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규탁(연세대 철학과 교수)
1.
화엄경 속에서 선재동자가 구법 여행에서 거치는 단계를 이 방면의 학승들은 크게 여섯으로 나눈다. ①발심하기, ②마음먹기, ③실천이론 배우기, ④회향을 어떻게 하는지 배우기, ⑤수행의 지위 배우기, ⑥깨달음을 체험하기이다. 금년 1월호에서는 ③실천이론 배우기를 다루었다. 이번 2월은 ④회향을 어떻게 하는지를 소개할 차례이다. 10회향을 배우는 장면에서 선재동자가 만나는 선지식은 모두 열 명이다. 그 이름을 열거하면 다음과 같다. 22.육향장자(1.救護一切衆生離衆生相회향) 23.바시라선사(2.不壞회향) 24.무상승장자(3.等一切佛회향) 25.사자빈신비구니(4.至一切處회향) 26.바수밀다녀(5.無盡功德藏회향) 27.비슬지라거사(6.隨順堅固一切善根회향) 28.관자재보살(7.隨順一切衆生회향) 29.정취보살(8.眞如相회향) 30.대천신(9.無縛無着解脫회향) 31.안주신(10.等法界無量회향).
맨 앞의 숫자는 선재동자가 만난 선지식의 순번이고, 숫자 다음은 만난 선지식의 이름이다. 즉, <22. 육향장자>는 선재동자가 22번째로 육향장자를 만났다는 뜻이다. 반달 괄호 속에 있는 (1.救護一切衆生離衆生相회향)은, 10회향 중에 첫째이니 아라비아 숫자 <1>을 붙였고, 이 선지식과의 만남에서 얻은 수행의 내용이 ‘救護一切衆生離衆生相회향’이라는 뜻이다. 나머지 아홉 분의 선지식도 이에 준해 이해하면 된다. 참고로 회향回向과 원願의 차이에 대해서 말하면, ‘회향’은 수행한 실제의 내용을 남에게 돌려주는 것이고, ‘원’은 실제 수행은 아직 하지 못했지만, 그렇게 하겠다고 마음으로 다짐하는 것이다. 내용은 동일하다. 육향장자를 만나서 배운 ‘救護一切衆生離衆生相회향’을 예로 들면, 보살도를 실천하는 불자로서 모든 중생을 구호했으면서도 내가 중생을 구제했노라 하는 티를 내지 않는 회향이다.
2.
‘육향장자’는 향을 파는 상인이다. 향 파는 장자를 만난 선재동자는 다음과 같이 가르침을 청한다.
“거룩하신 이여, 저는 이미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내었고, 모든 부처님의 평등한 지혜를 구하려 하며, 모든 부처님의 한량없는 큰 서원을 만족하려 하며, 모든 부처님의 가장 높은 육신을 깨끗이 하려하며, 모든 부처님의 청정한 법의 몸을 뵈오려 하며, 모든 부처님의 광대한 지혜의 몸을 알고자 하며, 모든 보살의 행을 깨끗이 다스리려 하며, 모든 보살의 삼매를 밝히려 하며, 모든 보살의 다라니에 머물고자 하며, 모든 장애를 없애려 하며, 여러 시방세계에 다니려 하오나, 보살이 어떻게 보살의 행을 배우며 어떻게 보살의 도를 닦아서 온갖 지혜의 지혜를 내는지를 알지 못하나이다.”
청법의 내용을 단순화시켜 요약하면 이러저러한 내용을 제가 수행하려 하는데, 그 방법을 모르겠다는 것이다. 그러니 자비로 그 방법을 좀 알려 달라는 것이다. 위의 인용문에서 독자들은 주목할 게 있다. 수행자 본인의 원력(발원)이 먼저 있어야 한다. 무엇을 하겠다는 자신의 원함이 있어야, 그래야 원함을 성취할 방법을 찾게 된다. 구해야, 그래야 얻는 것이다. 그만큼 발원이 중요하다. 그리고 발원에 앞서 먼저 갖추어야 할 수행 목표가 분명해야 한다. 목표는 발심發心 즉, 깨달음을 획득하겠다는, 깨달음을 나도 체험하겠다는, 깨달음을 나도 실현하겠다는, 그런 마음을 내야 한다. 이것을 발보리심發菩提心이라 한다. 인용문에서 선재동자는 고백한다.
