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우頂宇 스님
본지 발행인 | 구룡사 회주
지구는 낮과 밤의 자전과 태양계를 공전하면서도 중력으로 지구에 살고 있는 우리는 육체적으로는 흔들림 없이 살고 있지만, 그 안에 내재되어 있는 우리들 마음속에는 끊임없이 번뇌煩惱가 일어나 흔들리고 있습니다.
번뇌에는 가벼운 번뇌, 무거운 번뇌, 잠자는 번뇌 등, 수없이 많은 번뇌가 있어 우리들의 마음을 흔들고 있습니다.
한량없는 번뇌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어떻게 수행해야 하겠습니까?
계정혜戒定慧 삼학三學으로 바라밀다波羅密多 수행법修行法을 닦아서 보리심菩提心을 일으킬 수 있어야 합니다. 본래 ‘부처를 잃어버리면 범부중생이라 하고 부처를 찾으면 부처님’이라 하셨듯이, 본래 부처의 마음자리를 찾는 노력이 바로 신심과 보리심으로 행하는 수행정진修行精進입니다.
『화엄경華嚴經』에, 심 불급중생心佛及衆生이 시 삼무차별是三無差別이라, 우리의 마음과 부처와 중생이 둘이 아닌 것을 알 수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인생은 우리들의 삶을 분명한 목적이 있는 생활로 이어지게 해야 합니다.
어제 살아온 것처럼 오늘을 살고, 내일도 그렇게 살아가는 의미 없는 인생이 되어서야 되겠습니까. 보살菩薩이 보리심菩提心을 일으키는 것은 모든 번뇌를 깨끗하게 다스리려는 것이며, 보리심을 장양長養하는 것이어서 선근善根과 지혜智慧를 발현시키려는 것이고 그곳에서 맑고 밝은 지혜의 빛이 있으면 무명의 어두운 그림자는 일순간에 소멸되는 것이니, 마음을 깨끗하게 다스릴 수 있어야 합니다. 수행도 하지 않고 말뿐인 종교나 믿음은 마치 녹화기에 녹음되어 있는 것과 같아, 생명력 없는 메아리에 지나지 않는다고 할 것입니다.
번뇌를 없애려면 계정혜 삼학의 바라밀 수행법으로 보리심을 일으켜야 합니다. 무명無明을 없애려면 그 번뇌가 어떤 것인지를 먼저 알아내야 합니다.
번뇌란 번요뇌란煩擾惱亂의 줄인 말입니다. 마음을 흔들어서 어지럽게 한다는 뜻입니다. 우리의 몸과 마음을 어지럽게 하는 정신작용精神作用입니다.
근본은 집착執着으로부터 일어나는 마음의 갈등葛藤이라 할 수 있습니다.
마음을 물체에 비유하자면 번뇌는 마음이라는 물체에 뭍은 때와 같은 것이고 그 마음은 물체에서 일어나는 번뇌의 때이니, 번뇌라는 먼지를 털어내면 됩니다. 그렇게 하면 본래 청정한 마음이 나타날 것입니다. 나타난 마음은 우리의 마음과 부처와 중생이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게 할 것입니다. 그 번뇌는 중생에 탐진치貪瞋癡 삼독三毒의 번뇌, 욕망欲望의 번뇌, 번뇌망상煩惱妄想인 108번뇌, 더 나아가서는 8만4천 번뇌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나쁜 사람이라도 그 사람 마음을 살펴보면, 악한 것은 몇 가지 안 됩니다. 백팔번뇌를 여의겠다고 염주를 돌리며 108배도 하고, 가벼운 번뇌, 무거운 번뇌, 잠자는 번뇌를 없애겠다는 기도를 하지만, 실제로 번뇌는 그리 많지 않습니다. 번뇌는 의식 속에 잠재되어 있다가 인연 조건이 일어나면 제7식인 말래야식의 작용으로 드러나는 일입니다.
