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규탁
연세대 철학과 교수
1.
사람이라면 꼭 읽어야 할 책이라는 뜻에서 고정란의 제목을 <꼭 읽어야 할 『화엄경』>이라고 달았다. 봉선사의 운허(1892-1980) 강백께서 1966년 유려한 한글 솜씨로 번역서를 내었다. 이 책 읽기를 권한다. 문단 나누기와 구문의 번역과 어휘의 선택에 좋은 표본이 된다.
지난 2월호에서는 ‘『화엄경』이 설해진 이유’를, 화엄종 제4조로 훗날 추앙되는 청량 징관(738-839) 국사의 <현담>을 활용해서 간단하게 소개했다. 이번 3월호도 역시 <현담>을 활용하여, 『화엄경』의 위상을, ‘외형에 따라 분류할 경우’와 ‘교상敎相에 따라 분류할 경우’로 나누는 전통교학의 입장에서 소개하겠다. 독자들께서는 어렵겠지만 이런 고비를 넘겨야 경전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
고비 넘김에는 반드시 바른 스승의 안목을 빌어야 한다. 전통적으로 임진왜란 이후 조선의 강원에서는 청량-규봉으로 이어지는 화엄종장들의 경안經眼에 힘입었다. 90을 넘기신 봉선사의 월운이 그렇고, 그의 스승 운허가 그렇고, 그의 스승 구암사 사문 석전이 그렇다. 역시 석전의 스승 선암사 대승암 경운도 그렇다. 그 위로 올라가면서 함명, 침명, 설파, 백파가 그렇다. 이 분들은 경상經床을 마주하고 스승 밑에 책을 폈던 분들이다.
‘경학經學’에서는 ‘사법師法’이 절대 중요하다. ‘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해야 한다. 요즈음 선사들 경 읽듯 해서는 결코 여래의 진실한 뜻에는 어림없다.
반드시 스승에 의지해야 한다. <치문>에 <고소 경덕사 법운 법사 무학 십문 병서>라는 글이 실려 있다. 수행에 긴요한 열 가지 지침 가운데, “불택사不擇師이면 무이법無以法이니라”는 조항이 있다. 스승 없이는 본받을 수 없다는 뜻이다. 사례로 도안과 그의 스승 불도징과의 만남을 소개하고 있다. 출가 독서인들은 기억할 것이다. “不遇.眼(불우청안)이었더라면 困駕鹽車(곤가염거)했으리라.” 천리를 달릴 수 있는 자질이 있은들, 주인 못 만나면 고생하며 소금 짐이나 싣고 다니다 죽는다. 스승을 만나 고전 익히고, 스스로 애써 노력하여 성인의 경지를 목표로 삼아야 한다. 재가 불자는 생업에 종사하며 그리해야 하고, 출가 불자는 전적으로 그 일에 매진해야 한다.
2.
청량 국사께서는 ‘장교소섭藏敎所攝’이라고 과목을 붙여서 『화엄경』의 위상을 밝히고 있다. 같은 내용을 제자 규봉은 ‘장승분섭藏乘分攝’과 ‘권실대변權實對辨’ 둘로 나누어 분석하고 있지만, 내용은 동일하다. 장藏으로 분류할 경우, 승乘으로 분류할 경우, 분分으로 분류할 경우, 『화엄경』이 어디에 소속되는가? 이 논의 진행 과정에서 다양한 분류법과 그에 따르는 교학의 역사를 학습할 수 있게 된다. 출가 불자는 꼭 이런 훈련을 받아야 한다. 그래야만 남 앞에 설 수 있고, 스스로 경을 읽어 경의 말씀에 따라 수행의 길을 갈 수 있다.
불교의 경전을 ‘외적인 형태’로 분류할 경우, 경장에 속하는가, 율장에 속하는가, 논장에 속하는가? 또, 성문교단이 소장하는 경전인가, 아니면 보살교단이 소장하는 경전인가? 또, 장르로 볼 때에 계경이냐, 응송이냐, 수기이냐, 풍송이냐, 인연이냐, 자설이냐, 본사이냐, 본생이냐, 방광이냐, 미증유이냐, 비유이냐, 논의이냐? 이 질문에 간단하게 답해보자. 『화엄경』의 내용은 대부분이 경장에 속하고, 부차적으로 율장과 논장을 겸한다. 제22품 「십무진장품」에서 율에 관한 말씀을 하고, 제10품 「보살문명품」 등에 논의가 등장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화엄경』은 ‘보살교단’만이 전승하고 있다. ‘성문교단’ 내에서는 전승된 역사가 없다. 장르적으로는 위의 12 형태가 모두 활용된다. 문학적으로 봐도 구성지고 광활하다.
3.
이상이 본문의 외적 요소에 주목한 분류라면, 이하는 내적 의미에 주목한 분류이다. 전자를 ‘장섭藏攝’이라 하고, 후자를 ‘교섭敎攝’이라고 한다. 경전 훈고의 고유 용어이니 외워두어야 한다.
먼저 ‘교敎’의 말뜻을 분명히 알고 있어야 한다. 이때의 ‘교(敎 ..sana, 가르침)’는 ‘법(法 dharma, 이치의 본질)’과 ‘의(義 artha 이치의 속성)’와 짝이 되어 사용되는 용어이다. ‘법’과 ‘의’는 반드시 ‘교’의 형태를 띠어야만 사람들이 알 수 있는데, ‘교敎’의 형태로는 몸짓, 문자, 음성, 사유 등이 있다. 그래서 교학에서는 ‘교(敎)’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따져서 그것들의 깊고 얕음을 평가한다. 이것을 교학용어로 ‘교체심천敎體深淺’이라 이름한다. ‘교체(敎體 가르침을 전달하는 매체의 본질)’에 대한 소개는 여름호에나 하기로 하고, 여기서는 ‘교(敎 가르침)’의 분류 양상에 집중하기로 한다.
