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영
시인

서울 수락산에 가면‘목마른 짐승 바위’ 가 있다. 어느 고명한 풍수학자가 명명 해놓은 바위다. 노원골 계곡에 고개를 처박은 채 타는 갈증을 적시기 위해 안간힘을 쏟고 있는 그 바위의 형상은 기갈난 짐승의 모습을
그대로 쏙 빼닮았다.
물과 바위 주둥이와의 거리는 불과 30㎝밖 에 떨어져 있지 않다. 그러나 그 거리는 좁혀지기에는 너무 멀다. 우람한 그 바위덩어리가 계곡으로 굴러 떨어지지 않는 한 그 거리는 영원히 좁혀질 수 없는 우주적 거리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럴까. 영원히 좁혀지지 않을 그 30㎝의 우주적 거리 앞에서 목마름에 떨고 있는 짐승을 보고 있으면 나도 모르게 연민이 솟구친다. 때로는 눈시울이 뜨거워지고 오목 가슴이 먹먹해진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다. 그‘목마른 짐승 바위’를 볼 때마다 기갈난 그 짐승의 모습 위로 ‘용산 참사’가 겹쳐 떠오르는 것은. 죽음의 기갈을 해소하기 위해 바로 코앞의 물을 마시려다가 끝내는 죽음의 기갈 속으로 가라앉고 만‘용산 철거민’들의 모습이 짐승의 모습으로 겹쳐 옴은.
용산 참사는 누가 뭐래도 죽음의 불인 줄 뻔히 알면서도 불나방처럼 현란하게 돌진하던 21C형‘난쏘공(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공)’의 모습이었다. 그리고 그 누구의 잘잘못을 떠나 여섯 명(철거민 5명, 진압경찰특공대 원 1명)의 고귀한 생명을 앗아간 것은 우리 사회의 난장이들을 다시 한 번 절망하고 분노하게 만든 사건이었다. 그리하여 그 난장이들이 다시 한 번‘벽돌 공장 굴뚝’에 올라 종이비행기 대신 스스로의 몸을 던져버리게 한 사건이었다.

그래서‘난쏘공’의 작가 조세희씨는 용산 참사가 터지자마자 제일 먼저 외치고 나섰다.
“이렇게 비인간적인 방법으로 동족을 괴롭혀 선진국이 된 예는 인류 역사상 단 한 번도 없었다. 희생자 중에 형제나 친구가 있었으면, 이명박 대통령의 잠자리가 편했을까.”라고.
굴뚝과 골리앗 크레인과 건물 옥상의 망루 등은 지상에서 추방된 자들의 분노가 추녀 물처럼 마지막으로 내몰리는 장소다. 그리하여 땅거미처럼 죽음의 그림자를 길게 만들어내는 곳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그들을 그 주검의 공간까지 내몰았을까. 어떤 거인들이 용산 철거민들을 망루 위의 난장이들이 되게 했을까. 추녀 물이 되게 했을까. 그리하여 종이비행기를 날리는 대신 스스로의 몸을 종이비행기처럼 날리게 했을까.

정치문외한이고 사회무능력자인 나는 그 역학관계를 잘 알지 못한다. 다만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가련한 밥벌이 인생으로서 같은 방법의 삶을 살고 있는 그 난장이들의 모습에서 나는 수락산 노원골 계곡의 그 기갈난 짐승 바위의 모습을 보았을 뿐이다. 불과 30㎝ 눈앞에 맛있는 물을 두고도 산과 계곡이라는 구조적 불평등의 높이에 묶여 물을 마시지 못하는‘목마른 짐승 바위’의 갈증을 함께 느꼈을 뿐이다. 캐나다를 다섯 번이나 살 수 있고, 소득 대비 주택 가격이 세계 최고 수준인 부동산 천국 코리아에서 집 한 채 없이 살아가야 하는 난장이들의 비애와 울혈에 함께 가슴을 옹크렸을 뿐이다.

그러면서 나는 엉뚱한 상상을 해보았다. 용산 참사를 만약 예수가 보았다면 뭐라고 말했을까. 석가모니 부처가 보았다면 뭐라고 말했을까. 공자와 마호메트가 보았다면 뭐라고 강론했을까.
어느 분이 말씀하셨건 그 강(講)과 론(論)과 계(誡)와 변(辯)은 비슷했으리라는 생각이다. 그리고 한없는 연민으로 눈시울을 적셨으리라는 생각이다. 이럴 때 내가 허허실실의 약수로 자주 마시는 물이 있다. 그것은 바로『숫타니파타』다. 숫타니파타‘파멸’의 장에 보면 다음과 같은 허허실실의 약수가 있다.

나는‘돌아온 그 난쏘공’들이 파멸로 가는 무리인지, 아니면 현자와 성자의 길로 가는 난장이들인지 잘 모른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아직도 우리 사회에‘벽돌 공장 굴뚝’에 올라가 종이비행기 대신 자기 몸을 날리며 죽음이라는 파멸의 문으로 들어가는 난장이들이 많다는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