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0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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텃밭농부의 음식 단상

정성운
텃밭농부


딸기의 유혹과 추억
딸기의 유혹은 강렬하다. 윤기 나는 빨간색, 코끝을 간지르는 달달한 향. 생김새와 향기만으로도 식욕을 부른다. 입 안에서 터지는 과즙의 상큼함에 이르면 기분마저 좋아진다. 최근에는 우리나라에서 생산되는 딸기가 동남아시아로 수출되어 그곳 사람들의 입맛을 사로잡고 있다고 한다.
나도 딸기를 좋아했다. 그러나 나는 지금 딸기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딸기농장에서의 짧은 경험 때문이다. 5년 전 실업급여를 받는 동안 구직활동 대신 농촌봉사활동을 했다. 딸기농장도 그 중의 하나였다. 딸기 농사는 거의 비닐하우스 등 난방을 갖춘 시설에서 재배하는데 9월부터 시작된다. 이때 밭을 만들어 모종을 심으면 12월 초부터 출하할 수 있다. 다음해 3월 말 마무리한다. 딸기는 원래 5월이 제철이었는데, 요즘은 비닐하우스와 같은 시설재배를 하면서 겨울을 대표하는 과일이 되었다.
내가 봉사활동을 했던 곳은 수원 외곽에 있는 초보농부의 농장이었다. 익은 딸기를 수확해 포장하고, 꽃을 따내고, 곁줄기를 잘라내는 일이었다. 40대 후반의 농장주는 비닐하우스 3동을 임대해 그해 첫 농사로 딸기를 재배하고 있었다. 농업기술센터와 딸기 선진농가인 논산의 농가에서 교육도 받았다. 이듬해에는 규모를 더 늘린다는 계획도 가지고 있었다. 농부가 되겠다는 고3의 큰딸이 농장에 나와 아버지를 돕기도 했으며, 아버지는 그런 딸을 무척 자랑스러워했다.
어느 날 아침에 농장으로 출근해보니 퀭한 눈으로 나를 맞이했다. 비닐하우스 안이 서늘했다. 밤새 한숨도 못 잤다고 했다. 연탄보일러가 고장 난 것이다. 추위에 덜덜 떨면서 보일러와 씨름했던 것이다. 당장 고치지 않으면 농사를 망친다. 응급조치는 해놓았지만 언제 또 고장 날지 모르겠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초보농부의 첫 농사는 힘겨웠다. 어느 날은 빨개야 할 딸기가 하얗다. 여기 저기 전화해 보더니 무슨 바이러스 때문이라고 한다. 하얀 딸기는 단맛이 없었다. 어느 날은 습도 조절을 잘못해 곰팡이가 쫙 번졌다. 어느 날은 둘이서 찢긴 비닐을 떼우느라 테이프 붙이기를 했는데, 영하의 찬바람에 손가락이 떨어져 나가는듯한 통증을 견뎌야 했다.  
그의 첫해 농사는 폭망이었다. 경제적인 손실이 적지 않았다. 무엇보다 딸기 농부의 꿈을 수정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에 처했으니, 옆에서 지켜본 내 마음도 아팠다. 딸은 지금도 농부의 꿈을 꾸고 있을까. 딸기를 보면 그 초보농부와 허연 딸기, 그 겨울 매서웠던 추위의 고통이 생생해진다. 이런 경험을 한지 꽤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아직도 딸기는 나를 유혹하지 못한다.
우리는 농산물이 어떤 경로와 손길을 거쳐 식탁에 오르는지 잘 모른다. 아마 알게 된다면 내가 딸기를 싫어하는 것과 같은 증상을 앓을 수도 있다.