일반적으로, 결집된 하나의 경전 속에는 다수의 ‘가르침[敎]’이 들어있음을 알 수 있다. 오늘의 우리에게 전하는 것은 서적[책]이기 때문에 형태적으로 ‘교敎’는 문자인데, 그래서 경(經)을 볼 때에는 눈은 ‘문자’로 향하지만, 그렇게 향하는 과정에서 경이 설해지던 당시의 몸짓과 음성을 상기하고, 겸하여 그런 이야기를 하게 된 내력과 당시 사상계의 환경을 파악하고, 그리하여 그런 말씀을 하는 불·보살님들의 사유 속으로 스며들어가야 한다. 그게 경을 보는 자세이다. 그리고 감동 받은 대로 실천하는 것이 제자의 길이다.
성문승들이 전승하고 있는 아함부에 속하는 개별 경전들 하나하나 속에는 ‘교(敎 가르침)’의 개수가 상대적으로 적다. 경 자체의 분량이 짧다보니 그렇다. 반면 보살승단에 전승되는 경전들 속에는 ‘교(敎 가르침)’의 수가 많다. 그만큼 분양이 방대해진다. 어느 경우이건 등장하는 ‘교(敎 가르침)’가, 과연 말하는 사람[話者]이 자신의 궁극적 의도를 드러낸 것인지, 아니면 과정상에서 드러낸 것인지, 듣는 이[聽者]가 가려들어야 한다. 참 고민스럽고도 어려운 문제이다. 이런 고민과 어려움을 모른 채 여태껏 경전을 읽었다면, 모두 헛짓한 거다. 오죽하면 개경게 게송 끝자락에 “원해여래진실의(願解如來眞實義 여래의 진실하신 뜻 알기를 원하나이다)”가 들어 있겠는가!
4.
불교 역사에 인도 중국 그리고 한국의 무수한 천재 학승들이 이 문제에 고심했다. 그 과정에서 부득이하게 견해를 달리하기도 했다. 그렇게 해서 생긴 것이 소위 불교의 교학이다. 그러면 ‘교(敎 가르침)’의 양상樣相, 다시 경학의 용어로 말하면 ‘교상敎相’을 분석적으로 보는 것이 더 효과적일까?
아니면 직관적으로 보는 것이 더 효과적일까? 인도와 중국에서는 ‘교상敎相’을 분석적으로 보자는 입장, 즉 교상敎相을 판석判釋하자는 쪽이 주류를 이루었다. 이 과정에서 ‘소승교’니 ‘대승교’니 하는 교학 용어가 등장한다.
‘대승’의 교상을 논하는 과정에서, 이 논사들은 불교교단의 역사에 등장한 ‘중관학파’와 ‘유식학파’ 이 두 계열에 주목했다. 이런 현실 공동체 교단과는 달리, 단지 교학적 내지는 경전해석학의 입장에서 교상敎相을 판석判釋하는 경학가들이 등장했다. 그들이 세운 대표적인 경학 체계로 ‘천태교학’과 ‘화엄교학’을 꼽을 수 있다.
필자는 ‘화엄교학’의 입장에서 이 글을 쓰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속하는 대표적인 인물로 중국의 <두순-지엄-현수-청량-규봉>이 있다. 이 논사들은 인도의 <문수-용수-청목-청변-지광> 계열의 ‘중관학파’와, <미륵-세친-호법-난타-계현> 계열의 ‘유식학파’ 사이에 드러나는 교리 행상의 모순과 조화의 비판적 종합에 온 힘을 기울였다. 이들의 교학 체계를 조리있게 정리하고 또 그 학적 계보를 정리한 당나라의 정혜선사 규봉 종밀(780-841)은, 그것들을 ‘화엄종華嚴宗’이라 명칭 붙여 세상에 내놓았다.
규봉은 역사상의 ‘중관학파’의 교학을 ‘대승파상교大乘破相敎’로, ‘유식학파’의 교학을 ‘대승법상교大乘法相敎’로 이름 붙이고, 자신이 체계화 한 교학을 ‘일승현성교一乘顯性敎’라 이름 붙였다. 여기에다 10선업善業을 지으면 천상에 태어나고 그 반대이면 3악도에 태어난다는 경전 속의 이야기들을 ‘인천교人天敎’에 배치시켰다. 여기에 ‘소승교(小乘敎)’를 합쳐, 5종의 가르침 체계를 확립하기에 이르렀다. 『화엄경』의 경전 본문에는 이상의 다섯 종류의 가르침이 종횡무진 등장한다. 때문에 이런 ‘가르침의 양상[敎相]’을 제대로 섭렵해야만, 『화엄경』의 내용 이해가 깊어진다. 특히 『화엄경』 속에만 특별하게[別] 있는 가르침[敎], 즉 ‘별교別敎’를 분석하고 있으니, 그것이 바로 ‘사사무애법계’의 ‘가르침(사아사나)’이며 ‘관법(위파사나)’이다.
청량이 세운 <소승교-대승시교-대승종교-돈교-원교>의 5종 교판을, 제자 규봉은 다시 정리한 것이다. ‘돈교’와 ‘대승종교’를 묶어서 규봉은 ‘대승파상교’로 했고, 혜원 법사가 사용했던 ‘인천교’라는 용어로 세속의 인연 사례를 설하는 경전 속의 가르침을 묶어 이름 붙인 것이다. 5교의 상세한 내용은 4월호에 싣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