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0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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텃밭농부의 겨울나기

 



정성운
텃밭농부


너른 벌판이 온통 하얗다


한 달 만에 밭에 나갔다. 특별히 할 일이 있어서가 아니다. 밭에서의 할 일은 이미 마쳤다. 그저 겨울 밭 풍경이 보고 싶었다. 하얗게 눈이 덮여 있다. 너른 벌판이 온통 하얗다. 단조롭다. 자동차 소음도 눈에 묻힌다. 그곳에서 한참을 서성이며 순백의 풍경을 눈에 담았다. 흰색은 순결, 무구無垢를 상징한다는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무언가 말끔히 씻어지는 것 같았다. 한 해를 이런 느낌으로 마무리하고 시작하는 것이 괜찮았다.
텃밭농부에게 겨울은 한가하다. 호밀은 한 뼘 길이로 올라왔는데, 눈에 덮이지 않은 웃싹이 더욱 푸르다. 마늘은 검불에 덮여 있다. 뿌리를 하얗게 내렸을 것이다. 이 상태로 겨울을 난다. 흙이 풀리는 3월이 되면 대를 올린다. 줄기를 거둔 더덕도 저런 상태로 겨울을 지낸다. 겨울 작물들은 저렇게 각자의 방법대로 겨울을 나고 있다. 사람이 끼어들지 않아도 되니 겨울은 때론 지루함도 느껴진다. 서리태 털기 전까지 뻔질나게 드나든 곳이 밭이었는데, 땅이 얼면서 밭에 가는 일이 없어졌다. 봄에서 가을까지 내내 밭에서 바빴는데 할 일이 없으니 허전하다. 긴 겨울을 일없이 지내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 뒷방에 모여 술내기 화투를 치며 지루함을 달랬다는데, 오래전 풍경이다.
요즘 재미 붙인 게 하나 있다. 아스파라거스 모종을 키우는 것이다. 11월 말에 12개의 포트에 씨앗을 넣었는데 2주쯤 지나자 싹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7개가 올라왔으니 절반이 넘는 발아율이다. 창가에 놓았는데 키가 훌쩍 크는 것이 웃자람 현상을 보인다. 실내는 아무래도 작물을 키우는 데 한계가 있다. 햇빛이 아무리 잘 든다고 하여도 유리창은 식물의 생장에 필요한 광선의 투과를 막는다. 아스파라거스는 낮 기온이 20도를 넘어서는 5월에 파종해야 해야 한다. 지금은 시험재배 같은 것이다. 올해 새로운 작물로 가꿔볼 작정이다. 봄이 되면 창가에 두었던 모종을 밭에 옮겨 심고, 봄 파종도 할 계획이다.
아스파라거스는 외국에서 들여온 음식 재료로, 우리에겐 낯설다. 연한 줄기를 프라이팬에 살짝 구워 생선이나 육류와 곁들여 먹으면 졸깃하면서 아삭한 식감이 좋다. 샐러드 재료로도 많이 사용한다. 강원도에서 많이 재배하며, 일본에 수출도 하는 작물이다. 줄기마다 옆으로 뻗은 곁가지가 보기에 좋아 관상용으로도 기른다.


익숙함의 함정에 빠진 것은 아닌지


식품으로서의 가치도 뛰어나다. 농업진흥청 홈페이지에서는 “특히 아스파라긴산이 풍부한데, 아스파라긴산은 1806년 프랑스 과학자 보클랭과 루비케에 의해 아스파라거스에서 처음 발견되어 붙여진 이름이다. 아스파라긴산은 피로 해소와 숙취 해소에 탁월하며 콩팥의 기능을 돕고 이뇨작용을 활발히 하며 요산배출을 촉진시켜 통풍, 신경통, 류머티즘 예방에도 좋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라고 소개하고 있다.
아스파라거스는 다년생 식물인데, 두 해째까지는 수확물을 얻을 수 없다. 흙 위로 줄기를 뻗으려면 뿌리가 풍성해야 하는데, 그 기간이 2년이나 걸린다. 3년째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먹을 수 있는 줄기를 얻을 수 있다. 오래 걸리는 만큼 한 번 뿌리를 내린 아스파라거스는 10~15년을 산다. 봄과 가을에 수확한다.
새 작물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은 새로운 것에 대한 호기심이 작동한 것이기도 하지만, 게으름 때문이기도 하다. 텃밭을 가꾼 지 다섯 해를 지나니 나도 모르게 품이 덜 드는 농작물을 찾게 된다. 더덕이 그랬다. 더덕은 풀을 베어주지 않아도 괜찮다. 더덕은 풀을 감싸고 올라가는 덩굴식물이니 풀 베기를 꼼꼼히 하지 않아도 된다. 더덕은 아직 종자 개량이 덜해 야생성을 지니고 있어 사람이 가꾸지 않아도 어지간히는 자란다. 도라지도 그렇다. 그냥 두었다가 2년쯤 지나 수확하면 된다. 내 텃밭에 다년생 작물이 하나둘 늘어나고 있다. 텃밭 농사 6년째, 익숙함의 함정에 빠진 것은 아닌지 돌아볼 때가 되었나보다.


