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02월호

    다시듣는 큰스님 법문
    이달의 법문
    화보
    다람살라소식
    화엄경 열 두 꼭지
    시심불심
    시심불심
    반야샘터
    불서
    선지식을 찾아서
    산사카페
    불교관리학
    건강한 생활

과월호보기

시간 깊은 집에서 역사의 여운을 만지다

동국사 카페 ‘다온’에서


이서연
시인


지금 이 순간, ‘나’라고 존재하는 것이 무엇인지 질문을 스스로 던져 본다. 답을 던져 본 적도 없으면서 바람이 속에 품은 생각을 꺼내보게 할 때가 있다. 아픔이든 즐거움이든 영원할 것 같아도 그 어떤 계기와 순간에 퇴색이 있듯이 스스로 던져보는 존재에 대한 의문도 시간에 따라 달라진다. 그래서 가끔은 그런 생각조차 없이 사는 것도 필요하다. 
해가 바뀔 때마다 운명도 바뀌었으면 하는 기도를 생각한다는 친구가 있다. 그래서 기도가 끝나지 않는다고 했다. 또 한 친구는 코로나로 집안에 있을 때 참선을 많이 했는데 갑자기 원하지 않는 일이 반복되는 일상에서 중도의 경계를 찾는 게 난해한 의미라는 생각이 들어 흔들린 적이 있다고 했다. 두 친구의 말에 적당히 해 줄 말이 없었다. 그냥 그 친구들은 그 생각대로 열심히 살아가는 모습으로 보였다.
내 존재가 귀하듯 내 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도 귀할 수밖에 없고, 내 생각이 소중하듯 타인의 생각도 소중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새해가 되고, 계절이 바뀌면서 세상은 세월이라는 흐름 속에 무엇이든 어떤 것으로든 변하고 있다. 따라서 ‘생각’이라는 것은 그 어떤 찰나도 소중하지 않을 수 없다는 그 의미를 행동, 실천을 통해 드러내는 것이 중요하지 않겠는가. 사단법인 국학연구회는 “오늘도 내일이면 역사가 된다”는 모토로 역사를 연구한다. 이 연구회에 동참하면서 과거를 찾는 것은 오늘의 시간을 귀히 여기는 과정임을 배운다.
 어느 날 ‘그날도 오늘의 역사가 되리라 생각했을까?’ 하는 생각을 했던 사찰이 있다. 군산 동국사東國寺다. 일주문도 없고, 사천왕문도 없이 돌기둥만 있는 정문에서 마당에 들어섰을 때 일본에 가면 이런 느낌이겠구나 싶을만큼 이색적이다. 단청도 없고, 아무런 장식이 없는 처마와 대웅전 외벽이 일본 에도 시대 분위기를 갖고 있다. 1909년 일본 승려 선응불관 스님에 의해 ‘금강사’라는 이름의 포교소로 개창되었고, 일제 강점기 내내 일본 승려들에 의해 운영되었다가 해방 후 우리나라 스님들이 운영하게 되었다고 한다. 창건 당시에는 일본인 조동종 승려가 개설하였기에 조동종 사찰이었으나 현재는 조계종 제24교구 고창 선운사 말사다.
일본불교는 1877년 부산의 개항과 함께 들어오기 시작하였는데 당시 조선에서 사업을 하는 일본인 사업가들의 안녕을 빌어주기 위해 절들이 창건되었다고는 하지만 당시 배경으로 볼 때 일본 불교가 순수하게 우리나라에 불교를 포교할 목적으로 들어왔다고 보기는 어렵다. 사찰건립에 일본 정부의 지원이 있었던 것을 볼 때 국가 차원에서 점차적으로 우리나라를 일본화 하려는 의지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당시 금강사를 창건한 내전불관이 1909년 당시 77세의 고령이었다고 한다. 그가 군산 지역을 순석하다가 군산 일조통에 있던 집을 빌려 포교소를 개설하였고, 1913년 7월에 현재의 자리로 옮겨 지금의 동국사를 신축하였다고 한다. 일제강점기의 잔재를 없애야 한다는 차원에서는 이런 사찰이 남아야 하느냐 할 수 있다. 그러나 동국사 도량에 2012년에 세워졌다는 참회비를 보면서 그 역사의 아픔과 상처를 기억하는 것이 역사의 가치라는 차원에서 볼 때 동국사의 존재성은 의미가 있다고 본다.
국가지정 등록 문화재 제64호로 지정된 대웅전은 외형만으로도 흥미롭다. 지붕의 경사가 급해 날렵함이 있지만 웅장함을 겸비하고 있다. 외벽의 문은 일본의 오래된 건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형태대로 미서기문으로 되어 있다. 문살과 외벽은 섬세한 안정감이 있다. 현관을 통해 내부로 들어가니 깔끔하면서도 긴 복도가 더욱 일본의 가정집에 들어온 듯한 분위기다. 마루가 탐나는 건축 구조다. 마치 영화 <짱구는 못말려>의 짱구가 어디선가 튀어 나와 장난이라도 치지 않을까 하는 상상을 잠시 하며 홀로 웃어도 본다. 아늑한 곳에 삼존불이 모셔져 있다. 이 소조석가여래삼존상은 보물 제1718호로 불상 내부에서 다라니와 발원문 기록 등 다량의 복장유물이 발견되어 화제 된 바 있다. 깔끔한 법당 분위기 덕인지 삼존불에서 소박한 듯 단정함과 부드러움이 느껴진다. 일본식으로 삼존불 머리 부분에 모빌 같은 것이 있지만 부처님의 미소는 역시 오래 뵌 분 그 느낌이다. 저 가슴 속에 얼마나 많은 이야기를 담고 계실까… 물론 부처님은 그 어떤 얘기도 담고 계시지 않을 것이다. 시간이 이야기를 담고 흘러갔을 뿐.


