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애 경
조계종 포교사단 서울남부총괄팀장

깨달음을 이루신 후 8년. 부처님께서는 그해 안거를 숭수마라기리(sumsumaragiri) 근처의 베사깔라 동산에서 보내셨습니다.
왓지연맹의 일원인 박기족의 수도였던 숭수마라기리는 당시 왐사에게 정복된 상태였으며 보디왕자는 궁전 꼬까나다 낙성식에 부처님을 초청한 인연으로 부처님께 귀의하고 삼보를 받드는 우바새가 되었습니다.
부처님이 베사깔라 숲에서 지내시던 어느 날 걸식하러 성안으로 들어섰을 때 다정히 손을 잡고 걸어오던 칠순의 노부부가 부처님을 보고 소리쳤습니다.
“아들아!”
그들의 두 눈에는 눈물이 고여 있었습니다. 두 팔을 벌리고 달려드는 노부부를 곁의 비구들이 막아서자 부처님께서 조용히 말리셨습니다.
“방해하지 말라.”
다가선 그들은 앞뒤로 껴안고 얼굴을 부비며 반가워하였습니다.
“아들아, 집으로 가자. 여러분도 같이 갑시다. 오늘 식사는 저희 집에서 하세요.”
부처님의 발우를 빼앗아 든 노인이 앞장서 집으로 안내하여 공양을 대접했습니다. 그리고 공양하는 동안 갖가지 음식을 집어 그릇에 놓아주고 발아래 엎드려 울기도 하였습니다. 노부부는 부처님께서 공양을 드시는 동안 곁을 떠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부처님이 음식을 드시고 발우를 거두시자 말하였습니다.
“결혼을 하고 아들을 하나 얻었지. 날다람쥐처럼 재빠르고 영리하라며 나꿀라라고 이름을 지었는데 어찌나 닮았는지 나는 그대가 나꿀라인줄 알았어.”
“아드님은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
“결혼해서 멀리 가 살고 있지. 딸자식들도 마찬가지고 무슨 일인지 몇 해가 지났는데도 통 소식들이 없구먼.”
거칠고 주름진 피부에 휑한 눈동자가 그들의 외로움을 말해주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부처님은 노부부를 위해 차근차근 법을 설하셨습니다.
그러자 노인은 부처님의 발을 쓰다듬으며 청하였습니다.
“우린 그대가 꼭 우리 아들 같구먼. 그대를 아들이라 불러도 되겠는가?”
부처님은 웃음을 보이며 노인의 손을 잡고 허락하셨습니다.
“지금 어디에 머무는가? 이 도시 가까이에 머물면 날마다 우리 집으로 와서 공양하게.”
부처님은 정중히 거절하시고 노인의 집을 나서셨습니다. 이에 성을 나설 무렵 아난다가 여쭈었습니다.
“세존이시여, 노부부가 부처님을 보자마자 아들이라 부른 것은 무슨 인연입니까?”
“아난다야, 저 부부는 과거 오백 생 동안 나의 부모님이었단다.”
그날 이후 그들은 노인들에게는 결코 가깝지 않은 길을 걸어 날마다 베사깔라숲을 찾았으며 달콤한 과일이라도 생기는 날이면 들고 오는 일도 빠뜨리지 않았고 공작새보다 조심스러운 걸음으로 다가와 앉는 자리와 경행하는 오솔길을 청소하고 마실 물이 없으면 항아리에 물을 길어다 놓았으며 또 풀이 우거지면 호미와 괭이로 깨끗이 뽑는 등 일을 하였습니다.
때를 가리지 않는 방문에도 숲 속에 자리한 비구들은 누구하나 불평하지 않았으며 도리어 서쪽으로 해가 기울 때면 자비로운 늙은 부부의 방문을 은근히 기다리곤 하였습니다.
어느 날 아내의 손을 꼭 잡은 노인이 부처님께 말하였습니다.
“부처님, 저희 두 사람은 젊은 나이에 결혼해 근 육십 년을 함께 살았으며 그날부터 이때까지 서로를 속인 적이 한 번도 없으며 서로의 뜻에 어긋나는 일이면 몸은 고사하고 마음으로도 짓지 않았습니다. 이제 남은 소원이라면 죽는 날까지 늘 함께하는 거랍니다. 아니 다음 생에도 언제나 함께하는 게 소원이랍니다. 부처님.”
이에 부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아내와 남편 두 사람이 한평생 웃으며 함께 가고 다음 생에도 언제나 손을 잡고 함께 가기를 원하신다면 두 분이 같은 믿음을 가지셔야 합니다. 훌륭한 덕목들을 같이 지키고 훌륭한 이들에게 같이 보시하고 지혜 역시 같아지도록 함께 노력해야 하며 그렇게 하신다면 소원이 이루어질 것입니다.”
그런데 그 후로 부처님과 숲속 비구들을 친아들처럼 여기며 자비심을 아끼지 않았던 부부가 며칠째 모습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휘청거리는 몸을 지팡이에 의지하고 노부부가 다시 숲을 찾았습니다. 그러나 노인의 몸은 부쩍 쇠약해져 있었습니다. 그리고 부처님께 말했습니다.
“부처님을 뵙고 싶고 스님들을 모시고 싶지만 늙고 병들어 기력이 없군요. 이젠 하루하루가 다르며 자리에 눕게 되는군요. 마음은 그렇지 않은데 어디 한군데 아프지 않은 곳이 없군요.”