겨울 밭의 적막


겨울의 밭은 고요하다. 고요함이 지극해 적막하다. 기승을 부리던 벌레들의 옴짝거림은 자취조차 감추었다. 잎을 떨군 작물들은 줄기조차 꺾고 뿌리에 집중하고 있다. 엊그제 내린 눈을 이불처럼 덮고 있다. 사실 눈은 이불의 역할을 한다. 들썩거리는 바람을 막아준다. 겨울 밭은 죽음처럼 고요하다. 그러나 일시 정지일 뿐 뿌리들은 여전히 맹렬하다. 지난 가을의 끝자락에 심은 마늘은 하얀 뿌리를 내린 채 숨을 죽이고 봄을 기다리고 있다. 밭의 겨울은 기다리는 시간이다.
밭은 자연의 순환을 보여준다. 겨울은 순환의 한 구간이다. 겨울의 침잠이 있기에 봄은 소생의 계절이 되는 것이다. 작물은 겨울에도 생명을 품는다. 잎을 떨군 나뭇가지는 그 자리에 잎눈을 잉태하고 있다. 잎눈은 여러 겹의 비늘을 쓰고 있는데, 이 비늘이 이불과 같은 역할을 한다. 봄에 겨우면 잎눈은 활짝 열려 잎으로 피어난다. 그러나 지금은 고요하게 기다리는 시간이다.     
매화는 첫 꽃이다. 추위에 겨워 시름하는데 매화만큼은 유별나다. 매화는 추위를 이겨내지 않는다. 추위와 더불어 지내다가 추위 속에서 꽃을 피워낸다. 그러니 그 향이 그윽하지 않을 수 없는가 보다. 어느 해 범어사에서 마주친 매화는 강렬했다. 설을 앞두고 있었으니 시기로는 엄동이고 아직 동이 틀려면 멀었는데, 저기 사천왕문 앞 한 무더기가 하얗다. 무슨 일이지, 다가가서 살펴보고는 깜짝 놀랐다. 매화가 터진 것이다.


봄은 매화가지에 무르익었더라


밤이 가장 긴 동지冬至가 지난 지도 꽤 되었다. 하루 지나면 낮의 길이가 손가락 한마디씩 길어진다. 매화 꽃이 터졌다는 소식도 머지않아 들릴 것이다. 매화 시 몇 수 빌려 봄을 미리 그려본다.  


永日尋春不見春영일심춘불견춘
芒鞋踏能巄頭雲망혜답파롱두운
歸來笑撤梅花臭귀내소철매화취
春在技頭己十分춘재기두기십분
온종일 봄을 찾아 헤매도 찾지 못하고
산꼭대기 구름이 다 헤어지도록 밟고 다녔네
달밤에 돌아와 매화향기 맡아보니
봄은 매화가지에 무르익었더라


당나라의 연화 비구니의 시로 전해지고 있는데, 부처가 어디에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있다는 깊은 가르침을 매화에 빗대 멋지게 드러내고 있다. ‘春在梅梢雪寒’(춘재매소설한)이라는 구절도 그 울림이 깊다. 일본 도원스님이 지은 선시의 한 구절이다. 직역하면 ‘봄이 매화나무 가지에 내려앉은 눈 속에 있다’ 쯤이 될 텐데, 김시원 수필가는 이렇게 풀었다. “봄이 되어 매화가 피는 것이 아니라, 매의 가지 끝에서 봄이 태어나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음이다. 즉, 매화가 봄을 열어 주는 것이라고.” 시도 절창이지만, 그 풀이 또한 절묘하다. 김용택 시인의 짧은 시 ‘봄날’은 능청스럽다.


나 찾다가
텃밭에
흙 묻은 호미만 있거든


예쁜 여자랑 손잡고
섬진강 봄물을 따라
매화꽃 보러 간 줄 알그라


새해가 열렸다. 올 한 해도 마음자리를 잘 살펴 본래 부처인 하루하루를 만들어가고, 때때로 꽃과 풀의 향기에 마음이 홀려 흥겨운 살림살이가 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