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0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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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선 선리발전에 긍정적 면모 제시

한국 선리논쟁의 전개


박경희
도서출판 중도 편집실장


동국대학교 불교학술원 HK교수 김호귀 박사가 중도출판사에서 『한국 선리논쟁의 전개』라는 책을 출간했다.
이 책은 천이백오십여 년의 역사를 지니고 있는 한국선에서 조선후기에 전개된 선리논쟁과 관련된 텍스트를 모아서 번역한 것이다.
조선후기 선리논쟁이 직접 관련된 텍스트로서 『임제록』, 『임제종지』, 『선문강요집』, 『선문수경』, 『김추사선생증백파서』, 『선문사변만어』, 『선문증정록』, 『선원소류』, 『선문재정록』 등 아홉 가지 문헌을 모아서 수록하였다. 이 가운데 『임제종지』, 『선문강요집』, 『선문증정록』, 『선원소류』, 『선문재정록』 등은 처음으로 번역을 선보인 것들이다.
한국의 선종사에서 조선후기에 촉발된 선리논쟁의 역사는 근원적으로는 중국선의 『임제록』에 보이는 삼구의 내용에 대한 이해로부터 시작된다.
조선 후기에 백파긍선은 고려시대 천책의 『선문강요집』에서 논의된 임제삼구와 관련하여 『선문수경』이라는 책을 저술하였다. 여기에서 백파는 임제삼구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선 『인천안목』과 『선문오종강요』와 『선문강요집』을 통해서 삼구의 의미를 분명하게 궁구하여 의심을 없애야 하고, 연후에 『선문염송집』과 『경덕전등록』과 사집 등의 어구로써 대조해야 하겠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 내용을 오해하는 까닭에 자신이 직접 삼구를 도형으로 만들어서 선문어구禪文語句를 총괄했다.
그리고 임제삼구와 관련하여 각각 조사선·여래선·의리선 등 삼종선을 내세우고, 의리선과 격외선, 말후구와 최초구, 신훈과 본분, 여래의 삼처전심과 관련한 살과 활의 배대, 삼구와 일구의 관계, 달마의 삼처전심 등 다양한 선리를 내세웠다.
이에 대하여 초의 의순은 『선문사변만어』를 지어서 백파의 견해를 비판했다. 초의는 『선문사변만어』를 통해서 삼처전심, 삼종선을 임제삼구에 배대한 근거, 이선과 선종오가의 배대 등에 대하여 조목조목 근거를 제시하며 나름대로 비판을 가했다.
또한 사변만어四辨漫語라는 용어처럼 조사선과 여래선의 유래, 격외선과 의리선의 유래, 살활과 체용의 관계, 진공과 묘유의 네 가지 주제를 내세우고 각각 그에 대하여 비판의 근거를 제시하며 비판했다.
백파가 제시한 선리논쟁의 단초에 대하여 초의의 비판은 조선후기에 한국선리의 논쟁에 대한 큰 물줄기의 서막을 보여줬다. 백파의 견해에 대한 초의의 비판이 출현한 이후에 다시 우담 홍기도 『선문증정록』을 지어서 백파의 견해를 비판했다.
우담이 비판한 주제로 첫째는 임제삼구와 삼처전심을 어떻게 배대하느냐의 문제이고, 둘째는 조사선과 격외선을 같은 등급에 놓고, 여래선과 의리선을 같은 등급에 놓아 조사선과 여래선 그리고 의리선과 격외선의 차이에 대하여 논의하며, 셋째는 살인도와 활인검은 삼구를 획득하는가 하는 여부에 따라서 살인도가 되기도 하고 활인검에 되기도 한다는 점을 논의하고, 넷째는 임제의 삼구와 일구의 관계에 대하여 체·용·중에 대비시켜 설명하면서도 궁극적으로 삼구는 곧 일구임에 대하여 논의한다. 그런데 우담이 비판한 방향은 초의가 보여주었던 관점에 대한 보완 내지 옹호가 아니라 별도의 안목에 따른 것이었다.
우담 이후에 설두 유형은 『선원소류』를 지어서 백파의 견해에 전반적으로 동조하여 그 견해를 수용하고, 초의와 우담의 문헌에 보이는 비판을 반박함으로써 궁극적으로 백파의 견해를 정착시키려고 했다. 설두는 초의에 대해서는 조사선, 여래선, 삼처전심과 이선의 배대, 권權에 즉하여 실實을 해명하는 것은 격외선이 아님, 임제 제삼구는 의리선, 살과 활, 선종오가의 배대, 진공과 묘유 등 8가지 주제에 걸쳐 반박을 가했다. 또한 설두는 우담에 대하여 사처전심의 구별에 대한 비판, 여래선·조사선 및 의리선·격외선의 배대에 대한 비판, 살인도와 활인검의 적용에 대한 비판, 삼구와 일구의 관계에 대한 비판 등 네 가지에 대하여 반박했다.
이후에 축원 진하는 『선문재정록』을 지어서 초의를 제외한 백파와 우담과 설두의 견해에 대하여 나름대로 자신의 이해를 붙여 선리논쟁을 정리하려고 노력했다. 축원 진하는 한국의 선종사에서 전개된 선리논쟁에 대하여 방점을 찍는다는 자세로 기존에 출현한 주장과 견해에 대하여 백파와 우담과 설두의 견해를 낱낱이 검토했다. 거기에는 긍정적인 측면이 있는가 하면 부정적인 측면도 아울러 드러나 있기 때문에 대부분이 비판을 위주로 전개되었던 이전의 선리논쟁과는 다른 성격을 보여주고 있다.
그런 가운데서도 유독 초의 의순의 견해에 대해서는 직접적인 긍정 및 부정의 모습이 보이지 않고 있다. 그것은 초의의 견해에 전적으로 근거하고 있다는 것인지 아니면 아예 초의를 무시하고 건너뛰어 선리논쟁을 전개한 것인지 분명하지 않다. 다만 초의를 전적으로 무시하지는 않았다는 점은 마지막 대목에 드러나 있다.
이로써 백파로부터 진하에 이르기까지 임제삼구에 근거한 삼종선, 이종선, 살활, 삼처전심, 진공묘유 등 다양한 주제에 대하여 백여 년이 넘도록 지속된 선리의 논쟁은 한국선의 선리발전에 긍정적인 면모를 제시해주었다.


