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0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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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의 근본정신

최윤필
한국일보 선임기자


근대의 정치이념이 토대로 삼고 있는 사회계약론에 따르면 국가란 자유와 평등을 지향하는 시민들의 일반 의지에 따라 자발적인 계약에 의해 성립됩니다. 즉 근대국가는 고대의 왕정이나 중세 절대군주제와 달리 주권이 국민에게 있고, 국민의 뜻에 따라 법이 제정되고 선거를 통해 선출된 주권의 대행자, 곧 정부가 그 법을 집행합니다.
근대국가의 탄생은 불가피하게 종교와의 긴장과 갈등을 야기했습니다. 시대에 따라 그 강도와 양상은 달랐지만, 역사적으로 종교는 국가 건립 및 존속의 기초였습니다. 일상의 생활 관습은 물론이고, 공통의 문화와 가치를 공유하게 하고 결속시키는 거푸집이 종교였고, 외세의 침략에 맞서 공동체의 가치와 영토를 수호하는 데 앞장섰던 것도 종교의 깃발이었습니다.
반면 근대국가는 계약론이 기초한 일반의지 즉, 자유와 평등의 이념에서부터 종교의 전일적 지배이념과 맞섭니다. 이제 어떤 종교를 신봉하든 자유입니다. 특정 종교를 믿든 안 믿든, 신자든 불신자든 모든 구성원은 평등합니다. 근대 정치사상의 발상지는 유럽입니다. 그 이념은 아시다시피 허다한 종교전쟁의 폐허 위에 피어났습니다. 모든 종교적 가치의 바탕이 관용과 사랑이라면, 해당 종교 자체를 배타하는 선택 역시 관용으로 포용해야 한다는 이해와 양보는 그러므로 계몽주의자들의 사회계약론에 앞서는, 보다 근원적인 공동체적 기본 원리입니다. 물론 지구상에는 종교권력과 세속권력이 사실상 포개져 있는 일신교적 종교국가들이 있고, 그들 국가 가운데에는 다양한 형태의 종교적 차별과 탄압이 법과 제도의 비호아래, 혹은 관습과 관행의 이름으로 자행되고 있습니다만, 그 같은 행태는 퇴행적 예외라 해야 할 것입니다. 종교의 세속적 권력화는 인류가 획득해 온 근대적 가치와는 결코 양립하기 힘든 모양입니다.
근대국가는 국민이 선택한 국가 모델에 따라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합니다. 절대적 상대적 자유에 비중을 두고 그 기본권의 범위를 폭넓게 인정하는 국가도 있고, 평등의 가치를 중시해서 자유의 폭을 제한하는 대신 경제적 사회적으로 평등한 시민들의 삶을 보장하는 데 더 공을 들이는 국가도 있습니다. 외세의 침략으로부터 영토와 국민의 재산권, 나아가 구성원 모두가 공유해온 정신적 가치를 지키기 위한 유형 무형의 국방 서비스가 있고, 양질의 교육과 근로의 권리를 누릴 수 있도록 학교를 지어 무상교육을 실시하거나 학비를 보조해주고, 또 좋은 일자리를 만들기 위해 노력합니다. 주권자인 국민은 국가의 기본 이념이 자유와 평등 중 어느 한쪽으로 지나치게 치우친 게 못마땅할 경우, 또 어떤 서비스가 부실하다고 판단될 경우 선거를 통해 정권(주권의 대행자)을 교체합니다. 국방과 교육 근로 등은 국가의 필수적인 의무 즉 국민의 권리지만, 동시에 국민의 의무이기도 합니다. 반면에 납세는 모든 국민이 져야 할 기본적이고 고전적인 의무입니다. 저 모든 국가의 역할에는 막대한 비용이 듭니다. 그 비용은, 다른 나라와 전쟁을 벌여 강탈하거나 식민지로 삼아 지속적으로 약탈하지 않는 한, 국민이 부담해야 합니다. 그것이 세금입니다.
종교인에 대한 과세라는 해묵은 문제가 새해 벽두의 현안으로 불거지더니 현 정부에서는 시행하지 않는 것으로 또다시 미봉된 모양입니다. 기획재정부가 지난 17일 발표한 세법시행령 개정안에 이 사안이 빠진 것입니다. 과세 방식과 시기 등 세부안을 두고 종교계와 좀 더 논의해서 시행한다는 게 정부의 입장입니다.
