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03월호

    다시듣는 큰스님 법문
    이달의 법문
    화보
    특집 생명존엄의 정신을 되살리자1
    특집 생명존엄의 정신을 되살리자2
    특집 생명존엄의 정신을 되살리자3
    생활세계와 불교
    취재현장에서 본 불교
    절문밖 풍경소리
    인간 붓다 기행
    붓다 컬럼
    금강계단
    지상법문
    불화의 세계
    차이야기
    건강한 생활
    입시광장

과월호보기

싯다르타의 고민과 출가의 목적

- 탄생에서 출가까지 -

하춘생
동국대 불교학과 박사수료

석가모니 부처님의‘출가일’(음력 2월 8일)과 ‘열반일’(음력 2월 15일)이 들어있는 3월은 불자들에게 매우 뜻 깊은 시기다. 지향과 목표라 는 동일선상의 개념이라 할 수 있는 출가의 본분과 열반의 의미를 되새겨 정진의 끈을 바짝 조르게 될 터이니 말이다. ‘부처님오신날’(음력 4월 8일)이 있는 꽃피는 5월에는 대대적인 연등행사가 불자는 물론 뭇 대중의 환희심을 유발할 것이니 이 또한 기뻐하지 않을 수 없다. 여기에 출가이후 6년간 극한적인 살육(殺肉)의 고행 끝에 보리수 아래에 앉아 마침내 무상정등정각(無上正等正覺)을 이루니 붓다가 된 날‘성도일’ (음력 12월 8일)의 법열을 잊을 수 없다.

이른바 불교의 4대 명절에 대한 단상이다. 이는 석가모니 부처님의 생애를 가장 간결하게 보여주고 있는 파노라마(panorama)다. 이 파노라마의 극적인 장면은 그의 생애에서 나타나고 있는 의미 있는 호칭‘싯다르타(Siddhartha)’와‘붓다(Buddha)’라 할 수 있다.
싯다르타와 붓다, 이는 2천6백년 불교역사상 불자들에게 가장 낯익은 호칭이다. 우리는 흔히 석가모니 부처님의 출가이전 태자시절의 이름으로‘싯다르타’를 기억한다. 또 다른 이름의 ‘붓다’는 위없는 정등정각자(正等正覺者)로서 출가이후 깨달음을 이룬 싯다르타의 대명사다.

그렇다면 태자시절의 싯다르타는 우리에게 어떤 존재이며, 정등정각자 붓다는 현대에 사는 우리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오는가. 이미 자신에게 주어진 호강과 권력을 놓아버리고‘무소유’의 출가의 길로 나섰던 싯다르타, 그로 하여금 출가를 선택하게 한 고민과 기필코 이루고자 했던 꿈은 무엇이었는가. 고행의 마지막 7일간의 선정을 통해 마침내 깨달음을 얻고 붓다로 새롭게 태어났으나 그에게 또다시 주어진 고민과 망설임은 과연 무엇이었는가.

본고는 출가이전 싯다르타의 고민과 성도직후 붓다로서의 고민이 무엇이었는지를 살펴 신격화 된 존재로서가 아닌‘인간 붓다’에 주목하고자 한다. 육신의 쇠함으로 입멸할 당시의 인간적인 모습도‘인간 붓다’의 연장선에서 이해할 수 있다.

늙고 병들고 죽는 것에 대한 고뇌
싯다르타는 기원전 6세기 경 북인도 석가족의 하나인 까삘라국에서 태어났다. 태어난 곳은 룸비니동산이고, 아버지는 슛도다나 왕이었으며, 어머니는 마야 왕비였다. 태어난 지 7일 만에 어머니 마야왕비가 돌아가시자 이모 마하빠자빠띠 고따미가 그를 양육했다. 싯다르타는 당시 까삘라국의 관습에 따라 어린 16세의 나이에 야쇼다라 공주와 결혼하여 라훌라(Rahula)라는 아들을 두었다. 나이 29세 되던 해 라훌라가 태어나던 날, 마침내 왕궁을 떠나 출가의 길로 들어섰다.

