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준
고전연구실 뿌리와 꽃 원장
淸風徐來 水波不興
청풍서래 수파불흥
맑은 바람은 서서히 불어오고 물결의 파도는 일지를 않았네.
당송팔대가唐宋八大家의 한 사람이면서 불교에도 조예가 깊었던 송宋나라 동파거사蘇東居士 소동파蘇東坡의 「전적벽부前赤壁賦」에 나오는 구절이다. 「전적벽부」는 문학성이 뛰어나서 흔히들 천고의 명문장이라고 부른다.
중국中國 항주杭州에 있는 적벽강에서 보름에서 하루 지난 음력 7월 16일에 뱃놀이를 실컷 하고 쓴 글인데 그 문학적인 묘사가 뛰어난 것은 물론이지만 사실은 동파거사가 자신이 수행을 통해서 터득한 경지를 설파해놓은 글이다.
임술년壬戌年 가을 7월 기망(旣望 : 16일)에 소동파는 나그네들과 함께 배를 띄우고 적벽 아래에서 노닌다. 바로 그 때 배 위에서 맑은 바람을 맞이하면서 ‘맑은 바람은 서서히 불어오고 물결의 파도는 일지를 않았다’고 표현한 것이다.
이 글은 전체를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누어 설명할 수 있다. 전반부의 내용은 앞에서 잠깐 소개한 것처럼 동파거사와 나그네들이 적벽강에 배를 띄우고 뱃놀이를 시작하는 부분이다. 중생들의 희로애락喜怒哀樂이 뒤섞여 춤을 추는 생사고해生死苦海를 적벽강으로 표현하고 있다. 그 생사고해의 적벽강에 맑은 바람이 불어와 아직은 물결이 일지 않고 있는 풍경이다.
중반부에서는 퉁소를 부는 한 나그네가 등장한다. 소동파가 항주에 귀양와 있는 심정을 구성지게 노래하자 나그네가 퉁소를 불어 화답을 한다. 그런데 그 퉁소 소리가 어찌나 구슬픈지 마치 원망하는 듯, 사모하는 듯, 흐느끼는 듯, 애달픈 심사를 하소연하는 듯하여 실낱처럼 끊어지지를 않는다. 동파거사가 깜짝 놀라 무엇 때문에 퉁소가락이 그리도 애간장을 녹이도록 슬픈 것이냐고 묻는다.
이 나그네는 제행무상諸行無常의 대변자이다. 나그네는 우리네 인생의 덧없음을 저 역사적인 인물인 조조曹操를 끌어들여 강변한다. 조조가 삼국지三國志라는 무대의 전면에 의기양양하게 등장하는 대목을 말하고는 곧바로 적벽대전에서 대패를 당하여
겨가는 모습을 설명한다. 형주荊州를 격파하고 오吳나라 강릉江陵 땅으로 쳐내려올 때는 전함이 천리에 이어졌고 전함에 세워 놓은 깃발이 하늘을 뒤덮을 정도였다.
술을 걸러서 강가에 다다라 들이마시고 창을 꼬나들고 말을 달리다가 풍경 좋은 곳에 멈춰서 즉흥시를 뽑아낼 때에는 조조가 진실로 한 세대의 영웅이었지만, 지금 어디에 있느냐.
저 역사적인 영웅의 영욕 모두가 다 흘러가버리고 없는 이 적벽강에서 우리는 땔나무나 하고 낚시질이나 하면서 조그만 조각배를 타고 술이나 홀짝거리고 있으니 우리네 신세는 참으로 보잘 것 없는 것 아니더냐.
寄蜉蝣於天地 渺滄海之一粟
기부유어천지 묘창해지일속
하루살이가 천지 사이에 임시로 몸을 맡기고 있는 꼴이고 우리 존재감의 아득함은 창해의 한 톨 좁쌀에 불과하다.
우리네 인생이 잠깐인 것이 슬프고 장강이 무궁무진 흘러가는 것이 못내 부러워서 슬픈 가락을 가을바람에 의탁해보았노라고 나그네는 처연하게 말을 마친다. 당시 적벽강가에 실버들이 있었다면 아마도 더 어울렸을 것이다.
