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을 담는 그릇, 근기

모든 현현하는 것은 나의 마음이 드러난 것
마음 그 자체는 본래 희론을 여의었으니
이를 바르게 알고 행해야 하리
구체와 객체의 분별을 마음에 드리우지 않아야 하리
이것이 바로 보살의 수행이라네.
-보살의 37 수행법 가운데-


“저는 건강합니다.”
인도 보드가야 신년법회 25일간의 일정을 소화하고 다람살라에 도착한 달라이라마(뗀진갸초, 82). 공항에서 불쑥 마이크를 내민 인도 기자의 질문에 달라이라마는 본인의 건강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답하며 특유의 웃음을 보였다. 3월 2일 티베트력 새해 보름기도에 맞춰 석가모니 붓다의 전생 교훈을 담은 본생담 법회가 달라이라마의 관저가 자리한 남걀사원 쭉라탕 광장에서 열린다는 소식과 함께 다람살라는 인도 전역의 불자들로 북적이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지난해에는 달라이라마의 건강상 이유로 매년 열리던 본생담 법회가 열리지 않은 이유다. 한 번이라도 더 가까이서 달라이라마를 친견하고자 하는 불자들의 발길은 티베트 본토는 물론 중국에서도 이어지고 있다.
달라이라마의 정치적 지도자 은퇴와 함께 티베트망명정부 총리에서 재임 후 대통령으로 직위 명을 공식 교체한 롭상상게(49) 박사는 정치 외교 활동에 보다 진취적으로 임하고 있다. 올해를 기점으로 미국 티베트 대사가 교체되면서 미국의 티베트 난민 정책을 재정비하는 것은 물론 남아프리카 노벨평화상 수상자 회담 당시 달라이라마 비자승인 거부 문제로 가시화 되었던 것을 롭상상게 박사가 대신 방문하는 등 과거 달라이라마가 행해오던 해외 순방과 난민정책 외교의 선봉에 서고 있다.
티베트력 새해인 지난 16일 저녁 6시 30분 경,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1300년의 역사를 가진 티베트 조캉사원에 방화로 추정되는 화재가 나면서 다람살라를 비롯한 전 세계 티베트 난민 사회는 충격에 휩싸이기도 했다. 위쳇과 같은 개인 SNS를 통해 티베트 본토에서 직접 촬영된 영상이 다람살라에 전해지면서 해외 언론도 연이어 보도에 나섰지만 정작 중국은 언론 통제를 통해 사건 피해 여부를 밝히지 않았다. 결국 사건 발생 후 4일 후에야 사원에 피해가 없고 인명피해가 없었다는 식의 단순 보도에 그쳤다. 조캉사원에는 7세기 중국 당나라 문성공주가 티베트의 법왕 송첸캄뽀와 국혼을 하는 답례로 가져온 12살의 싯타르타 석가모니 붓다상이 모셔져 있다.