출가이전 싯다르타의 왕궁생활은 지극히 편안하고 유복했다. 아버지 슛도다나 왕은 그에게‘필요한 모든 것’을 제공했다. 장차 왕위계승자로서 어린 시절을 유복하게 살았던 싯다르타로 하여금 급기야 출가를 결심하게 한 원인은 무엇이었을까.
이른바 파란 연꽃..빨간 연꽃..하얀 연꽃이 피어나는 연못의 궁전에 살고 오직 까시(지금의 인도 바라나시)지방에서 만든 가장 고급스러운 전단향만을 몸에 바를 정도로 남부럽지 않은 삶을 살았던 싯다르타. 그 이름마저도“모든 일이 뜻대로 이뤄진다”는 의미를 담고 있을 만큼 모든 욕망을 충족할 수 있었음에도 그는 왜 출가를 단행해야만 했을까.

학계는 대체로 싯다르타의 타고난 성품에서 그 원인을 찾고 있다. 어린 시절부터 내적 자유를 갈망하며“모든 존재는 변할 수밖에 없다”는“만물의 무상함”에 대한 내적체험(內證)과 사회..문화 적인 여러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출가에 영향을 끼 쳤다고 보는 것이다. 당시 인도중원의 16대국 가운데 하나인 꼬쌀라국의 속국이었던 모국 까삘라국의 미래가 불투명하여 출가를 결행했다는 정치적 해석이 없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붓다가 된 이후 제자들에게 술회한 고백에 따르면 싯다르타의 출가는 이유가 있었고 목적 또한 분명했다. 그것은“병듦이 없고 늙음이 없고 죽음이 없고 근심 걱정 번뇌가 없는 위없는 안온한 열반을 얻고자 함”이었다( 『중아함』권56, 204 「라마경」). 그가 제자들을 향해“이 세상에 만약 늙고 병들고 죽는, 이 세 가지가 없었다면 여래는 출현하지 않았을 것”『( 잡아함』권14, 346)이라고 밝힌 것도 그 때문이었다.

생..노..병..사 등을 의미하는 이 같은 문제는 싯다르타가 부인과 갓 태어난 아들에게 무언의 작별을 고하고 까삘라성을 빠져나와 출가의 길로 접어든 직접적인 원인, 즉 동남서북의 성 밖을 돌며 각각 노인..병자..죽은 사람..사문 등을 보게 되면서 인생의 고통과 기쁨을 통감했던 동일선상에서 이해할 수 있다. 이러한 사문출유(四門出遊)의 경험은 곧 연기(緣起)의 이치를 말한다. 이로 보아 싯다르타는 태자시절부터 연기에 관하여 깊이 통찰하고 있었던 사실을 알 수 있다. 연기의 통찰은 만물의 무상함과 주관의 덧없음을 깊이 느낀다는 말과 다름 아니다.

덧없는 향락과 탐욕의 지양을 위하여
싯다르타가 내적 자유를 갈구하며 고민에 빠지게 되는 시절인연은 나이 7세쯤 되던 해 봄에 부왕을 따라나선 농경제(農耕祭)였다. 싯다르타는 농부가 밭을 가는 흙덩이 속에서 꿈틀거리는 벌레를 새가 순식간에 쪼아 물고 날아가는 장면을 보고 깜짝 놀랐다. “살아있는 것들은 저렇게 서로 먹고 먹히는구나”라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해가 저무는 줄도 모르고 나무 아래에 앉아 깊은 사색에 잠겼는데, 불전은 이를“염부수 아래의 정관
(靜觀)”이라고 정리하고 있다. 이때부터 싯다르타는 사색하는 버릇이 생겼고 항상 상념에 젖은 얼굴이었다.

어릴 적부터 경험한 싯다르타의 이 같은 내적체험은 출가이후 모든 욕구와 덧없는 향락의 욕망들을 제어하는데 적잖은 도움을 주었다. 인간의 기쁨과 행복은 향락을 통해 느끼기도 하지만 세상은 덧없고 슬프며 늘 변화에 굴복할 수밖에 없기에‘늙고 병들고 죽고 근심번뇌가 끊이지 않는 세상’의 탐욕을 지배하고 지양하는 것이야말로 궁극적으로 추구해야 할 최상의 행복이라는 사실을 여실히 깨닫게 해주었던 것이다. 싯다르타가 고민 끝에 결행한 출가의 현대적 목적이요 교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