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0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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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전지공예(全紙工藝)

김지상
화광전통미술연구소, 중국국가박물관수복연구원

일상생활에 없어서는 안 되는 것 중의 하나가 종이일 것이다.
종이는 AD105년 중국 후한(後漢)시대에 채륜(蔡倫)에 의해 처음 발명되었다. 그는 나무껍질·마·넝 마·헌 어망 등을 원료로 하여 종이를 초조하는 방법을 발견하였다. 그 이전에는 사람이 무엇을 기록하는 재료로서 돌·금
속·찰흙 외에 동물의 가죽이나 뼈, 나무껍 질·나무·대나무 등을 이용하였다. 이러한 기록을 위하여 쓰인 재료들 중에서 오늘날 종이에 가장 가까운 것은 이집트의 파피루스 (papyrus)였다.

채륜이 발명한 제지술은 나무껍질·마설· 넝마 등을 돌 절구통에 짓이겨 물을 이용하여 종이를 초조하는 원리였는데, 이것은 현대의 초지법(抄紙法)과 비슷하다. 당시는 역사적으로 한(漢)나라가 재건된 후 50여 년이 지났기 때문에 통일왕조로서 기초가 다져진 때였으므로, 정치적·문화적 필요에 따라 기록을 위한 재료가 많이 쓰이고 있었다. 중국에는 그 이전부터 풀솜 찌꺼기를 이용하여 기록하는 재료를 제조하는 기술이 전해져 내려오고 있었기 때문에, 채륜은 기술의 발명자라기보다는 완성자 또는 개량자라고 할 수 있다.

중국인에 의하여 발명·개발·완성된 제지술은 8세기에 중앙아시아를 거쳐 유럽으로 전해져 발달을 거듭하였다.
중국의 인쇄술은 거듭 발전하여 왔지만 1340년 목판에 의한 색 인쇄술이 개발되고 나서는 더 이상의 진전이 없었다. 또한 제지술도 송(宋)대에 이르러 고급 종이에 인물이나 꽃 모양을 인쇄한 비실용적인 납전(蠟箋)이 당시의 일부 상류계급에서 귀하게 다루어졌을뿐, 괄목할 만한 발전이 없이 정체하고 말았다.

그러나 중국인에 의하여 발명·개발·완성된 제지술은 8세기에 중앙아시아를 거쳐 유럽으로 전해지면서 발달을 거듭하였다.
한편 우리나라에 제지술이 도입된 시기에 대해서는 몇 가지 설이 있지만 공식적으로는 600년으로 기록되고 있다. 그러나 이보다 1,000년 정도 앞선 낙랑(樂浪)의 옛 분묘에서 발굴된 옻칠을 한 관 속에서 닥종이를 물로 뭉친 것 같은 물질이 발견됨으로써 중국에서 제지술을 도입하기 이전부터 우리나라 특유의 제지술이 있지 않았나 하는 추측을 할 수 있다.

그러나 고구려의 스님인 담징(曇徵)이 625년경에 일본에 제지술을 전파한 것만은 확실하다.
삼국시대에 제지업이 크게 번성하였던 것으로 추정하는데 그에 대한 근거는 남아 있지 않다.
당시의 고분은 구조상의 결함으로 인하여 섬유질의 보존이 불가능했으며, 따라서 종이와 흡사한 것은 아직 발견되지 않았다. 그러나 불교에서 신라시대에 제조된 범한다라니경(梵漢陀羅尼經) 한 장이 현존하는데, 이것이 한국에서 생산된 종이로서 가장 오래된 것이다.

