록 한다.’는 것이 그러하다.


법이란 무엇일까요. 또한 금강승 수행의 관정이란 무엇일까요. 수천 년간 인간의 역사에서 사유되고 철학되어온 법에 대해서는 그 무엇도 숨길 것이 없습니다. 우리가 이번 법회에서 매일 아침 독송하는 반야심경의 경우에는 말미에 다음과 같은 서원을 합니다. ‘근본 번뇌를 일으키는 탐내고 성내며 어리석음에 대한 독을 정화시켜 지혜의 광명을 밝혀 대승 보살도에 들어서도록 하겠습니다.’
3대 달라이라마 소남갸쵸를 위시하여 티베트와 몽골의 불교는 형제와 다름이 없습니다. 제가 처음으로 몽골을 방문했을 때가 1979년입니다. 간덴 딱첼링 사원에서 노스님과 대화를 나누던 때가 무척 인상 깊습니다. 당시의 저는 영어 구사에 무척 서툴렀고 몽골불자 분들과 순조로운 대화를 나누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다행스럽게도 과거 몽골에 티베트 불교가 전래되었기 때문에 모든 경과 논서는 티베트 문자로 기록이 되어 있었습니다. 그 의미는 제가 하고 싶은 말을 티베트어로 종이 위에 쓰면 사원에서 수학하는 스님들은 모두 해석할 수 있었습니다. 비로소 우리는 대화의 그 어떤 문제도 겪을 일이 없게 되었습니다. 오늘날 상당수의 몽골 학승이 남인도에 재건된 티베트사원에서 세기를 넘는 법 인연을 이어가는 것을 보면서 티베트와 몽골불교의 부흥을 기대해 봅니다.
우리는 삼귀의를 통해 연기법을 설하신 분, 일체 중생을 위해 대자비를 내신 설법자 가운데 태양이신 석가모니 붓다와 중관 논증의 초석을 잡은 용수보살을 비롯한 역대 열일곱 분의 논사 선지식께 예경을 올립니다. 더불어 궁극의 마음의 분별을 끊을 수 있는 공성의 지혜가 서린 단검으로 논리의 명제를 여실히 세우도록 수행자 스스로의 심지를 굳히고자 합니다.
금강승에서는 법 스승과 법 제자 간의 인연이 세세생생 이어진다고 믿어 의심하지 않습니다. 법에 귀의한 제자는 스승에게 귀의하며 붓다의 경지를 이룰 때까지 변함이 없는 신심을 내어야 합니다. 이 자리에 참석하신 분들 가운데 아직 달라이라마의 법력을 확실히 믿지 못하겠다는 의심이 든다면 관정을 받지 않음이 정당합니다. 관정을 받을 준비가 되었다면 자량도에 들어선 단계로써의 보리심을 필요로 한다는 것을 명심하십시오. 관정이 스승으로부터 제자에 전해지면 비로소 믿음의 서약이 성립됩니다.
금강승에서는 일체 중생을 구제하기 위한 대승의 목적으로 관정을 받습니다. 스승으로부터 금강승 수행의 허가를 받음으로써 수행의 날개를 달게 됩니다. 때문에 법제자는 스승에 대한 강한 신심을 내는 것이 가장 중요한 근기입니다. 혹여 스승을 비난하거나 힐난이 있다면 관정의 법회장에 앉아 있더라도 관정이 성립되지 못합니다.
쫑카빠 대사는 삼종요도에서 관정의 성립을 거론하였습니다. 출리심과 무아의 지혜 그리고 보리심이 그것입니다. 중생을 향한 연민이 있다면 공성의 지혜를 충족해야 합니다. 보리심을 완벽히 일으킨 보살이 중생을 위해 보다 신속히 깨달음을 이루기 위한 목적으로 수행하는 길이 바로 금강승입니다. 지금이야말로 보리심이란 무엇인가를 보다 깊이 사유하는 시간을 가져야할 때입니다. 이어서 금강승은 다섯 가지 욕망을 수행으로 승화시키는 근기에 준하여 크게 네 가지로 구분되는 소작 행 요가 무상요가로 수행에 돌입하게 됩니다.
용수보살의 보리심석은 무아와 보리심을 중점적으로 논의하고 있습니다. 입보리행론에서 논하는 자타상호 교환법의 근저가 되는 것이 바로 보리심석입니다. 저 역시 쿠눌라마 린포체로부터 보리심석에 대한 법의 구전을 받았습니다. 
신심을 일으킴의 대상이란 무엇인가. 바로 석가모니 붓다의 법입니다. 보다 값진 법이 되기 위해서는 법의 동기를 바로 세워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법의 공덕입니다. 혹여 불법의 허물을 찾고자 하는 이가 있다면 지난 2천 6백년의 시간을 거슬러 역대 논사와 먼저 대론을 벌여야 할 것입니다. 법을 사유함에 기준을 삼되 무아의 진여를 앎이 참된 지혜입니다. 더불어 보살의 행을 올곧게 실천하겠다는 서원이 평상심이 되어야 합니다.
사상과 철학에 근거하여 붓다의 법을 해석할 수 있어야 합니다. 비로소 이해가 되었을 때 굳건한 신심을 일으켜야 합니다. 단순히 말로써만 반복하면 아무런 성과가 없습니다. 가장 먼저 석가모니 붓다가 인간적인 측면에서 누구였는가를 살피는 것으로 시작하십시오. 후대에 외도사상과 학파의 분열로 인해 제자들의 논법이 어떻게 변화 되었는가 살피는 것도 흥미로울 것입니다. 그로 말미암아 궁극의 지향점이라고 할 수 있는 대승의 이타사상으로 승화시킬 수 있어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