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0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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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담사 무금선원

"안되면 혀 깨문다"는 각오로 정진
무문관과 기본선원 신구 조화 이루는 선원

유철주
조계종 총무원 주임



이미 한겨울인 백담사 백담계곡 물빛이 찬란하다. 입구 용대리에서 백담사행 전용버스를 타고 굽이굽이 휘어진 계곡을 따라가는 도중에 나타나는 작은 연못(潭)이 많아서 백담(百潭)이라고 했던가? 그 옛날부터 목마름에 지친 스님과 많은 순례객들에게 백담계곡은 숨을 돌릴 수 있는 작은 휴식처가 됐을 것이다.
자연이 만들어 낸 그림을 보며 달리다 보니 어느새 백담사다. 대통령을 지낸 사람이 사실상 ‘유배’된 곳으로 더 유명한 사찰이지만, 주지 삼조스님을 비롯한 대중들의 원력으로 수행(선원)과 포교(템플스테이) 중심 사찰로 거듭나고 있는 곳이 또 백담사이기도 하다.
백담사 무금선원(無今禪院)은 1971년 당시 종정이던 고암스님이 신흥사에 선원건립의 원을 세워 이 뜻이 전법제자인 성준스님에 이어졌고, 다시 신흥사 회주 오현스님이 원력을 이어 받아 1998년 문을 열었다. 오현스님은 또 이듬해 백담사가 속한 교구본사인 신흥사에도 향성선원을 복원, 개원했다.
무금선원은 무문관과 기본선원으로 이루어져 있다. 기본선원은 강원과 함께 조계종의 기본교육기관으로서 행자교육을 마친 출가자들이 본격적인 수행에 들어가기 전 선(禪)의 요체를 배우는 곳이다. 백담사에 기본선원이 들어선 것은 지난 2002년.
이번 동안거에도 40여명의 학인스님들이 기본선원에 방부를 들였다. 선감스님 등 학인스님들을 지도하는 스님까지 하면 여느 선원보다 많은 숫자다.
예비스님이긴 하지만 기본선원 학인스님들의 안거 공부는 정식 선원과 다르지 않다. 습의, 강의, 청규, 선종사 등에 대한 기본 교육은 물론 큰스님 법문 청취, 금강경 독송, 108대참회 등과 하루 7~8시간의 참선도 계속된다. 또한 성도재일(음력 12월 8일)을 앞두고서는 음력 12월 1일부터 7박 8일간 기본선원 모든 대중이 잠을 자지 않고 수행하는 ‘용맹정진’도 진행한다. 용맹정진 때에는 세끼 공양 3시간과 밤 12시부터 죽이나 미음을 먹는 간식시간 30분을 제외하고는 올곧이 21시간 30분 동안 초인적으로 수행한다. 또 해제를 하더라도 산철결제에 들어가 교선사스님들에게 <서장>이나 <선경어> 등을 교재로 특강을 듣기도 한다.
무금선원 선감 성허스님은 “학인스님들도 자신의 수행을 위해 목숨을 내놓고, 혀를 깨무는 심정으로 정진한다”고 전했다. 심상치 않은 기운이 느껴진다.
무문관(無門關)은 백담사에서 150여m 떨어져 있다. 문을 닫고 오로지 자신과의 싸움을 위해서만 하루 24시간을 보내는 곳이다. 매일 오전 11시 하루에 한번 공양이 들어올 뿐이다. 이번 안거에는 11명의 스님들이 무문관에 들어간다. 선원장 신룡스님도 반결제(음력 11월 30일)까지 무문관에 들어간 후 기본선원 대중들의 용맹정진에 동참한다.
무금선원의 뜻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신룡스님은 “<금강경>에 ‘과거심불가득 현재심불가득 미래심불가득(過去心不可得 現在心不可得 未來心不可得)’ 구절이 나옵니다. 과거, 현재, 미래의 마음도 얻은바 없다고 합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라고 되묻는다. 갑작스런 질문이 당황스럽지만 과거, 현재, 미래도 없는 공간에서 오직 자성(自性)을 보는 시간밖에 없다는 말씀으로 들렸다.
신룡스님은 “무문관은 90일 동안 문을 잠그고 수행한다. 책이나 신문을 보는 것도 없이 오직 깨달음과 진정한 자유를 위해, 본래 주인을 찾기 위해 정진 일변도로 사는 곳이다”며 “조계종 초대 종정을 지낸 효봉스님도 금강산 법기암에서 출가하신 이후 1년 반의 무문관 수행을 통해 깨달음을 얻었다. 그렇게 현대 조계종이 시작되었고, 오늘에 이르고 있다”고 설명한다.
