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0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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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들가지 위로 부는 봄바람

박상준
고전과 호흡운동연구실 뿌리와 꽃 원장


한파가 몰아쳐 들이치더니 겨울이 슬슬 떠날 준비를 하고 있다. 그렇다고 성급하게 외투를 벗어던질 때는 아니다.
하지만 찬바람을 고맙게 막아주던 외투가 살짝 무거워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우리 몸도 실은 우리가 임시로 걸치고 있는 외투이다. 그 몸 외투에 대해 백거이는 다음과 같이 담담하면서도 자유롭게 읊고 있다.


亦莫戀此身
역막련차신


亦莫厭此身
역막염차신


此身何足戀
차신하족련


萬劫煩惱根
만겁번뇌근


此身何足厭
차신하족염


一聚虛空塵
일취허공진


無戀亦無厭
무연역무염


始是消遙人
시시소요인


이 몸을 싫어하지도 말지라
이 몸을 무어 좋아할 것 있으랴
만겁 번뇌의 뿌리인 것을
이 몸을 무어 싫어할 것 있으랴
한 뭉치 허공의 먼지 덩어리인 것을
좋아함도 없어지고 싫어함도 없어져야
비로소 자유롭게 노니는 사람이리라


우리 몸 자체뿐만 아니라 우리에게 다가오는 상황이나 만남과 헤어짐에 담담해질 수 있으면 더 좋은 일이다. 잘 알려져 있는 법구경의 한 구절을 읽어본다.


不當趣所愛
부당취소애


亦莫有不愛
역막유불애


愛之不見憂
애지불견우


不愛亦見憂
불애역견우


좋아하는 것에 집착하지도 말고
싫어하는 것도 가지지 말지니
좋아하는 것은 못 봐서 근심이 생기고
싫어하는 것은 보게 돼서 근심이라네


“사랑하는 사람은 만들지 말고 미워하는 사람도 만들지 말라. 사랑하는 사람은 못 만나서 괴롭고 미워하는 사람은 만나서 괴롭다네” 하는 내용으로 더 잘 알려져 있는 구절이기도 하다. 한문에서 뜻을 살펴보면 사람과 상황 전체에 포괄적으로 해당하는 뜻이 읽어진다.
눈앞에 닥쳐올 상황이나 나에게 주어진 직위와 자리가 사실은 금강경의 가르침대로 꿈이고 허깨비임을 꿰뚫어 알아차릴 수 있으면 좋아하지도 않고 싫어하지도 않을 수 있을 것이다. 지나간 것은 그런대로 꿈이고 허깨비라고 알아차리면서도 현재의 나에게 주어져 있는 것이 꿈이고 허깨비라고 하면 그만 서운한 생각이 드는 것이 많은 사람들의 인지상정이다.
지위가 그리 높지 않은 사람에게 당신의 현재 지위가 꿈이요 허깨비인줄 아시오 하고 말해주면 ‘그래요, 더 높은 자리로 갈 수 있다는 말입니까’ 하면서 오히려 반가워할지도 모른다. 허나 무척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에게 그 지위가 잠시 역할을 맡은 것일 뿐이고 허깨비이며 꿈이요 하고 말해주면 선뜻 수긍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나중에 혹 염라대왕을 만나게 되면 당신이 맡고 있는 염라대왕이라는 지위가 허깨비이고 꿈일 뿐이니 너무 채근하지 마시오 하고 말해줄 생각인데 이 생각이 생각으로 떠오를지 말지는 닥쳐봐야 알 일이기도 하다.
조선시대 중기에 활동했던 허응보우 스님은 삶이 실체 없는 허깨비임을 알고 맡은 직책을 집착 없이 열정적으로 소화하고 떠난 분이다. 제주도에서 장형을 당해 세상을 떠났는데 떠날 때 다음과 같이 극적인 시를 남겼다.