“저는 이미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내었습니다.”
이상을 다시 정리하면, <깨닫겠다는 마음 내기→원력 세우기→실천 방법 찾기>, 이렇게 된다.
3.
향파는 장자가 들려주는 수행의 내용을 보자. 당연하겠지만, 향 장사는 세상의 온갖 좋은 향과, 그 향의 효과와 기능을 잘 알고 있다. 그리하여 다양한 향을 소개한다. 그중에 하나만 독자님들에게 소개하면 인간계에 ‘상장象藏’이라고 불리는 향이 있다고 한다. 이 향은 신기한 효과가 많은데, 그중 하나만 소개하면 이 향기 맡으면 모든 병이 사라지고 근심도 사라지고 끝내는 불법을 깨치려는 마음도 생기게 된다는 것이다. 이렇게 온 세상의 다양한 향을 소개한다. 매우 신비한 향들이 많이 등장하는데, 과연 그런 향이 당시 인도에 있었는지는 모르겠다.
향 장사이니 향에 대해서 많이 알고 있을 수는 있겠다. 그런데 이 향 장사가 들려주는 다음의 이야기는 예사 법문이 아니다.
“선남자여, 나는 다만 향을 화합하는 법을 알거니와, 저 보살마하살들이 ①모든 나쁜 버릇을 여의어 세상 탐욕에 물들지 않으며, ②번뇌 마군의 오랏줄을 아주 끊고 여러 길[趣]에서 뛰어나며, ③지혜의 향으로 장엄하여 세간에서 물들지 않으며, ④집착이 없는 계율을 구족하게 성취하며, ⑤집착이 없는 지혜를 깨끗이 하고 집착이 없는 경계에 향하며, ⑥모든 곳에 애착이 없고 마음이 평등하여 집착도 없고 의지함도 없음이야, 내가 어떻게 그 묘한 행을 알며, 그 공덕을 말하며, 그 청정한 계율의 문을 나타내며, 그 허물없이 짓는 업을 보이며, 그 물들지 않는 몸과 뜻의 행을 말하겠는가.”
인용문의 내용을 분석하면, 첫 대목에서는 겸손을 드러낸다. 즉, 나는 향 장사꾼으로서 향에 대해서는 좀 알지만, 보살의 수행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보살행이 무엇인지를 나열한다. ①에서 ⑥까지의 보살행이 있는데, 나는 그걸 모른다는 것이다. 독자들께서는 ①에서 ⑥까지의 보살행 잘 음미해보시기 바란다. 이런 수행을 실천하는 이들이 보살이란다. ③ 하나만이라도 보자. 지혜의 향으로 제 몸을 치장해서 세간의 번뇌에 물들지 않게 한단다. 화엄경 구성작가는 향 파는 상인을 등장시켜 ‘진정한 향’이 무엇인가를 말해주고 있다.
4.
이렇게 향 장사를 만나 보살행을 배우고, 다음에는 뱃사공을 만나 보살행 배우는 장면이 소개된다. 역시 위에서 말한 <깨닫겠다는 마음 내기→원력 세우기→실천 방법 찾기>의 구조가 반복된다. 이런 마음을 밝히자, 뱃사공은 선재동자에게 이야기를 꺼낸다. 뱃사공이 무슨 일을 하는 사람인 줄은 독자들도 이미 알고 있을 것이다. 바다에서 중생을 구제하는 일을 하는 사람이다.
육지에서도, 바다 가운데에서도, 어디에서나 중생을 구제하지만 본 연재에서는 육지에서 하는 중생 구제 장면을 인용하기로 한다.
