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0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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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회에서

 


현담 스님


이른 봄날이었고 강가에 노란 개나리꽃 지천이었다 아지랑이들 무슨 헛제삿밥에 농주를 얼마나 마셨는지 큰 활처럼 휘어져 들어오는 강가에서부터 마을 안쪽까지 온 동네 둥둥 떠다니게 만들었다 몽유도원도의 기교잡다한 세상이 아니라 환한 대낮에 마치 수천 수만의 나비들 하얀 돛단배들이 마을 하나를 다 태우고 어느 먼 나라로 귀양 가는 그런 세상을 만들고 있었다 나는 아직 인생사 쓰고 단맛을 알 수 있는 나이가 되지 못하였음으로 기와지붕 초가지붕 둥둥 떠가는 행렬에는 끼지 못하였으나 아지랑이들의 기이한 춤사위는 지금도 잊지 못한다 지금 생각해보면 나는 아마 세상이라는 길을 그때 잃어버리지 않았나 싶다 나는 모른다 세상의 이쪽은 어디고 저쪽 -사람 북적이는 강 건너 저 도시의 길을 잘 모르겠다 아무리 빠르고 번듯한 길을 가고 싶어도 가다보면 그 옛날 하회에서 잃어버린 그 길로 돌아가 있었다 그 봄날의 하회 마을의 뒤와 안쪽 깊숙이 삿갓처럼 들어와 흐르는 강물과 아지랑이들의 춤들은 그 누구라도 길 하나는 잃기 마련이었을 것이다 그로부터 나는 누구에게서도 세상의 길을 배운 바 없이 그 봄날의 아지랑이 타는 듯이 강변의 배꽃도 따다가 풀피리도 불다가 하면서 여기까지 온 것 같다 차라리 그때 큰 맘 먹고 서애 선생에게서 하회 탈바가지나 하나 얻어올 걸 그랬다 탈바가지 하나 걸치고 아주 능란한 각시탈이나 되어 저 별것 아닌 인간사 농락이나 실컷 할 걸 그랬다 그날 하회마을의 아지랑이처럼 세상 하나 둥둥 띄우고 다닐 수 있었는데 그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