그 잠자는 번뇌는 숨어있는 번뇌입니다. 인식기관은 안眼 이耳 비鼻 설舌 신身 의意는 색色 성聲 향香 미味 촉觸 법法으로, 눈으로 보는 생각, 귀로 듣는 생각, 코로 냄새 맡는 생각, 혀로 맛보는 생각, 몸으로 감촉을 느끼는 생각, 정신으로는 헤아리는 생각들이 계정혜 삼학으로 다듬어져 가면, 보리심을 여의지 않기 때문에 보살행원菩薩行願을 실천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마음이 탐진치 3독에 물들어 있으면 잠자고 있던 번뇌들이 깜깜한 동굴에서 한밤중에 튀어나오듯, 박쥐가 나타나는데 그 현장이 바로 삼악도三惡道인 것입니다.
세상을 잘 살고 있다가도 어느 순간 그 인연 때문에 어렵고 힘든 상황에 노출되는 일들을 주변에서 종종 보게 되는데, 그런 이치가 아닐까 싶습니다.
그러니 잠자는 번뇌라도 우리들의 의식 속에는 잠재되어 있는 번뇌들입니다.
그렇게 의식 속에 있다가도 인연만 연결되어지면 작용합니다. 그래서 종자種子번뇌라고도 하고 무거운 번뇌라고 하는 것입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일어나고 있는 이 번뇌들은 순간순간에도 활동하고 있는 현행現行번뇌입니다.
번뇌는 이렇게 다양하게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합니다.
검은 개꼬리 눈밭에 천년을 묻어 놓는다고 흰 개꼬리 되지 않는다고들 합니다.
우리는 멋으로 염색도 하고 나이 들어가며 흰머리 칼을 감추기 위해서도 하는 염색을 보면서 이런 저런 생각을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얼굴에 난 검버섯을 제거하는 시술도 요즘은 다반사로 합니다. 이러한 일들은 결국 인생이 덧없다는 무상無常함을 모르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인생이 무상하다는 사실을 모르기 때문에 범부중생들은 끝없는 고통과 괴로움을 받고 있다고 합니다. 그것은 부처님의 가르침에 대한 청정한 눈을 가지고 있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안목眼目이 없어서일 것입니다. 생로병사生老病死와 생주이멸生住異滅과 성주괴공成住壞空을 벗어날 수 없다는 유전流轉입니다.
세상은 많이 달라지고 있습니다. 이제는 100세 시대가 아니고 120세를 내다보며 살고 있는데, 천년만년을 산다고 한들 우리네 수명은 결국 여기까지입니다.
백 살을 살아도, 칠팔십을 살아도, 그날까지가 덧없는 인생에서 무상을 알지 못하고 번뇌 망상에 노출되어 세상을 어렵고 힘들게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하루를 살아도 열심히 살 수 있는 우리가 되었을 때, 우리는 당당한 자기 모습을 잃지 않고 사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안목이 있어야 합니다. 청정한 눈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일체의 마음을 알고자 한다면, 먼저 정법안장正法眼藏의 가르침을 바르게 볼 수 있는 안목을 가져야 합니다.
『금강경金剛經』에는 육안肉眼, 천안天眼, 혜안慧眼, 법안法眼, 불안佛眼의 5안이 있다고 했습니다. 육안은 우리들이 가지고 있는 시각의 눈입니다.
우리는 이 육안만 가지고 있는 게 아닙니다. 천상인의 눈, 혜안의 눈, 이치의 눈, 깨달음의 눈을 가질 수 있습니다. 수행덕목인 안목眼目의 눈입니다.
만약 스스로의 마음에 집착하지 않는다면 진실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진실眞實의 의미는 정직함과 성실함의 융합체입니다. 그 진실한 삶은 있는 그대로의 본성을 잃어버리지 않고 사는 인생을 의미하는 것 입니다.