붓다의 법어가 기록된 경전을 수학함에 있어 완벽히 이해하는 경지가 있을까요? 수행자는 기본적으로 내가 따르는 학파와 외도의 차이를 살피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일방적으로 “나의 스승이 이와 같이 말씀을 하셨다.”라거나 어느 논사가 “그와 같이 말씀하셨다.”라는 일방적 근거가 아닌 나 스스로가 논리적으로 밝혀낸 주체적이고 자각된 주장이 서야합니다. 인간의 역사에서 인류의 존재 여부에 대한 의문을 들기 시작한 이래 상일 주제하는 ‘나’라고 하는 인간의 근본 명제는 수많은 가설로 논의되어 왔습니다. 종교적 사상의 관점에 있어서는 창조주를 인정 하는가 인정하지 않는가로 구분이 되며, 불교에서는 창조주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견해입니다.
저는 바른 인성의 확립을 항시 강조합니다. 때문에 기본 학제 교육의 영역에서 현세적 윤리와 내면의 성장을 돕는 교육을 제언합니다. 청년들에게는 미래가 그대들의 어깨와 두 손에 달려 있음을 조언합니다. 학교 내부의 문제는 필연코 가족과 연관되어 있으며 머지않아 사회에서 공공의 문제로 드러나게 되어 있습니다. 오늘의 학교를 두고 교육의 위기라 일컫고 언제부턴가 대안 학교에 주목하게 된 것 역시 단순한 학업 성취의 문제를 넘어 인류와 윤리의 가치의 부재가 지닌 심각성을 대변한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무엇보다 우리는 자신의 마음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이기심의 한계를 넘어서야 합니다. 우리는 나 자신과 타인의 사이에 장벽이 없음을 깨달아야 합니다. 자타상호를 교환하는 밥식을 통해 사랑과 자비의 이타심을 키워야 합니다. 이는 내면의 변화에 보다 초점을 맞추고 공동의 관심을 위해 실천되어야 합니다. 때문에 인성을 확립시키는 학교 교육이 중요한 것입니다.
인간에게 뇌가 있다는 것은 단순한 사고 처리를 위한 기능을 초월합니다. 과거를 생각하고 그를 바탕으로 배워서 미래를 계획할 수 있는 능력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또한 다양한 각도에서 상황을 파악하고 그것이 파생시키는 불행과 고통의 결과를 예견할 수 있습니다. 그를 통해 궁극적으로 우리가 간절히 원하는 행복을 실현하는 것, 이것의 바탕이 바로 우리 인간의 두뇌입니다. 석가모니 붓다께서 자등명하고 법등명하라 말씀하신 바의 취지가 여기에 있습니다.
티베트불교에서 유가행 중관학파의 초석을 닦은 분이 바로 샨트락시타입니다. 이를 바탕으로 인명의 논리학이 설해졌습니다. 티베트의 불법이 생하는 발화점이 되신 분입니다. 샨트락시타께서 논하신 현과 밀의의 법을 따라 삼예사원에서 역경원과 율원 그리고 선원의 토대를 잡았습니다. 당시에는 오로지 삼매만으로 깨달음을 얻고자 하는 수행 추세였습니다. 그때 당시에 보다 세밀한 고찰에 준하여 중관수습차제론의 상 중 하가 논집되면서 티베트불교는 인명학의 부흥기를 맞습니다. 더불어 일체유부의 사상이 십만부의 율전을 저본으로 하여 티베트에 전해지면서 율의 계보를 이어갑니다.
붓다의 설법은 크게 속제와 진제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윤회의 주체 보특가라와 세상 창조의 원질은 진제라는 사유가 통용되던 시대에 석가모니 붓다는 보다 면밀히 분석하여 논리로써 고찰하였습니다. 바른 불자라면 불법의 뼈대가 되는 진속의 이제 그리고 사성제의 이치를 깨달아 바른 신심을 일으켜야 합니다. 현과 밀의 깊은 내용을 깨닫고 불법을 실천하여 중생을 위해 공헌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우리는 오늘 성스러운 보드가야에서 만났습니다. 과거 우리의 뛰어난 스승께서 남겨주신 가르침이 유적으로 남아있는 곳입니다. 오늘날 현대인의 높은 지식은 시공간을 뛰어 넘습니다. 불법을 수학하는 것은 단순히 가피를 받는 것에만 그치지 않습니다. 우리가 삶을 영위하는 지금 이곳의 복잡다단한 현실에서 반드시 분석 하고 논리로써 사고해야 합니다. 이는 오직 중립적인 지성의 힘을 성장시키는 것으로만 가능합니다. 나의 법기 즉 근기는 어느 만큼의 자량을 지니고 있을까. 또 얼마나 나의 근기를 성장시킬 수 있을까. 자신 스스로가 성장에 대한 확신을 얻고 성취해 갈 때 느끼는 심식의 평안, 우리는 이를 일컬어 ‘행복’이라고 부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