이에 부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이 몸은 끊임없이 병들고 있습니다. 스치기만 해도 깨어지는 새알의 껍질처럼 우리 몸을 보호하고 있는 살결은 얇고 연약합니다. 이런 몸을 가지고 ‘나는 건강하다, 나는 튼튼하다, 나는 병이 없다’고 말하는 이가 있다면 그는 그 순간이 지난 다음 언젠가는 ‘내가 제 정신이 아니었군’ 하고 후회할 날이 올 것입니다.”
노인이 다시 여쭈었습니다.
“이렇게 아프고 서글프고 두려워질 땐 어떻게 수행해야 합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늘 이렇게 생각하십시오. ‘몸이란 무너지고 아프기 마련이다. 몸은 아프지만 나의 마음만은 아프지 말자.’”
부처님의 말씀을 들은 노인의 얼굴에 이내 환한 미소가 피어났습니다. 그렇게 부처님 앞에서 물러난 노인은 숲을 나오다 사리뿟따를 만났습니다. 그런데 사리뿟따가 노인에게 말을 걸었습니다.
“얼굴이 보름달처럼 빛나고 깨끗하시군요. 좋은 가르침을 들으신 겁니까?”
이에 노인이 대답했습니다.
“부처님이 제 아들인데 무슨 법인들 듣지 못하겠습니까?”
노인은 부처님에게 들은 법문을 사리뿟따에게 말해주었습니다. 그러자 늘어진 그의 주름이 웃음으로 퍼졌습니다. 이에 사리뿟다 역시 기뻐하며 덧붙여 물었습니다.
“그럼 몸과 마음이 둘 다 아픈 것과 몸은 아프지만 마음은 아프지 않은 것의 차이도 물으셨습니까?”
“아 차, 그걸 여쭈지 못했네요. 그건 사리뿟따께서 말씀해 주십시오.”
“예 그러겠습니다. 지혜가 밝지 못한 사람들은 오온이 뭉쳐진 이 몸을 ‘나’라고 생각하거나 ‘나의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생각하기 때문에 이 몸을 집착하고 붙들려고 애씁니다. 집착하고 붙들기 때문에 이 몸이 변하고 무너지고 파괴되면 통곡하고 탄식합니다. 차가운 슬픔과 뜨거운 번민에 괴로워합니다. 이것이 몸과 마음이 둘 다 아픈 모습입니다. 그러나 부처님의 가르침에 따라 밝은 지혜를 갖춘 제자들은 오온이 뭉쳐진 이 몸을 ‘나’라고 생각하거나 ‘나의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렇게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이 몸에 집착하지 않고 붙들려고 애쓰지도 않으며 이렇게 집착하고 붙들지 않기 때문에 이 몸이 변하고 무너지고 파괴되어도 통곡하거나 탄식하지 않습니다. 차가운 슬픔과 뜨거운 번민으로 괴로워할 필요는 없습니다. 이것이 몸은 아프지만 마음은 아프지 않은 모습입니다.”
노인이 합장하고 사리뿟따의 발에 머리를 조아리고 말했습니다.
“오 사리뿟따, 당신은 참 지혜롭군요.”
우기가 끝나고 부처님께서 숭수마라기리를 떠나 여러 곳을 유행하신 뒤 다시 사왓티로 가셨을 때 노인이 돌아가셨다는 연락이 왔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장례식에 직접 참석하시어 모인 사람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의 목숨은 짧아 백 년도 살지 못합니다. 아무리 오래 산다 해도 결국 늙고 죽음을 피할 수 없습니다. 사람들은 ‘내 것’이라 여겨 슬퍼하지만 참으로 ‘내 것’이란 영원한 것이 아닙니다. 그런 것은 존재하지 않는 것임을 알고 소유하는 삶에 머물지 마십시오. 사람들은 ‘이것이 내 것이다’라고 생각하지만 죽음으로 그것을 잃게 됩니다. 현명한 나의 벗들이여, 이와 같이 알고 ‘내 것’이라는 것에 현혹되지 말아야 합니다. 꿈에서 만난 사람을 잠에서 깨어난 사람이 다시 볼 수 없듯, 사랑하는 사람이 죽어 세상을 떠나면 다시는 그를 볼 수가 없습니다. 살아서 이름을 부르던 그 사람은 눈으로 보기도 하고 귀로 듣기도 했지만 그들이 죽으면 이름만 불려질 뿐입니다. ‘내 것’에 탐욕을 부리면 걱정과 슬픔과 인색함을 버리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안온을 보는 성자는 소유를 버리고 유행하는 것입니다. 모든 탐욕을 떠나 자기를 내세우지 않고 홀로 명상하며 유행하는 것이 수행자에게 어울리는 삶입니다. 성스러운 삶을 사는 사람은 어디에도 머무르지 않고 결코 사랑하거나 미워하지 않습니다. 물이 연잎을 더럽히지 못하듯 슬픔도 인색함도 그런 사람은 더럽히지 못합니다. 연잎에 물방울이 묻지 않듯 연잎이 물방울에 더럽혀지지 않습니다. 보이는 것과 들리는 것과 생각한 것으로부터 청정한 사람은 그것에 매몰되지 않으며 다른 것에 의해 청정해지기를 원하지도 않습니다. 탐착하지 않고 따라서 탐착을 떠나려 하지도 않습니다.”
훗날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나의 재가 제자 가운데 나를 보자마자 귀의한 사람은 나꿀라의 아버지와 어머니였다.”
옴 아비라 훔 캄 사바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