한국은 1892년(고종 29년)경 기계에 의한 제지술을 일본으로부터 도입하였으며, 그 결과 한지의 생산량은 점차 감소하기 시작하였다.
지금은 전북 전주 지방을 중심으로 소규모로 생산되고 있으며, 주로 공예적 용도에 사용되고 있다.
예술보다 생활의 개념에 더 가까운 한국의 종이는 화려하진 않지만 가장 한국적인 아름다움이 담겨있다.
백번의 손길과 정교한 공정으로 소박하면서도 은은한 색을 내는 한지. 옻칠을 입고 다시 태어난 한지예술의 백미인‘지승공예’. 양반가문의 부녀자들에게 계승 되어온 지승공예는 생활용품으로 2천년 동안 보존이 가능한데, 놀라운 것은 서적이나 창호지의 재활용으로 만들어 진다는 것이다.

중국에도 대표적인 종이공예로‘찌옌쯔(全紙工藝)’가 있다. 오랜 역사가 흐른 지금도 전통 방식을 고수하며 종이 한장 한장 장인정신으로 완성해나가는 것이 찌옌쯔이다. 중국은 한중일 삼국 중에서 가장 먼저 종이 공예인‘찌엔쯔’ 라는 특별한 문화를 만들어 냈는데 칼이나 가위로 종이를 오려서 문양을 만드는 민간예술 찌엔쯔는 그 정교함으로 인해 보는 이로 하여금 탄성을 자아낸다.

우리나라로 말하자면 한지공예 즉 전지공예를 뜻한다.
북경의 공예촌 거리에 가보면 이러한 전지 공예품들을 많이 볼 수 있다.
전지 공예의 특징은 남방과 북방이 확연한 차이를 들어낸다. 남방은 가느다란 선묘위주의 전지 공예이고 북방은 이러한 선묘위에 색을 입히는 과정이 첨가 된다.
허베이성에 찌옌쯔의 장인이 있다. 3대에 걸쳐서 찌옌쯔를 연구하고 작품으로 만들어 내고 있다.
작품을 오려내는 솜씨가 아주 정교하다. 또한 한정이 된 문양에서 벗어나 요즘에 맞는 문양으로도 재탄생이 되고 있다. 대를 이어서 그에 자식에게도 전승이 되어 같은 일을 하고 있다. 처음에 찌옌쯔를 보았을 때는 놀라움으로 다가왔다. 필자가 우리 나라에서 봤던 한지공예와는 확연히 차이가 났기 때문이다. 단순한 문양에서 벗어나 정교함과 세밀함에 놀라고는 했다. 우리나라에서는 전지공예의 맥이 잠깐 끊어졌었다. 이를 다시 복원하고자 많은 사람들이 노력을 한 결과로 지금은 수준급에 수준에 올라오고 있는 것 같다.
중국에 찌옌쯔와 우리나라 전지공예의 차이점은 색감에 있을 것이다.

앞서 언급 한 것처럼 중국은 오려낸 문양위에 색칠을 하기도 하고 우리나라는 오려낸 문양 밑에 색지의 한지를 오려서 붙여나가는 과정이 큰 차이점 일 것이다. 또한 우리나라는 실생활에 한지를 이용 하여 생활용품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오색 색실함. 종이를 걸어두는 고비. 종이를 꼬아서 만든 지승공예 등등이 셀 수도 없이 많다는 점이다.
찌옌쯔의 장인은 말을 한다. 그에 아버지에 아버지가 그랬듯이 전통을 보존하고 계승하는 것에 무안한 자부심을 갖는다고 한다. 그에 스승들 또한 맥이 끊어 졌던 찌옌쯔를 오랜 연구와 노력을 통해 서 복원을 해냈다.
지금은 양장제지의 발달로 우리에 한지가 설수 있는 자리가 점점 좁아지고 있다.
몇몇 뜻있는 사람들로 하여금 옛 한지의 복원과 한지의 멋스러움을 알리려는 움직임들이 있고는 한다. 이러한 움직임이 잠시 잠깐으로 끝나지 말고 지속적인 연구와 관심이 필요할 때이다.
너무나 가까이 있었기에 잠시 잊어버린 종이가 한지가 아닌가 한다.
가까이에 다가올 때 한지에 부드러움과 따뜻함을 느껴보는 것은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한국 종이는 자연의 생명력과 질박한 생활 문화가 배어 있는 한국인의 자부심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