2006년 한 시민단체의 문제제기로 표면화한 이래로 종교인 과세는 심심찮게 거론돼 온 해묵은 과제입니다만, 종교계의 반발과 지지층 이탈을 두려워하는 정치권(국회)의 미온적인 대응으로 매번 유야무야 돼왔습니다. 정부는 ‘소득이 있는 곳에 세금이 있다’는 과세 기본원칙을 내세워 그간 예외적으로 면세혜택을 줘왔던 종교인과 종교시설에도 국민으로서의 의무를 다할 것을 요구하겠다고 밝혔다가, 그 원칙만 재확인하는 선에서 멈춰선 것입니다. 이 문제는 실은 기획재정부는 꽤 오래 전부터 각 종교 대표들과 이 문제를 협의해왔고, 일부를 제외한 다수의 교계가 그 원칙에 동의했다고 합니다. 정부가 이 예민한 문제 해결에 적극적으로 나선 종교의 역사는 근대 국가의 기획과 맞서는 한편 공동체적 가치의 든든한 버팀목으로서 세속 권력의 부실한 공백을 채우고 또 때로는 건강한 견제자로서 요긴한 역할을 해왔습니다. 종교가 근본정신을 재확인하고 그 정신을 실천한다면 종교가 거듭 일신하는 계기, 보다 당당히 국민 앞에 나설 수 있는 토대가 될 수 있습니다. 정부가 이 예민한 문제해결에 적극적으로 나선 것, 정치권이 정부의 방침을 묵인한 것, 그리고 종교계가 원칙적으로 수용하기로 한 데는 물론 다양한 이면의 사정들이 있겠지만, 근본적으로는 주권자인 국민의 뜻이 거기 있다는 것을 쌍방이 더 이상 모른 척할 수 없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종교인 비과세 관행이 터무니없는 봐주기의 소산은 아닙니다. 종교시설의 재정은 대부분 신도들의 헌금으로 유지됩니다. 종교인은 그 헌금의 최소한을 활동 및 시설 운영 경비로 쓰고, 잉여의 돈이 있다면 공익을 위해 베푸는 데 사용합니다. 그것이 종교의 기본 정신이자 헌금의 정신입니다. 이를테면 주권의 대행자가 정부라면 신도의 보시(헌금)의 대행자가 성직자인 셈입니다. 헌금하는 돈은 물론 신도들이 번 소득의 일부이고, 그 돈을 어려운 이웃에게 나눠주라고 헌금하는데 거기에 다시 과세를 한다는 것은 명백한 이중과세일 뿐 아니라 헌금을 낸 신도에게는 연말 소득공제 혜택을 주면서 그를 대행한 성직자에게는 세금을 매기는 것도 모순일 것입니다. 원칙적으로 그렇다는 의미입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고 판단하는 국민들이 훨씬 많은 듯합니다. 날로 넓어지고 드높이 치솟는 대형 교회들의 부속건물과 첨탑들, 심심찮게 드러나는 성직자들의 축재 및 호화로운 생활의 단면들, 눈살 찌푸려지는 추문과 소송 등등… 일년 열두 달 끊일 새 없는 불사佛事로 고요할 새 없는 사찰의 현실도 그리 곱게 보이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런 판에 종교시설 기부금 비과세의 관행을 악용해서, 자신이 헌금한 것보다 훨씬 많은 기부금영수증을 받아 세액공제를 받는, 다시 말해 소소히 탈세하는 신도들도 아주 없지는 않은 모양입니다.
“그렇다면 세금이라도!”라는 주권의 요구는, 보다 엄밀히 말하자면, 성직자들에게 본연의 자세, 종교 근본의 정신으로 되돌아가라는 신도로서의 준엄한 요구일 것입니다. 일부 보수개신교단의 입장처럼 ‘근로소득’이라는 과세의 명칭을 시비 삼거나, 이중과세의 퇴색한 명분을 앞세워 저항하는 것은 안타까운 노릇입니다.
원칙은 지켜질 때 의미를 얻습니다. 지켜지지 않는 원칙은 애당초 덮어두는 것이 다른 원칙들이 상처받는 것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바람직합니다.
문제는 종교인 과세가 곧장 시행되더라도 풀어야 할 과제가 적지 않다는 점입니다. 당장 헌금을 받을 때마다 세금계산서를 발급하는 일도 없고, 신용카드 결제도 안 되는 종교시설 특성상 과세당국이 수입의 전모를 파악하기란 현실적으로 거의 불가능합니다. 추징시비가 끊이지 않는 수많은 고소득 자영업자들의 탈세 사례들을 우리는 익히 알고 있습니다.
종교인(시설 및 법인)의 경우, 선의의 회계와 투명한 재무제표가 필수적으로 전제돼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세무당국이 종교시설의 의지에 반해가며 강력한 세원 파악 및 과세 의지를 발휘하기도 힘들 것입니다. 이 같은 사정을 악용하는 종교인도 더러 나타날 것입니다. 또 그런 사례들이 적발되면 종교의 위상은 점점 더 왜소해질지 모릅니다. 복식부기 장부의 의무화와 우리나라 회계기준 제정기구인 한국 회계기준원이 제정한 ‘비영리조직 재무제표 작성 및 표시지침서’의 준용을 법적으로 강제한다든가 할 경우 더 큰 부작용이 야기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정부의 이번 유보 결정을 두고, 일각에서는 종교계의 이중성 즉 대외적으로는 원칙 동의 입장을 밝히고 협상에서는 반발했다거나 일부 교계의 박근혜 당선자 진영에 대한 집요한 로비의 결과라고 의혹을 제기하는 모양입니다. 하지만 사실이 뭐든, 합리적인 과세 실현을 위해서라도 준비 없는 우선 시행을 무조건 고집할 일은 아닐 것입니다.
종교의 역사는 근대 국가의 기획과 맞서는 한편 공동체적 가치의 든든한 버팀목으로서 세속 권력의 부실한 공백을 채우고 또 때로는 건강한 견제자로서 요긴한 역할을 해왔습니다. 과세의 문제 역시 그런 맥락과 긴밀하게 닿아있는 듯합니다. 종교가 근본 정신을 재확인하고 그 정신을 실천한다면 과세의 원칙은, 아주 사소한 불편이야 뒤따르겠지만, 종교가 거듭 일신하는 계기, 보다 당당히 국민 앞에 나설 수 있는 토대가 될 수 있습니다. 단 한 푼도 세금을 내지 않는(혹은 안 내도 되는) 종교시설이라는 타이틀은 그만큼 열심히 베풀었다는 점에서 아주 성스럽고 영예로운 표찰이 될 수도 있고, 찜찜한 의심과 손가락질의 명분이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