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상돈
한의학 박사|원광대학교 한의대 외래교수|햇살고운 한의원 대표원장
얼마 전 40대 후반의 마른 듯한 부인이 내원했다. 밥을 먹으면 소화가 안 돼 꺽꺽거리고, 음식이 내려가는데 시간이 오래 걸리는 증상을 낫고 싶다고 했다. 소화제를 먹으면 그때그때 괜찮다가 소화불량 증상이 다시 그런지 3~4년 됐는데, 그동안 내시경검사 결과도 문제없었고 그렇다고 아주 많이 불편한 것도 아니면서 또 재발된다는 것이었다. 급체한 것도 아니고 심한 소화장애도 아닌 것 같아 치료보다 먼저 생활습관을 알고 싶었다. 매일 먹는 음식을 빠트림 없이 10일간 기록해 달라고 했는데, 거기에 해답이 들어 있었다.
해답은 바로 현미밥에 있었다. 언제부터 현미밥을 먹었느냐고 물었더니 몇 년 됐다는 대답이었고, 기억을 더듬어 보니 현미밥을 먹으면서부터 소화가 안 된 것 같다는 답변도 들었다. 이
부인의 증상은 소화기능이 약한 소음인 체질인 것도 한몫한 것으로 보였다.
건강을 따지는 현대인들은 조금 값이 비싸도 몸에 좋은 제품을 선택한다. 현미가 바로 그런 식품이라고 본다. 현미는 겉껍질인 왕겨만 벗겨내서 영양소가 풍부하다.
여러 차례 도정을 거쳐서 쌀겨와 배아까지 깎아낸 백미와는 달리 현미는 쌀겨와 배아가 남아 식이섬유와 비타민, 그리고 미네랄이 풍부하게 들어있다. 또한 불포화지방산이 들어있어 뇌 발달과 탁한 혈액을 맑혀주기도 하고 민감한 피부를 보호해주기도 한다. 토코페롤을 함유해서 세포의 노화예방과 암 발생을 줄여준다고 하고 고혈압 당뇨 등 대사증후군에도 발군의 효과를 가지고 있다. 이처럼 현미가 좋은 점이 많은 건 맞지만 모두에게 좋은 완전식품은 아니다.
소화기능이 떨어지는 사람에게는 매일 먹는 현미가 문제를 가져올 수 있다.
이것은 현미에 포함된 식이섬유와 관계가 깊은데, 쌀을 감싸고 있는 껍질만 제거했기 때문에 표면에 섬유질이 많이 붙어 있어, 소화기능이 약한 사람이 먹으면 속이 불편하고 백미에 비해
서 소화시간이 길어진다. 소화기능이 약한 사람이라도 한두 끼 현미밥을 먹는 것쯤이야 큰 문제가 없으나 몇 년을 두고 장기간 현미밥을 고집하다 보면 어느새 소화불량이 발생하는 경우가 많다.
밥을 빨리 먹는 습관을 가진 사람 또한 현미밥을 먹고 소화장애를 가져올 수 있다.
소화의 시작은 위가 아닌 입에서부터다. 입에 들어간 음식을 씹으면 덩어리가 잘게 분쇄되고
소화효소를 함유한 침이 분비되어 음식과 섞인 후, 위로 내려가야 소화가 용이하다. 그런데 껄끄럽고 섬유질이 많은 현미밥을 씹지 않거나 빨리 삼켜 버리면 위가 부담 되어 탈나거나 가스가 차고 속이 더부룩해진다.
비록 현미가 건강에 좋은 웰빙식품이라고 하나 소화력이 약한 사람은 현미를 고집할 일이 아니고 오히려 백미를 먹는 게 좋다. 식사를 빨리 하는 사람은 천천히 씹어 먹거나 아니면 백미를 선택하는 게 낫다. 또 몸이 허하거나 큰 병을 앓고 난 사람은 현미보다는 백미로 밥을 짓거나 쌀죽을 만들어 먹는 게 낫다.
그래도 현미를 포기하지 못하겠다는 사람은 전날에 현미를 물에 담궈 놓았다가 밥을 하면 그나마 소화장애가 덜 할 수 있다.
위 부인의 경우에는 특별한 치료를 하지 않고 식생활습관 교정만으로 소화불량이 나았다. 우선, 현미를 백미로 바꾸고, 밥 한 숟가락을 20~30번 정도 오래 씹어 먹도록 주문했다. 또 음식량을 줄이고 고기를 자주 먹거나 찬 음식, 기름진 음식을 피하게 했다. 마지막으로 동의보감에 나오는 감로진액요법, 즉 치아를 위 아래로 딱딱딱 가볍게 마주쳐서 그때 나오는 침을 수시로 먹도록 했다. 침은 우리 몸에서 생기는 천연소화제이므로 자주 먹을수록 소화에 도움이 된다. 이러한 식생활을 하면서 소화불량은 자연히 나았다.
현미가 다이어트 고혈압 당뇨병 등 대사증후군, 변비, 노화방지에 최고의 식품인 것은 확실하지만 체질에 따라서, 증상에 따라서 건강에 나쁜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점도 기억해 주시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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