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0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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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관리법(8)

 


성운대사 지음
조은자 옮김


<지난호에 이어서>


팔경법八敬法


불광산 개산 초기 곽郭씨 성을 가진 공군 하사관 한 분이 찾아와 출가하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저는 “좋습니다. 축하와 함께 당신을 축복합니다. 도심道心을 내고 세속을 벗어나 불문에 들어 더욱 정진하려는 것은 항상 좋은 일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저한테는 아이가 다섯 있습니다. 큰아이는 12살쯤 되었고, 막내가 이제 겨우 두세 살밖에 안 되었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 말을 듣자마자 ‘다섯 아이라니 잘 되었구나. 마침 보육원(유치원)을 설립하려는데 한꺼번에 다섯 아이가 생기니 보육원이 북적북적하겠다’ 생각하고 그에게 “좋습니다. 그 아이들 다섯 명을 제가 대신 보살피겠습니다” 하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다섯 아이를 우리 보육원에 머물게 하고 출가를 했습니다.
출가를 했다고 부자의 정이 끊어지는 것은 아니니, 그는 가끔 불광산에 들러 자녀들을 찾아보곤 했습니다. 몇 차례 찾아온 뒤에 그가 한번은 저를 만나 “불광산의 비구니들은 규율이 없어 보입니다. 비구를 봐도 정례頂禮하지 않으니 팔경법이라는 것도 모른단 말입니까” 하고 말했습니다.
저는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당신은 아주 고뇌도 모르고, 부끄러움도 모르는구려. 당신이 출가하여 해탈하도록 여러 아들딸을 내가 대신 부양하고 있는데, 비구니가 당신에게 정례하기를 바라니 그대에게 그런 공덕이 있기는 한 것인지…. 비록 여기가 개산한 지 얼마 되진 않았지만 그 수많은 불광산의 비구니들이 모두 20년 이상 수행한 분들인데, 출가한 지 이제 겨우 2, 3년 되어 머리 위 계인戒印의 표시조차 마르지 않은 당신에게 남성이라고 정례를 하라니….’
무엇을 팔경법이라 하는지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에게 가르침을 줄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지금 총림학원의 원장이신 자혜 스님은 일본 유학을 한 적도 있는 우리 불광산에서 가장 어른 비구니십니다. 자용 스님은 보육원의 원장으로, 그대의 다섯 아이 모두 그대를 대신해 그분이 돌봐주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여기 와서 그들에게 감사해야 합니까, 아니면 그들에게 정례하라고 해야 합니까? 스스로 판단해 보십시오. 그 다음은 제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그는 듣자마자 부끄러워 얼굴조차 들지 못하고 말했습니다.


“죄송합니다. 저는 그분들이 저를 공경해야 한다는 뜻이 아니라, 다만 불교에는 팔경법이 있다는 것이 생각났을 뿐입니다.”
“팔경법은 누가 정한 것입니까? 부처님이 정한 것이라고 증명할 수 있는지요? 앞으로 팔경법을 말하지 마십시오. 스님은 인간 세상과 당신에게 도움을 주고 이로움을 주는 사람이라면 무조건 감사하고 그를 존중해야 합니다. 이것이야말로 스님이 해야 할 사람의 도리입니다. 게다가 공경은 타인이 스스로 우러나 우리를 공경해야 하는 것이지, 우리가 사람들에게 공경하라고 요구하는 것이 아닙니다.”


제 말을 들은 뒤 그가 자녀를 보러 불광산을 찾는 횟수가 줄어들었습니다. 저는 그의 덕행이 조금은 향상되었으리라 생각합니다.
관리하면서 이로움을 주어야 할 때에는 이로움을 주고, 이치를 깨우쳐야 한다면 이치를 이해하도록 해줘야 하며, 때로는 따끔한 일침을 가할 필요도 있습니다. 관리학 측면에서도 이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십수가十修歌


최근 제자들 모두 불광산 개산 50주년 기념행사에 대한 논의가 한창입니다. 과거 50주년 동안 저의 주장과 저의 의견에 따라 그들은 시키는 대로 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이제 나이가 들어 제자들에게 앞으로 50년은 너희들에게 맡기겠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므로 모두 앞으로의 관리 문제에 대해 수많은 상의와 토론을 했고, 저도 그들에게 과거 관리 경험을 통해 얻은 바를 들려주었습니다.
인아人我의 관계를 처리하는 것이 관리이고, 어떤 문제에 대한 저의 처리방식이 관리이며, 큰일은 작게 만들고 작은 일은 없던 것으로 만드는 것이 관리입니다. 차례가 있고 순서가 있고, 안락하고 즐거우며, 모두 함께 번영하는 것이 관리의 목표입니다.
미래의 관리를 이야기하자니, 저는 20년 전 어머니께서 타이완에 오셔서 저의 여성 제자들에게 자신의 「십수가十修歌」를 강연하시던 모습이 떠오릅니다.


