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0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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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중매 향기 뿜어나다

박상준


고전연구실 뿌리와 꽃 원장


끊임없이 무엇을 익힌다는 뜻의 익힐 습習 자는 깃 우羽라는 글자 아래 흰 백白 자가 받치고 있는 글자이다. 새의 깃과 하얗다는 뜻이 만나서 어떻게 익힌다는 글자가 되고 학습한다는 뜻이 나오는 것인가. 논어의 첫 구절 학이學而편의 첫머리 구절은 누구나 잘 알고 있듯이 ‘학이시습지學而時習之면 불역열호不亦說乎아’이다. 보통은 ‘배우고 때로 익히면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로 뜻풀이를 한다. ‘때로 익히다’는 말은 사실은 끊임없이 시시각각 익힌다는 뜻이다. 어느 야구선수가 인터뷰해놓은 기사를 전에 읽은 적이 있는데 한밤중에 다른 선수들이 모두 숙소로 돌아간 뒤에도 혼자 남아서 천 번이고 만 번이고 반복해서 고무타이어에 베트를 휘둘렀다고 한다. 손바닥에 피가 흥건하게 물들어야 이제 연습을 좀 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논어의 첫 구절을 좀 자세하게 음미해 본다. 배운다는 뜻의 학學은 스승이나 선배가 하는 것을 본받는다는 뜻이다. 롤 모델이 있어야 나도 저렇게 한 번 되어야지 하는 마음이 들게 된다. 고수의 한 수 지도가 없이는 절대 차원을 벗어나 한 차원 위로 올라가는 경험을 하기가 어렵다. 시골에서 바둑을 잘 두는 스승과 제자가 옆 동네의 바둑꾼에게 형편없이 지고 나서 둘이 짐을 싸서 산속 깊이 들어가 10년간 바둑을 연구하고 나왔다. 다시 옆 동네의 바둑꾼에게 살짝 배운 어린 사람과 바둑을 두었는데 백판을 내리 지고 말았다. 거기서 거기인 바둑 실력으로 10년 동안 제자리걸음만 하고 체력마저 한참 떨어져버렸기 때문이다. 박세리 선수가 미국에서 골프 치는 것을 재미있게 지켜보던 꼬마들이 지금은 미국 여자 골프 무대를 주름잡고 있다. 분야를 막론하고 먼저 길을 가본 사람의 한마디는 큰 힘이 되는 것임에 틀림없다.


시습時習은 김시습 선생의 이름이기도 한데 여기서 시時 자는 어쩌다 때때로가 아니고 끊임없이 시자이다.
저 앞의 야구선수가 밤마다 끊임없이 손바닥에서 피가 나도록 베트를 휘두르는 것이 그 예이다. 습習은 깃털이 아직 하얗게 뽀송뽀송한 새끼 새가 엄마 아빠가 나는 것을 보고 둥우리에서 퍼득거리면서 날갯짓을 한다는 뜻이다.
시골집 구석에 제비가 집을 짓고 알을 낳고 얼마 안 있어 부화한 새끼 제비들이 밤낮없이 퍼득거리면서 날갯짓 하던 것을 본 적이 있는 사람은 이 글자를 이해하는 데 뭐 그리 큰 어려움이 없을 것이다. 그 부단한 노력 끝에 어느 날 새끼 제비는 조금 떨어진 앞 담까지 날아가 불안한 착지이지만 큰 숨을 몰아쉬고 엄마 아빠를 돌아본다. 다음날은 앞 담까지 날아갔다 둥우리로 돌아오고 하다가 사나흘 지나면 옆집과 연결되어 있는 전깃줄까지 힘내서 날아오른다. 발톱으로 안간힘을 다해 전깃줄을 붙잡고 이로 안간힘을 다해 전깃줄을 붙잡고 이제 지붕보다 조금 높은 세상구경을 한다. 이런 과정을 일러 습習이라고 한다. 그렇게 전깃줄까지 날아가고 전깃줄에서 땅바닥에 내려앉아 보고 땅바닥에서 앞 담까지 날아오르고 앞 담에서 둥우리로 귀환하는 과정을 부단하게 익히다가 어느 날 드디어 엄마 아빠 누나 동생과 편대를 이루어 허공을 날아다니게 된다. ‘기쁘지 아니한가’의 기쁘다는 뜻의 열說 자는 설로 발음하기도 하고 선거 유세할 때는 세자로 읽고 옷을 벗는다는 뜻의 탈자로 발음하기도 한다.