幻人來入幻人鄕
환인래입환인향


五十餘年作戱狂
오십여년작희광


弄盡人間榮辱事
농진인간영욕사


脫僧傀儡上蒼蒼
탈승괴뢰상창창


허깨비 사람이 허깨비 마을에 들어와
오십여 년 희극으로 미치광이 노릇을 했구나
인간세상 영욕의 일을 희롱하여 마쳤으니
승이라는 꼭두각시도 벗어던지고 푸른 하늘로 올라가노라


연극배우는 연극을 하는 동안 배역에 푹 빠져 들어가기는 하지만 자신이 연극을 하고 있음을 안다. 너무 배역에 빠져 들어 자신의 목을 칼로 진짜 그어버린 배우도 있기는 하다. 하지만 대부분의 배우는 그 장면에서 목을 긋는 시늉만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우리네 삶은 실전 연극이면서 영화라고 할 수 있겠는데 상황상황이 너무 리얼하게 진행되다 보니 이게 연극이고 영화임을 알아차리기가 그리 쉽지는 않다.
허응보우 스님은 자신을 떠나보내는 시를 지었고 당나라의 시인 왕유는 친구를 떠나보내는 시를 지었다.


渭城朝雨.輕塵
위성조우읍경진


客舍靑靑柳色新
객사청청유색신


勸君更進一杯酒
권군갱진일배주


西出陽關無故人
서출양관무고인


위성의 아침비가 미세먼지를 씻어주니
객점의 푸르고 푸른 버들빛이 싱그러워라
그대에게 한잔 술을 다시 권해 올리노니
서쪽으로 양관을 나서면 이제 친구가 없다오


양관은 현재의 감숙성 돈황현 서쪽에 있는데 옛날에는 국경의 관문이었다. 국경밖 저 멀리 떠나는 친구에게 아침부터 한 잔 권하면서 이별의 소회를 달래고 있다. 그 때문에 이 시는 양관곡陽關曲이라고 불리면서 이별의 시 중에 대표작으로 거론되는 시이기도 하다.
위성은 진나라 때의 수도 함양이다. 한나라 때는 위성으로 불렀고 당나라 때는 서북쪽으로 떠나는 사람을 이곳에서 많이 이별했다. 미세먼지가 요즘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중국에서는 미세먼지의 역사가 참 오래된 것인가 하는 생각이 얼핏 들기도 한다. 밤새 이야기꽃을 피웠는지 쿨쿨 잠을 잤는지는 알 수 없으나 친구를 떠나보내는 아침, 마침 비가 내리고 있다.
비가 흘러내리면서 친구와의 사연도 씻어내주고 객점 저편에 서있는 버들잎에 묻은 먼지도 적셔준다. 비에 적셔진 미세먼지가 살짝 흘러내리면서 버들잎의 색이 푸른색을 드러낸다. 친구를 보내는 아쉬움은 비에 씻겨 내려가지 않고 푸르게 돋아 오른다.
낮에 한잔 더 권하는 아침인 것도 잊어버리고 다시 한 잔을 권한다.
그러면서 아침부터 권하는 핑계를 그럴듯하게 찾아낸다. 이제 국경의 관문인 양관을 벗어나 서쪽으로 나서면 그대에게 한 잔 권해줄 친구가 없다고 말이다. 떠나는 친구도 사양치 않고 받았을 것이다.
이별의 시 <양관곡>을 꺼낸 것은 이제 고전 명구 감상 독자님들께 감사의 작별인사를 드릴 때가 되었기 때문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맡은 바 역할을 그야말로 열심히 묵묵히 소화하고 계시는 독자님께 한 잔 대신 당나라 두보의 시 구절을 올린다. 겨울 지나면 봄이 오듯 하시는 모든 일이 한올 한올 풀려나가리라 믿어 의심치 않으면서.


寒雪梅中盡
한설매중진


春風柳上歸
춘풍유상귀


차가운 눈이 매화 속으로 녹아서 사라지니
봄바람이 버드나무 위로 돌아오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