“우리집 요리는 슴슴해요”
누구나 음식에 대한 추억을 가지고 있다. 음식은 모르핀이나 헤로인보다 중독성이 강하다고 한다. 그런 만큼 그 보따리가 클 것이며, 지인들이 모여 보따리를 풀어놓으면 큰 잔치를 벌이는 것과 같을 것이다.
먹는 것과 관련해 떠오르는 일이 또 있다. 그때는 몰랐는데, 요즘 그이의 말에 크게 공감한다.
탤런트 이정섭 씨가 한때 서울 재동 헌법재판소 옆에서 한정식 식당을 운영했다. 상호는 ‘종가집’이었다. 그이는 여성스런 목소리와 섬세한 몸짓의 독특한 캐릭터로 인기를 끌었다. 어떤 연유였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데, 그 식당에 초대받아 저녁을 먹었다. 그이는 식탁 맞은편에 앉아 요리가 나올 때마다 재료의 특성과 조리법에 대해 꽤 자세히 설명했다. 요리에 대한 자부심이 크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그때 나는 요리에 대한 관심이 크지 않았고, 그이가 자랑하는 만큼 맛이 있지도 않았다. 식사 중이어서 그이의 설명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아마 건성으로 반응했을 것이다. 그래도 또렷하게 기억나는 한마디가 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집 요리는 슴슴해요.” 그이는 서울요리의 특징을 그렇게 표현했던 것이다.
슴슴하다는 그이의 맛 표현이 불쑥 떠오르는 건 근래의 일이다. 내 손으로 농사지은 것들로 음식을 만들어 먹고서야 그 맛을 알게 되었다. 음식의 재료는 각기의 독특한 맛이 있다. 배추는 배추만의 맛이 있는데, 어릴 적 먹었던 배추뿌리에 담긴 매운 맛이 그것이다. 상추는 쌉싸름하다. 무는 알싸하게 맵다. 시금치는 달큰한 속에 쌉쌀한 맛이 스며있다. 비료를 준 것들에서는 그런 맛이 느껴지지 않거나 아주 약하다. 이정섭 씨는 그날 나에게 건강한 재료, 최소한의 양념과 조리과정을 얘기했던 것이다. 자신의 요리 철학을 여성스러운 어조로 설명했던 것이다. 그때 일이 떠오른 건 내가 이제야 음식의 맛을 알게 되었다는 의미다. 
국어사전에서는 ‘슴슴하다’를 ‘심심하다’의 사투리라고 설명하고 있는데, 맛 표현에서 만큼은 슴슴하다는 심심하다와는 거리가 한참 멀다. “음식 재료 본연의 맛이 느껴지는 건강한 맛” 쯤으로 풀이해야 옳다.
그렇다고 하여 양념의 맛이 강하게 느껴지는 음식을 아래에 둘 일은 아니다. 양념을 많이 쓰는 것은 지역적인 특색일 뿐이다. 세상에 좋은 음식과 나쁜 음식의 구별은 재료와 양념에 있지 않다. 예로, 전라도 김치는 그 지역에서 생산되는 해산물을 이용한다. 아울러 논밭이 넓기에 거기서 나온 채소와 양념을 듬뿍 넣는다. 여러 양념이 어우러지며 내는 풍성한 맛이 있다.


초가공식품과 오관게
세상에는 경계해야 할 음식이 있다. 좋은 음식과 그렇지 못한 음식을 구분하는 여러 방법이 있는데, 음식 재료의 가공 정도에 따른 분류법을 참고할 만하다. 이 분류에서 ‘초가공’에 해당하는 것을 멀리해야 하는 것이다. 대체로 식재료의 가공 정도를 네 그룹으로 나눈다. 1그룹은 미가공 및 최소 가공된 식재료다. 과일이 해당한다. 2그룹은 손질된 식재료, 3그룹은 영양가 및 신선도 유지를 위해 가공된 식재료. 3그룹까지를 건강한 식품이라 할 수 있다. 4그룹이 문제가 되는 초가공식품인데, 기본적인 양념 외에 맛과 질감을 높이기 위한 첨가물을 넣은 음식이다. 쉽게 말해, 집에서 음식을 만들 때 넣지 않는 재료, 즉 착색제, 감미료, 질감을 변화시키는 유연제 및 경화제, 보존기간을 늘리는 방부제가 포함되어 있다.
초가공식품은 당류·지방·염분·에너지 밀도가 높고 식이섬유·단백질·미네랄·비타민 함량은 낮다. 가당음료·탄산음료·스낵과 쿠키·초콜릿·사탕·빵과 케이크·아침 식사용 시리얼·다양한 종류의 인스턴트식품 등이다. 사먹는 간식꺼리들이 거의 초가공식품인데, 우리들은 이 음식들에 포위되어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한국인의 하루 섭취 열량의 26.2%를 초가공식품에 의존하고 있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특히 젊은이들이 초가공식품을 많이 먹는다고 한다.
불교에서는 음식에 대해 매우 엄격한 가르침을 전하고 있다. 특히 수행자들을 향해서는 맛에 탐닉하지 말 것이며, 때 아니게 먹지 말며, 적게 먹으라고 했다. 불교의 음식관을 압축적으로 표현한 것이 오관게五觀偈다. 이 식사가 있기까지 많은 이들의 노고가 있었음을 생각하며, 도업道業을 성취하기 위하여 이 공양을 받는 것임을 알아차린다는 내용이다. 음식을 먹는 것은 오로지 수행을 위한 마음과 몸의 조건을 만드는 데 있음을 알 수 있다. 아울러 현대사회의 환경·생태 위기 극복을 위한 실천윤리로서도 탁월한 가르침이다. 음식이 넘쳐나서 문제가 되기도 하는 이 시기에 한번쯤 새겨봤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