고전의 구절은 단번에 이해되기도 하지만 곱씹어 읽고 다시 꺼내 읽고 하는 과정에서 새록새록 우러나오는 의미가 들어올 때 고전을 읽는 진미가 있다할 것이다. 흔히들 논어의 구절은 오십이 지나서 읽어야 그 뜻이 좀 들어온다고 한다. 삼십대에 논어를 읽을 때 뜻을 파악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시험이라도 보면 점수가 잘 나올 것이다. 허나 한 구절 한 구절에 스며들고 굽이쳐 흐르는 의미는 아무래도 세월이 좀 더 흐른 다음에 보이기도 하는 모양이다.


전에 논어의 첫 구절을 읽을 때는 그 부단한 날개의 퍼덕거림에 포인트를 두고 읽었었다. 오늘 다시 읽어보니 날갯짓도 날갯짓이지만 엄마제비와 아빠제비가 터를 잡은 아늑한 제비알터
공간에 생각이 가주고 있다. 바람도 피하고 긴 빨랫줄 같은 모양을 하고 있는 다른 동물의 침입도 피하고 땅에서 올라오는 지열을 잘 받는 곳에 제비들은 집을 짓는다. 무슨 설계도를 미리 그리고 청사진을 뽑아내고 하는 것도 아니다. 포크레인을 동원하는 것은 더욱 아니다. 집 주인에게 못과 망치를 빌려 달라고 부탁하지도 않는다. 물론 화장실과 주방의 위치를 고민할 필요가 없다는 점도 있다. 논에서 진흙을 톡톡 물어다가 차근차근 쌓아올리는 솜씨라니 참 그저 감탄사만 나올 뿐이다. 흙벽돌을 쌓아 올려보면 제비의 솜씨가 어느 정도인지 더 잘 짐작이 될 수도 있다.


우리 몸에도 제비알터가 있으니 골반시스템이다. 골반시스템이 안정되지 않으면 건강을 기대하기는 참으로 어렵다. 골반시스템을 아래에서 지탱하고 있는 무릎과 발목과 발가락 시스템의
중요성은 말할 나위도 없다. 발가락 끝이 길가의 돌부리에 부딪치는 바람에 머리 꼭대기까지 찌르르 전해오는 전기에너지는 누구나 느껴보기도 한다. 장구성이라는 사람은 봄날 어느 시골집 화장실에서 큰일을 보다가 개구리들이 한꺼번에 우는 소리를 듣고는 온 우주가 하나의 집안임을 알고는 게송을 지었는데 발가락 부딪치는 소식을 적어놓고 있다. 당나라 때의 스님인 현사 사비 스님은 어느 날 고갯마루를 넘어가다가 돌부리에 어느 발가락인지는 알 수 없지만 돌부리를 걷어찼는데 돌부리에 걷어 채였는지 퍼뜩 한 소식을 했다고 한다. 장구성은 게송의 뒤쪽 두 구절을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正任麽時誰會得
정임마시수회득


嶺頭脚痛有玄沙
영두각통유현사


바로 이러한 때에
누가 또 깨달음을 얻었던가
고갯마루에서 돌부리를 걷어차서
뜨끔하게 한 소식한
현사스님 계시다네


책을 읽다가 스스로 뜨끔해질 때 정말 행복해진다. 물론 그 뜨끔함이 실시간으로 행복한 느낌을 주는 경우는 많지 않다. 한동안 가슴이 먹먹해지고 머릿속이 아득해지기도 하고 심장이 멈추어버리는 듯한 극도의 통증이 동반되는 경우가 많다.
안하던 운동을 오랜만에 하면 근육통이 반드시 찾아온다. 좀 더 심하게 운동을 하면 인대와 뼈마디를 이어주는 관절통이 찾아온다. 고전을 읽는다는 것은 보이지 않는 마음의 근육과 인대와 관절과 혈관과 보이지 않는 마음의 모세혈관을 청소하는 일이다. 호흡수행을 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겪어보았겠지만 골수 깊은 속에 굳어있던 덩어리 부스러기들이 풀리느라고
극심한 뜨끔함을 넘어서는 인두로 지져대는 듯한 통증이 때때로 동반되기도 한다. 들은 얘기지만 사육신의 한 사람인 성삼문은 화가 머리꼭대기까지 치민 세조가 벌겋게 달구어진 인두로
국문을 하는 데 태연하게 웃으면서 한마디를 건넸다고 했다. “어허 인두가 아까보다 식었소.
좀 더 달구시오.” 벌겋게 달구어진 인두를 더 달구라고 하면서 성삼문의 달굼질을 굳이 배울
필요는 없을 것이다.
이 추운 겨울이 다 끝나기 전에 설중매가 향기를 뿜을 것이다.


不是一番寒徹骨
불시일번한철골


爭得梅花撲鼻香
쟁득매화박비향


매서운 추위가 뼈를 한번
뚫고 지나가지 않으면
어찌 코를 찌르는
매화향기를 얻을 수 있으리오.
설중매 향기 뿜어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