그래서 선정삼매禪定三昧를 닦아야 하고 반야지혜般若智慧를 증득하는 수행을 해야 합니다. 선정삼매를 닦는 연유는 방일放逸하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오늘도 큰 지혜를 장엄하려면 수행을 해야 합니다. 지혜는 없는 것을 새로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닙니다. 상주불멸常住不滅의 밝음을 일러 지혜라고 합니다. 그 지혜가 무명업식無明業識에 덮여 있기 때문에 드러나지 않을 뿐입니다. 그러니 무명업식을 걷어내야 합니다. 자연스럽게 지혜가 드러날 것입니다.
선정삼매를 닦는 것도 자재自在함을 얻기 위해서입니다. 내 팔 가지고 내가 흔들고 네 팔 네가 흔드는 것이 자재함은 아닙니다. 서로에게 손상시키는 일 없이 살아가는 모습이 자재함입니다. 그러니 방일하지 않고 큰 지혜를 장엄하고 자유자재함을 얻기 위해서는 선정삼매를 닦아야 합니다.
지혜가 있어야 나고 죽는 나쁜 과보를 관찰할 수가 있습니다. 반야지혜를 닦아야 합니다. 반야지혜를 닦으면 생사에 대한 나쁜 과보를 관찰할 수 있습니다. 반야지혜가 반듯이 있어야 선근이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은 사람이 사람의 마음을 얻는 일이라고 합니다.
얼굴만큼 각양각색의 마음에서 순간순간 수만의 생각이 떠오르기 때문입니다. 바람같은 마음을 어느 한 곳에 정착하고 머무르게 한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라고 합니다. 그만큼 사람의 마음을 얻기는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순수한 마음으로 자기 본성을 잃지 않고 살 수 있는 불자가 되어야 합니다. 지혜智慧와 선근善根을 닦으며 복福 짓는 일도 해야 합니다.
복이 있으면 상대방의 마음을 움직이게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서로에게 관심을 갖고 배려하며 잘 어울릴 수 있는 마음을 실생활에 반영하며 살 수 있게 하는 모습이 아닐까 생각하게 합니다.
우리는 자기 자신을 아껴야 합니다. 자신을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나쁜 업業을 멀리하고 나쁜 행동을 멀리해야 합니다. 선행을 쌓으면 그 마음은 항상 편안할 것입니다. 누가 편안하게 해주는 것이 아닙니다.
처처處處가 안락국安樂國은 보리심을 여의지 않았을 때, 내가 머무르고 있는 그곳이 편안한 안심입명처安心立命處입니다.
극락極樂에 있어도 탐진치貪瞋癡 3독三毒의 번뇌煩惱에 물들어 있으면 머물고 있는 그곳이 삼악도三惡道인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니 선행善行을 쌓아야 합니다. 선행을 쌓으면 항상 마음은 편안합니다.
선지식善知識의 가르침을 따라야 합니다. 이 세상에는 내가 잘 살 수 있으면 선지식 아닌 사람은 없습니다. 잘 사는 사람을 보면 모범으로 삼고, 본받으면 나의 선지식이요, 못 사는 사람은 저렇게 살면 안 된다는 마음을 가지고 경계를 삼으면 그 사람 역시도 선지식일 것입니다.
변별력이 부족해서 알지 못하기 때문에 이런저런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 것입니다. 선지식의 가르침을 따르면 모든 의심과 두려움 없이 살 수 있습니다.
이런 사람은 마음이 흔들리지 않기 때문에 광대한 이익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러니 위없는 깨달음을 이룰 수 있습니다. 우리들도 이룰 수 있다는 것을 믿고 의지하며 살아가는 불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탐진치 번뇌는 언제 어느 때 어떤 조건을 만나서 파생될지 모릅니다.
마치 지뢰밭처럼 우리들 마음속 여기저기에 널려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환경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은 안목眼目을 가지며 사는 길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