시간은 잠에서도 흐르더니
불을 켜고도 놀라지 않는다
  
암흑에
지워야 할 것은 역사가 아니다
또렷한 상처는 지우지 말자
그리고 살아내자, 살아내자 그리고 다시 기억하자
진리에 의지하는 생명력을
자비로 일어서는 아름다움을
        
가장 어려운 용서로 꽃을 피우는 역사
오늘, 부처님 가피로 심어보자
-동국사 도량에서 봄볕을 기다리며-


대숲 소리가 참 좋은 동국사 도량에는 대웅전 외에도 우리나라 사찰과 다른 점이 많다. 특히 종루는 특이하다. 종이 작고, 기둥이 비스듬하다. 지진이 많은 일본의 특징에 맞게 견고함을 위해 설계된 것으로 보인다. 종루 주변에 석조33관세음보살상이 즐비하다. 일본인이 조각했는지 우리나라 불상조각과는 좀 다르지만 역시 한 분 한 분을 보면 저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부처의 형상이 아니라 부처 마음을 보는 그 미소만 잘 간직해도 가피 아니겠나. 
또한 동국사에는 평화의 소녀상이 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의 명예와 인권회복을 위해 건립운동이 한창일 때 동국사에는 일본 조동종의 일체 침략을 참회하는 참사문비 앞에 평화의 소녀상을 세웠다. 일본 조동종 이치노혜 스님 등 의식있는 일본인들도 성금에 동참했다고 한다. 작은 마음이나마 그 어떤 것으로도 치유되기 어려운 슬픔의 무게를 덜어드리고 싶었던 참회의식이었다고 믿고 싶다. 하지만 사찰에 이런 소녀상이 있어야 하는 역사가 끝끝내 슬프다.
대웅전 옆에 아주 예쁜 찻집 ‘다온DAON’이 있다. 갤러리 분위기인데 곳곳에 놓인 악세사리와 그림때문인지 일본 분위기가 나는데 차분하고 세련미가 있다. 꽃차가 우려지길 기다리는 동안 잠시 갖고 간 책을 보았다. 재일한국인 얘기를 담은 <GO>라는 소설이다. 일본은 가족사를 담은 얘기가 소설과 영화로 많이 나온다. 이 또한 아픔의 역사, 가족 얘기, 청춘의 얘기가 담겨 있고 영화로 잘 알려진 소설이다.
차가 다 우려졌을 땐 함께 한 이와 영화 <쉘 위 댄스?>를 얘기했다. 평범한 중년이 출퇴근 전철에서 무심코 사교댄스 교습소 창가에 서 있는 여인을 보게 된다. 밋밋하게 살던 그 남자의 가슴에 무엇인가 일렁임이 시작되고 결국 생소한 사교댄스 세계에 발을 들여놓는 이야기였다. 중년 남자에게 불어닥친 미묘한 감정, 열정, 그리고 부부에게 서로의 관계를 생각해 보게 하는 영화였다. 때로는 가장 습관적인 삶을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그 역시 시간이 주는 여운이다.
꽃향이 중년으로 들어오면 춤이 되고
차향이 중년으로 스며들면 꽃이 되니
시간이 중년이 되어 시가 되면 좋겠다
 -‘다온’에서 중년과 차를 마시다-


현상적인 것은 차 한 잔 마시는 시간에도 지나간다. 역사는 그 시간 속에 녹아 흐른다. 색다른 역사를 담고 있는 동국사는 어느 면에서 볼 때 마치 시간이 멈춰 있는 느낌이 있다. 그 가운데 길게 품고 있는 그 시간의 흐름에도 변하지 않는 것이 없고, 지나고 나면 다 한순간 꿈과 허깨비 같은 것임을 차 한 잔 마시는 동안 느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