롤러코스터를 타는 것처럼 오르락내리락하는 것이 우리들 대부분의 인생이다. 초지일관 잘나가는 인생도 없지 않지만, 조금만 속내를 들여다볼라치면 내면의 롤러코스터는 엄연히 춤을 추고 있다. 적벽강의 나그네는 시공에 관계없이 그저 덧없이 흘러가는 우리네 인생의 덧없음을, 제행무상의 곡조를 한 자락 그럴싸하게 뽑아낸 것이다.
「전적벽부」의 문장 구성으로 보면 나그네와 동파거사가 서로 대화를 주고받는 것으로 묘사되어 있지만, 필자의 눈에는 동파거사가 사실은 혼자서 짜고 치는 고스톱을 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 글은 필시 소동파의 자문자답自問自答이다.
逝者如斯 而未嘗往也
서자여사 이미상왕야
盈虛者如彼 而卒莫消長也
영허자여피 이졸막소장야
강물이 흘러가는 것이 이와 같지만, 일찍이 흘러간 적이 없으며 달이 차고 비는 것이 저와 같지만 끝내 작아지거나 커지는 것이 아니다.
나그네의 말을 조용히 듣고 난 동파거사가 이제 나그네에게 이제 물과 달을 이야기한다. 지구에서 보면 달이 초승달에서 반달이 되고 반달이 보름달이 되고 보름달이 다시 반달이 되고 그 반달이 그믐달로 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달 자체로 본다면 초승달이 되는 일도 없고 그믐달이 되는 일도 없고 커지거나 작아지거나 하는 일이 사실은 없다. 달이 우리 지구인들을 어리석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필자는 적벽부를 감상할 때마다 생각하게 된다.
동파는 말을 이어나간다. 변해버린다는 제행무상의 관점에서 보면 천지도 한 찰나에 사라져버리는 것이지만, 불변의 이치인 진여眞如의 관점에서 보면 천지만물과 우리가 모두 무궁무진한 존재이다. 그렇다면 무엇을 부러워할 필요가 있겠는가. 게다가 소소한 물건들은 다 주인이 있어서 우리가 마음대로 손에 쥘 수 없지만, 이 강 위로 불어오는 맑은 바람과 저 산 사이에 떠있는 밝은 달은 귀로 들으면 바람소리가 되고 눈으로 만나면 달빛이 된다. 이것은 무진장한 보배창고이다.
맞는 말이다. 한강 고수부지에서 한강 바람 쐬는데 5분에 얼마 하고 받는 사람 없다. 혹시 김선달이라면 또 모를 일이기도 하다. 하지만 달을 10분 쳐다보는데 얼마이고 햇볕 한 시간 쬐는데 얼마이고 도봉산 꼭대기에서 세 시간 숨 쉬는데 얼마이고 한다면 참으로 팍팍한 삶이 될 것이다. 소동파가 살았던 시대나 지금이나 앞으로도 그러하겠지만 달구경 요금을 낼 일은 없을 것이다. 만약 그런 요금제도가 있었다면 이태백李太白은 달에게 얼마의 저작권료를 물어야 할 것인가.
이 무궁무진한 보배창고 이야기를 듣고 나그네는 법열法悅의 미소를 머금는다. 그리고는 잔을 씻어 다시 권커니 자커니 술을 따른다. 잔 안 씻어도 무슨 균이 묻어 있거나 할 리는 없는데 무엇 때문에 이 대목에서 나그네와 동파는 잔을 씻었을까. 조금 전까지만 해도 덧없는 인생의 우울 증세에 걸려있던 나그네가 동파거사의 청량법문淸凉法問을 듣고는 우울증이 싸악 나아버렸기 때문이다. 아마도 나그네는 아까 마시던 술잔에 묻어 있는 우울세균을 씻어내느라 잔을 씻었을 것이다. 그리고는 온갖 안주가 다 떨어지고 술잔과 안주 담을 접시가 뒤흐트러질 때까지 참이슬도 마시고 새벽이슬도 마신다. 이제 나그네와 소동파 일행에게는 너와 나의 구분이 사라져버린다.
차이는 있지만 차별은 없어진 것이다.
相與枕籍乎舟中
상여침자호주중
不知東方之旣白
부지동반지기백
그리고는 뱃속에서 서로를 베개 삼아 드러누워서 동쪽이 이미 환하게 밝아진 것도 알지를 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