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허망하지 않으면 곧 보살이다. 몸은 비록 복(福)없이 말세에 태어났어도 이 마음 고요하여 허망됨이 없으면 삼세(三世)의 모든 부처님이 말씀하시기를, 하고 있는 그대로가 보살이라 이름하셨네.』

십여년 전 종단으로부터 "일산 신도시에 종교용지가 있는데 한번 가 보지 않겠느냐?"는 제안을 받고 스스럼없이 다녀왔습니다. 그때는 도시 계획이 한창 진행되고 있는 때라 길이 만들어지고 있었고, 도시가 형성된 것은 아니었지만 정발산(頂鉢山)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주변에 사찰이나 포교당이 없는 것도, 신도시가 주거 공간으로 이루어진다는 것도, 누군가 꼭 해야 할 불사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토지개발공사에 일년 동안 종교용지 토지대금을 적립하였습니다. 그리고 몇 년이 몇 달처럼 잊어버린 듯 흘러갔고 일산 신도시는 아파트 단지로, 빌라 단지로, 개인 주택지로 자리가 잡혀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신도시에 십여군데 포교당과 유치원을 건영으로부터 분양받아 분양금을 갚아가는 것만으로도 너무도 큰 힘이 들었습니다. 다만 구룡사에서 각 포교당과 함께 분양금을 먼저 갚아나가다 보면 어느 날인가 공동체로서 일산 포교당을 함께 짓게 되겠지 하는 마음도 있었습니다만 시간은 자꾸 흘러갔고 토지개발공사에서는 절을 짓지 않으면 다시 환수하여 다른 종교단체에 줄 수도 있다는 공문을 보내왔습니다.

처음 구룡사 불사를 시작할 때는 천막 법당에서 시작된 불사였지만 통도사의 그늘과 배경이 든든하여 큰 어려움 없이 불사를 회향할 수 있었습니다.

이번 불사도 구룡사의 불자들과 일산 신도시에 살고 있을 불자들을 기다리며 여래사 건물을 짓기 시작한 지 3년 반, 통도사 포교당으로써 정발산 자락에 건평 3천여평으로 지상 5층에 지하 3층의 도심 포교당의 위용을 드러냈습니다.

그리고 벌써 여래사와 인연 맺은 불자의 세대수가 삼천 세대가 넘는 포교당이 되었습니다. 그것도 여기저기에서 모인 불자들이 아니라 신도시답게 고양시의 덕양구와 일산지역 불자들의 공동체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장엄합니다. 이 불사에 동참한 불자들의 신심(信心)에 찬사를 보냅니다.

건축비 불사금을 90% 이상 공사대금으로 지불하였으니 불가사의한 불보살님의 가피력과 위신력입니다. 그러면서도 세속적으로 회자(膾炙)되고 있는 큰 시주자는 한 명도 없었으니, 이 또한 여래사의 자랑이며 나아가 만불전에 원불을 동참한 원력의 힘이 얼마나 큰 것이었는가를 확인하게 하였습니다.

며칠 전 여래사 본존불 점안법회가 있었습니다. 평소 가까이 지내던 스님들조차 음력 초하루라 참석하기 힘든 날이었습니다. 또, 초하룻날을 점안법회 날짜로 잡았다고 꾸지람 어린 말씀도 들었습니다.

그러나 그렇습니다. 낙성식이나 불사 회향법회가 아닌 개원법회의 일환으로 본존불 점안법회를 하는데, 사찰마다 초하루 법회날은 불자들이 제일 많이 참석하는 날이기 때문에 택한 날이었습니다. 기왕이면 불자들이 제일 많이 부처님을 뵈러 절에 오는 날 점안식을 하고, 오후에는 그동안 여래사 불사에 동참한 구룡사 불자들과 여래사 불자들, 이 신도시 일산지역의 주민들과 여래사에서 불교와 예술의 만남으로 문화행사를 하였던 것입니다. 조용하면서도 편안한 법회를 봉행하고 싶었습니다.

천막 법당에서 시작된 구룡사 만불전 불사도 큰 어려움 없이 회향하였는데, 구룡사 불자들의 신심과 원력의 힘으로 시작했던 여래사 만불전 불사를 어찌 힘들다고 생각하였겠습니까?

그리고 그렇게 큰 불사라고는 한번도 생각해 본 일이 없었습니다. 이 시대에 누군가 해야 할 일이었고 그런 불사를 할 수 있었다는 사실 하나만 해도 얼마나 복된 선택입니까?

점안식을 봉행하던 날, 정발산 자락은 인산인해(人山人海)였습니다. 그날 동참한 모든 사부대중들은 다 놀라워하였습니다.

일본 정행사에서 오신 스님들과 불자 80여명도 찬탄과 법열의 눈시울을 적셨습니다.

그날 참석한 대중과 불사에 동참한 불자들에게 이 영광과 기쁨을 돌려드리는 일은 아마 부처님 가르침대로 사는 길일 것입니다.

이번 불사의 시주금도 돈입니다. 그러나 그 돈 자체가 돈의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돈의 가치는 무엇을 할 수 있었느냐에 큰 뜻이 있다는 것을 알게 하였습니다. 생각해 보니 마음이 번거로우면 세상이 다 번거롭고, 마음이 편안하고 깨끗하면 세상 또한 깨끗해진다는 것을 다시 한번 확인하게 되었습니다.

4년 전, 오래된 차를 바꾸지 못하고 자동차 없이 몇 달을 지내고 있을 때 老스님이신[月下 大宗師] 통도사 방장 스님께서 타시던 차를 주고자 하실 때 속으로야 얼마나 기뻤겠습니까. 그러나 차마 가져올 용기를 내지 못하고 망설이고 있자니 노스님께서 경남차 번호판까지 그대로 달고 "누가 묻거든 통도사에서 올려보낸 차라고 하라."는 말씀까지 해 주셨던 그 차를 타고 3년 반 동안 양재동과 일산을 10만 km 이상 다녔습니다. 지구 한바퀴가 4만 km라 하니 두 바퀴 반을 돌아온 셈입니다. 그러면서도 아직 한번도 여래사 주지실에서 밤을 보낸 적이 없는 것은 아마 구룡사 불자들의 고마움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였다는 마음이 듭니다.

이번 불사의 동참 대중들이 어렵고 힘든 시기에 여래사를 이룩할 수 있었던 것은 부처님 제자임을 기뻐하는 모습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지나온 시간을 뒤돌아보면 다른 사람들에게 베풀던 때가 인생에서 가장 값진 삶이었다는 것을 알게 하였습니다. 그래서 더욱 이 시대에 감사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오직 한 가지, 게으르지 않은 불자의 신심(信心)과 원력(願力)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