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엄경에 석가 여래 부처님의 전생 이야기가 나옵니다. 호명 보살이 도솔천 내원궁에서 발원하기를,

"내가 중생을 이끌어 완성시키지 아니하면 누가 이끌어 완성시킬 것인가? 내가 중생을 조복하지 아니하면 누가 조복할 것인가? 내가 중생을 교화하지 아니하면 누가 교화할 것인가?

내가 중생을 깨닫게 하지 아니하면 누가 깨달음을 얻게 할 것인가? 내가 중생을 청정히 아니하면 누가 청정히 할 것인가?

이는 내 의무요, 내가 응당 해야 할 일이다. 나는 자기에게 귀의하고 남에게 귀의하지 아니하여 스스로 귀의하고 스스로 존중할 것이다. 그러므로 부처님은 내 존경의 대상이 아니다. 왜 그런가 하면 내가 부처님(깨달음)과 떨어져 있지 아니하고 부처님이 나와 떨어져 있지 않기 때문이다." ≪화엄경≫

머리에서 나온 것은 머리로, 가슴에서 나온 것은 가슴으로 전해진다 하였던가요? 언제부터인가 도심 포교당에서는 부처님 오신날만 봉축하는 것이 아니라 성도재일이나 출가일, 그리고 열반일까지 봉축하며 발심정진으로 기도하고 사경하며 108참회도 하고 있습니다.

언제나처럼 많은 불자들이 동참하였으며 백고좌하는 마음으로 집전하며 참회기도를 봉행하였습니다. 너무나 좋아하는 불자들의 모습이 천진 보살들이었습니다.

오늘은 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신 지 2,544년이 되는 날입니다. 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신 날을 우리는 봉축하였습니다. 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시고자 하실 때 얼마나 많은 제자들이 슬퍼하였는지를 살펴봅니다. ≪열반경≫에 보면 제자들이 "세존이시여! 어찌하여 저희들을 버리시고 열반에 들려 하시나이까?" 하니,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너희들은 내가 떠남을 보고 조금도 슬퍼하는 마음을 내지 말라. 육신의 죽음만을 보고 열반을 죽음으로 알지 말라. 육신은 인연을 쫓아 나타나는 그림자와 같은 것, 인연을 따라서 또한 없어지는 것이니라. 그러나 여래(如來)는 육신이 아니며, 깨달음의 진리 그 자체인 것이다.

육신은 이제 비록 없어지더라도 법신(法身)은 항상 진리와 더불어 영원하리라. 모든 것은 무상하나니 게으르지 말고 부지런히 정진하여라."

세속에서도 전해오는 말이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 하였습니다. 가죽을 남기든 이름을 남기든, 남기는 것이 중요한 것만은 아닐 것입니다. 어쩌면 여기에 간절한 말을 토마스 캠벨은 이렇게 서술하였습니다. "뒤에 남겨진 사람의 가슴 속에 살아 있다면 그것은 결코 죽은 것이 아니다." 그렇습니다. 요즘 생각이 그렇습니다. 참다운 사람은 진실로부터 시작된다 하였습니다. 참다운 사람은 어떤 모습일까요?

"모르는 일이거든 모른다 말을 하고, 아는 일 물어오면 솔직히 말을 하여 이간질하지 말고 의로움 잊지 마세. 시비를 가리는 건 중생의 나쁜 습성일세."

이제 우리 모두 인연 있는 이들에게 회향해야 합니다. 우리는 어느 날부터인가 너무 많은 것을 잊어버리고 삽니다. 마치 아침햇살에 어젯밤 어두움을 잊어버리듯, 잊어버리고 살고 있습니다.

달마가 소림굴에서 9년 동안 면벽한 것이 혜가만을 기다린 것은 아닐 것입니다. 어두운 그림자 속에 묻힌 지도 일 년이 지나가고 있습니다. 출가자의 생활이라는 것이 보여 주기 위한 삶이 되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그래서 사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달라질 것은 없었습니다. 그저 주어진 자리에서 열심히 내가 좋아 살아갈 뿐입니다. 더도 덜도 아닌 나답게 살아가며 생각하여 봅니다. 그리고 돌아갈 날 그리워합니다.

종단적으로나 개인적으로나 솔직한 표현을 빌리면 미운정 고운정 흠뻑 들었던 스님들이 몇 분 있습니다. 그 중에는 이미 세상을 떠나신 스님도 계시지만 우리와 함께 어려움을 겪었던 스님도 있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종단일에 머무는 스님 역시 있습니다. 이름이야 다 거명할 수 없겠지만 한생각 되돌리면 이렇게도 허허로운 것을…

며칠 전 정휴 스님의 ≪적멸의 즐거움≫을 보았습니다. '나는 이때 마음 속에 있는 집착과 욕망을 버리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죽음을 미리 준비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사실 죽음을 준비하는 일은 자성(自性)을 자각하는 일이 선행되어야 하고 진여(眞如)의 실상을 깨달았을 때 내 자신의 본래 모습으로 돌아갈 수 있다. 죽음을 생각하고부터 절 입구에 있는 부도(浮屠) 곁에서 오랫동안 앉아 있다가 오는 시간이 많아졌고 모든 일이 부질없어 보였다. 그리고 밤이면 혼이 내 몸 속을 빠져나갔다가 되돌아오는 것을 여러 번 체험할 수 있었다.' - 중략 -

선배 스님의 글에서, 그것도 책머리 말에서 빌려온 이유는 이 글을 보고 있자니 오대산의 호랑이 도명 스님이 더욱 보고 싶어지기 때문이었습니다.

"죽는 것은 근원으로 돌아가는 일이요 자기귀환이니, 다만 자성을 깨달을 때 나고 죽음에서 벗어날 수 있고 열반은 생멸이 없는 법신을 탄생시킬 수 있다." - 적멸의 즐거움 中-

인연이 있어서 만났던 우리들입니다. 믿음을 얻고나서 마음이 퇴전치 아니하여 어지러워지지 않고 깨어지지 않고 집착하지 않고 근본을 항상 지녀서 성인을 따른다면 이 사람은 여래(부처님)의 집에서 살게 된다 하신 참이치가 있음입니다.

세상과 더불어 다투지 아니하며, 세상 법에 더럽혀지지 아니해야 합니다.

보이기 위한 불사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어려운 시기에 3년의 불사 끝에 마무리되어 가는 여래사는 이 시대의 불자들과 함께 힘과 용기와 지혜의 삶으로 어울림을 하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