“선남자여, 나는 염부제에 있는 빈궁한 중생들을 보고 그들을 이익케 하려고 보살의 행을 닦으며, 그들의 소원을 모두 만족하게 하는데, ①먼저 세상 물건을 주어 마음을 채우고, ②다시 법의 재물을 보시하여 환희케 하며, 복덕의 행을 닦게 하고 지혜를 내게 하고, 선근의 힘을 늘게 하고 보리심을 일으키게 하고, 보리의 원을 깨끗하게 하고 크게 가엾이 여기는 마음을 견고케 하고, 생사를 없애는 도를 닦게 하고 생사를 싫어하지 않는 행을 내게 하고, 모든 중생 바다를 거둬 주게 하고 모든 공덕 바다를 닦게 하고, 모든 법 바다를 비추게 하고 모든 부처 바다를 보게 하고, 온갖 지혜의 지혜 바다에 들어가게 하노라.”
위에서 필자는 번호 ①과 ②를 붙였다. ①은 재물 보시이고, ②는 법[가르침] 보시이다. ②법보시에 대해서는 설명이 자세하다. 법보시를 실천하여 중생에게 1)환희하게 하며, 2)복덕의 행을 닦게 하고, 3)지혜를 내게 하고, 4)선근의 힘을 늘게 하고, 5)보리심을 일으키게 하고, 6)보리의 원을 깨끗케 하고, 7)크게 가엾이 여기는 마음을 견고케 하고, 8)생사를 없애는 도를 닦게 하고, 9)생사를 싫어하지 않는 행을 내게 하고, 10)모든 중생 바다를 거둬 주게 하고, 11)모든 공덕 바다를 닦게 하고, 12)모든 법 바다를 비추게 하고, 13)모든 부처 바다를 보게 하고, 14)온갖 지혜의 지혜 바다에 들어가게 한다는 것이다.
5.
이렇게, 향 장수와 뱃사공에 이어, 무상승 장자, 사자빈신 비구니, 바수밀다 여인, 비슬지라 거사, 관자재보살, 정취보살, 천신, 안주신 등을 차례로 만난다. 많은 이야기가 있지만, 많이 알려진 관세음보살 만나는 장면을 소개하기로 한다. 비슬지라 거사는 관세음보살을 이렇게 소개한다.
“남자여, 여기서 남으로 가면 보달락가補怛洛迦산이 있고, 거기 보살이 있으니 이름의 관자재觀自在니라. 그대는 그에게 가서 보살이 어떻게 보살의 행을 배우며 보살의 도를 닦느냐고 물으라.”
이 말을 듣고 선재동자는 관세음보살 만나 아래의 설법을 듣는다.
“선남자여, 나는 이 크게 가엾이 여기는 행의 문에 머물렀으므로 모든 여래의 처소에 항상 있으며 모든 중생의 앞에 항상 나타나서, ①보시로써 중생을 거두어 주기도 하고, ②사랑하는 말로써 하기도 하고, ③이롭게 하는 행으로써 하기도 하고, ④같이 일함으로써 중생을 거두어 주기도 하며, ⑤육신을 나투어 중생을 거둬 주기도 하고, ⑥가지가지 불가사의한 빛과 깨끗한 광명을 나타내어 중생을 거둬 주기도 하며, ⑦음성으로써 하기도 하고, ⑧위의로써 하기도 하며, ⑨법을 말하기도 하고, ⑩신통 변화를 나타내기도 하며, ⑪그의 마음을 깨닫게 하여 성숙하게 하기도 하고, ⑫같은 형상으로 변화하여 함께 있으면서 성숙케 하기도 하노라.”
독자님들은 이 인용문을 보면, 우리가 왜 절에 가서 ‘관세음보살’을 부르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운허 스님께서 『한글대장경』에 이 내용을 번역해 놓으셨으니, 찬찬히 잘 읽으면 그 뜻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관자재보살처럼 보살행을 하라고 선재동자에게 가르치고 있다. 그러니 우리도 그렇게 해야 할 것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