“첫째 수행하니 시부모의 성냄을 받지 않아도 되고, 둘째 수행하니 남편의 미움을 받지 않아도 되고, 셋째 수행하니 음식 만드는 괴로움이 없고, 넷째 수행하니 가사일로 바쁘지 않아도 되고, 다섯째 수행하니 자녀를 낳지 않아도 되고, 여섯째 수행하니 방이 추울까 걱정하지 않아도 되고, 일곱째 수행하니 땔감과 식량이 오를까 걱정하지 않아도 되고, 여덟째 수행하니 동서지간에 미움 받지 않아도 되고, 아홉째 수행하니 대장부상大丈夫相을 이루게 되고, 열째 수행하니 선과善果와 공덕을 원만하게 닦게 된다.”


여자가 출가하는 것은 참 좋은 것이고, 불광산에 있는 것은 천당에 있는 것과 같다는 의미입니다.
어머니의 「십수가」는 여성이 수도하는 것은 아주 갸륵한 일임을 말하고 있습니다. 사실 사람은 몸을 수련하고 마음을 수련하고 모든 일을 닦고 점검하여, 세계가 함께 번영하고 공유해야 합니다. 그래서 저도 「십수가」를 한 수 지었습니다.


“첫째 다른 이와 시시콜콜 따지지 않는 수행을 하고, 둘째 서로 비교하지 않는 수행을 하며, 셋째 예의 있게 행동하는 수행을 하고, 넷째 사람을 만나면 미소 짓는 수행을 하며, 다섯째 사귐에 손해를 보더라도 신경 쓰지 않는 수행을 하고, 여섯째 후덕함을 갖추는 수행을 하며, 일곱째 마음에 번뇌를 없게 하는 수행을 하고, 여덟째 좋은 말을 입에 담는 수행을 하며, 아홉째 군자를 사귀는 수행을 하며, 열째 불도佛道를 이루는 수행을 한다.”


이 「십수가」는 가정·사회·단체·국가·전 국민이 서로 어울려 협력하는 규범으로 삼아도 되고, 이 가운데는 보살의 인성과 사상, 그리고 생활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만일 자아관리가 안 되고, 타인을 존중하는 아량이 없다면 이 사회는 평안하고 안전하기가 매우 어려울 것입니다. 저는 비교하고 따지며 논쟁하지 말라고 주장합니다. 계산하고 따지지 않는데 성내고 원망할 것이 무엇 있겠습니까? 서로 비교하지 않는데 해결 못 할 일이 무엇 있겠습니까? 친절하게 사람을 대하고, 웃는 얼굴로 사람을 대하면 어떤 문제도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고개를 한번 끄덕이고 예의를 갖춘 행동 하나로 자연스럽게 다툼이 없어지고 화목해질 것입니다. 약간의 손해를 입는 법도 배워야 합니다. 사실 손해를 보는 것이 이익을 얻는 것이기도 합니다.
타인에게 너그러이 대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과거에 저는 늘 “타인을 책망하는 마음으로 자신을 책망하고, 자신을 용서하는 마음으로 타인을 용서하라”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자신에게는 엄격하고 타인에게는 관대해야 합니다. 이러한데 타인과 나 사이에 무슨 문제가 또 있겠습니까? 관리해야 할 필요가 없으니 천하가 태평할 것입니다. 마음에 탐욕 성냄 어리석음 의심의 번뇌가 없고, 모두 서로를 칭찬하고, 좋은 말을 하고 타인에게 상처 주지 않으면 교류하는 사람 모두 진실한 군자입니다. 이렇게 하면 성현이 되고 불도를 성취할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저는 「십수가」 또한 현대 사회·현대 단체·지도자·간부 모두 다 같이 봉행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저는 「십수가」를 여기에 응용하여 또한 관리학의 조연助緣으로 삼을 수 있다고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