무문관 수행은 모든 것을 혼자서 해결해야 하기 때문에 고충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몸 관리를 잘못하면 소화기 계통 기관에 문제가 생길수도 있고 입방 초기에는 햇빛을 못 봐서 고생하기도 한다. 또 상기병이나 외로움과도 싸워 극복해야 한다.
이번에 무문관에 들어가는 납자(衲子)는 법랍 30년 이상의 구참스님들과 20여년 이상 선방만 다닌 스님들로 구성됐다.
구참스님들은 무문관 입방 이유와 일반 선원과의 차이를 설명하며 각오를 다졌다.
주로 포교와 행정 일선에 있었던 한 스님은 “여러 선배스님들을 모시고 대분심(大憤心)을 내보려 무문관에 들어왔다”며 “훌륭한 선지식 선배스님들과 함께 한 철을 지낼 수 있다는 것을 감사하게 생각한다”고 말한다.
무문관에 오랫동안 있었던 다른 스님은 “하안거 때는 덥지 않아 잘 지냈다. 교도소 독방 같은 좁은 공간에 갇혀 있으니 스스로 달라지더라. 자기 성찰의 깊이를 더 느낄 수 있다”며 “굳은 각오 아니면 힘들다. 하안거 한번으로는 아쉬운 것이 있어 한철 더 살려한다”고 말했다.
무문관에 처음 입방한다는 한 스님은 “무문관 수행의 필요성은 크게 느끼지 않았다”면서도 “봉암사에서 산철결제 마치고 인연 따라 여기에 왔다. 초심(初心)이 이어지다보니 이 길을 가고 있을 뿐”이라며 담담해했다.
또 다른 한 스님은 “무문관 수행은 세 번째다. 일반 선원은 여러 대중이 함께 산다. 그래서 공동생활을 위해 쓰는 시간도 많다. 그러나 여기서는 불필요한 낭비와 시비를 줄일 수 있다. 24시간을 온전히 주인공으로 살 수 있다. 처음 들어가면 폐쇄공포증, 환청, 정신분열이 올 수도 있다. 스스로 규칙적인 생활을 하지 않으면 몸과 마음이 망가진다”고 밝혔다. 스님은 “한 철을 잘 살면 내 안에서 매화가 피어나는 느낌을 받는다. 자존심이라는 것을 성취감으로 발전시키면 내면의 세계를 볼 수 있는 계기가 된다”고 말했다.
무문관에 입방한 스님들의 얘기가 끝나자 신룡스님이 최근 활발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초기불교와 관련해 한마디 하겠다며 말을 이어받는다. 스님은 “다른 수행법과 비교해 볼 때, 간화선이 무조건 우월하다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조계종의 정체성은 조사선과 간화선 전통이다. 초기불교와 함께 가야 하지만, 서로 비난하고 비판하는 것은 옳지 않다. 다양성 속에서 ‘조계종의 특별성’은 지켜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백담사 주지 삼조스님은 “안거가 끝날 때마다 무문관 문을 열어드리는데, 지금까지 제가 본 스님들은 하나 같이 얼굴도 좋았고, 편안해 보였다”며 “고행이지만, 무문관에 입방하는 스님들 모두 힘든 싸움을 이겨내시는 것 같아 너무 고마웠다”고 한다. 삼조스님은 또 “무문관의 선배스님들과 기본선원의 학인스님들이 함께 모여 정진하며 조화를 이루는 이상적인 곳이 무금선원”이라며 “무금선원이 한국불교의 간화선 전통을 이으며 발전할 수 있도록 외호하겠다”고 다짐한다.
인터뷰를 마치고 나오니 방부를 들인 구참스님들이 무문관 건물을 손보고 있다. 눈바람을 막기 위해서다. 가섭존자의 ‘두타행’과 비교될 정도의 고행이라고 알려진 무문관을 체험한 스님들은 하나같이 “부처님 당시처럼 수행하기는 어렵지만 스스로를 비울 수 있는 계기가 된다”고 입을 모은다.
선원에서 쉽게 발걸음을 돌리지 못하는 사이 어느새 해는 떨어지기 시작했다. 멀리 보이는 대청봉은 이미 눈으로 하얗다. 한겨울 한파도 물리치고 모든 번뇌를 떨쳐버릴 듯한 스님들의 치열한 정진은 시간조차 멈춰버린 이곳, 무금선원에서 시작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