책 속으로
선리의 논쟁은 인도선의 경우에 수많은 선법의 창출과 그 전승과 해석과 실천의 결과를 보여주었다. 그러나 보리 달마菩提達磨로부터 시작되는 중국선의 역사에서는 보다 분명한 이슈를 가지고 나름대로 선리의 논쟁이 일어났음을 보여주고 있다. 그것은 바로 법맥法脈의 정통正統과 방계傍系에 대한 기준이 되는 도구였을 뿐만 아니라, 자파에 대한 긍지와 타파에 대한 공격의 원인이 되기도 하였다. 가령 달마의 선법을 누가 계승했는가 하는 점은 초기선종의 역사에서 가장 두드러진 논쟁이었다. 소위 北宗과 南宗의 정통과 방계의 논쟁이 그것이었다.
-2쪽 머리말 중에서-


한국선의 역사에서 출현한 선리논쟁은 13세기부터 임제삼구를 그 연원으로 하여 20세기 초에 이르기까지 수백 년 동안에 걸쳐 전개되었다. 그러한 과정에서 단순히 임제삼구에 그치지 않고 여래의 삼처전심과 달마의 삼처전심, 그리고 삼처전심과 관련한 조사선祖師禪과 여래선如來禪의 배대, 삼구三句와 삼현三玄과 삼요三要의 관계, 살인도殺人刀와 활인검活人劍의 적용, 삼구三句와 일구一句의 관계, 의리선義理禪과 격외선格外禪의 적용 등 선리논쟁의 범위에 대해서도 점차 널리 확장되어 갔다.
특히 조선 후기 백여 년에 걸친 치열한 논쟁은 8세기에 불거진 남종과 북종의 정통논쟁 및 명말 청초에 전개된 법맥의 논쟁보다도 오랜 세월에 걸쳐 전개되었고, 중국 선종사에서 출현했던 문정門庭의 우월의식을 중심으로 전개되었던 논쟁의 양상에 비추어보면 비교적 순수한 선리논쟁의 역사였다는 점에 그 의의를 부여할 수가 있다.
-7쪽 머리말 중에서-


임제조사는 정법안장·열반묘심으로써 대지大智·대자大慈를 일으켰고, 대기·대용을 활용하고 방과 할로써 범정凡情을 초절.絶하였으며, 번개를 휘어잡고 별을 끌어당겼으니, 끝내 그 작략에 계합됨(구부.副)이 어려웠다. 그러니 어찌 의의擬議인들 용납하겠는가. 미루어 생각해볼 수밖에 없다.
-11쪽 임제혜조현공 대종사 어록 서 중에서-


흥화 존장이 임제를 계승하여 동당에 모셨다. 구리 물병과 철 발우를 지니고 문을 걸어 잠그고 입을 다물었다. 노송과 흐르는 구름을 보며 유유자적하였다. 면벽하다 이윽고 은밀하게 부촉하고 임종에 이르러 정법을 누구한테 전승할까 하니 눈먼 나귀(삼성혜연)가 말아먹겠구나. 원각(설봉) 종연(1074~1146) 노승이 연법하여 지금 유통하였는데 점검해보니 어그러짐이 없다. 오직 한 마디 할을 하노니, 잘 받들어 상량해보라. 안목이 있는 납자에게 바라노니 부디 잘못 거양하지 말라.                             -21쪽 진주임제혜조선사 어록 서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