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0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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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가 폭풍우를 견디는 방법

 


홍성범
숲해설가


새 봄, 혹독한 겨울을 견딘 나무들을 우린 마주 할 것이다. 추위는 물론 거센 바람도 그들을 쓰러뜨리지 못했고 비로소 우리 앞에 당당히 선 나무들.
침엽수는 고집이 세다. 어떤 상황이 닥쳐도 침엽수의 나무줄기는 하늘을 향해 자란다. 침엽수는 항상 중력의 반대방향으로 자라려고 한다. 모든 침엽수는 일사분란하게 꼿꼿이 허리를 세우고 있어서 침엽수립은 단조로운 모습이다. 이러한 통일성 때문에 다른 점이 조금만 있어도 쉽게 눈에 띈다. 침엽수는 흙으로부터 나가떨어지지 않으려 사력을 다하기 때문에 강풍의 직격탄을 맞아 틈이 생긴 부분만 땅에서 살짝 들어 올려 서 있다. 이렇게 올라간 부분은 몇 센티미터에 불과하지만 나무줄기는 눈에 띄게 기울어지게 된다. 나무뿌리 옆에 잔가지들이 새로 나면서 나무 밑동 아래 토양은 단단히 다져진다. 이때부터 나무는 다시 위로 자라기 시작한다. 하지만 나무는 비스듬히 기울어진 나무줄기의 자세를 더 이상 고쳐줄 수 없다. 나뭇가지 끝부분이 계속 자라고 있기 때문이다. 이 시점부터 나무줄기에 굴곡이 생긴다. 굴곡이 처음 시작된 부분까지 위에서 아래로 세어보면 나무의 나이를 가늠할 수 있고 폭풍이 발생한 시기도 확인할 수 있다.
나무는 평형을 유지하는 또 다른 힘이 있다. 높은 산에 잦은 바람이 불어 오랜 기간에 걸쳐 힘이 일정하게 가해지면 나무줄기는 긴 곡선을 그리며 자란다. 이것은 동활 침식과 유사한 작용을 하며 비탈진 산 중턱 토양의 맨 위층은 대개 불안정하다. 이 토양층은 푸딩처럼 진득진득해서 몇 년에 걸쳐 천천히 골짜기 아래로 흘러내린다. 토양이 아래로 미끄러져 내리는 만큼 나무줄기는 비스듬히 기울어지고 나무는 위로 자라려고 안간힘을 쓴다. 그 결과 나무줄기는 활 모양으로 휘어진다,
활엽수와 침엽수는 기본적으로 같은 규칙성을 나타내며 성장한다. 폭풍이나 돌풍을 맞았을 때 활엽수는 침엽수와 유사한 성장 형태를 보인다. 나무줄기가 비스듬히 기울거나 구부러진다. 활엽수는 가능하면 위로 자라려고 하지만 침엽수처럼 수직방향으로의 성장만을 고집하진 않는다.
활엽수의 가지는 빛을 포착할 기회가 생기면 빛의 방향으로 바로 휘어지고 빛이 오는 방향으로 늘어난다. 이렇게 자란 가지 중 가장 튼튼한 가지는 나중에 나무줄기가 된다. 활엽수가 기울어진 원인을 찾을 때 가장 먼저 확인하는 것이 빛의 상태다. 숲의 가장자리를 보면 활엽수와 침엽수의 차이를 뚜렷하게 관찰할 수 있다. 침엽수는 곧이곧대로 위로만 자라려고 하지만 어린 활엽수들은 앞뒤 가리지 않고 숲 가장자리로 밀고 들어온다.
어둠에 묻혀 있는 어린나무들은 언젠가는 더 많은 빛을 받으리라 기대하며 때를 기다린다. 우리는 이런 나무를 쉽게 알아볼 수 있다. 이런 경우 침엽수든 활엽수든 잎 모양에 상관없이 모든 나무는 주축이 되는 새싹 또는 가장 키가 큰 새싹보다 곁가지에 달린 새싹의 길이가 길다. 이유는 간단하다. 나무는 위로 자라는 데 온 에너지를 쏟아 붓는데 거대한 나무의 그늘에 가려져 있는 상태에서는 나무 꼭대기까지 도달할 힘이 부족하다. 이런 상황에서 어린나무는 고목 사이에서 토양에 도달할 수 있는 약간의 빛을 최대한 포착하는 것이 더 유리하다. 그 빛을 포착하려면 나뭇가지가 옆으로 퍼져야 가능하다.
나무의 세계에도 서열이 있는데 가장 높은 곳은 나무의 가장 윗부분인 우듬지이다. 이곳에서는 그 누구의 방해 없이 햇빛이 나뭇잎 위로 쏟아져 내리기 때문에 당과 목재가 넘치도록 많이 생긴다.
정원이나 공원에 있는 나무의 대부분도 같은 원칙이 적용된다. 이곳에서는 나무마다 서 있는 간격이 넓기 때문에 모든 나무가 방해받지 않고 성장할 수 있다. 하지만 수천 그루의 나무들이 서로 햇빛을 갈망하며 서 있는 숲에서는 상황이 완전히 다르다. 이때 나무들은 서로 경쟁하지 않고 각기 다른 지위를 가지고 있다.
숲의 우두머리는 덩치가 큰 나무들로 그 나무들의 수관은 사방으로 일정하게 커진다. 우두머리 나무 옆에는 키는 같지만 수관이 훨씬 작은 나무들이 서 있는데 이 나무들 사이에는 작은 틈이 있다. 몸집이 더 작은 나무들이 꽃을 피울 무렵이면 우듬지의 일부는 강렬한 햇빛을 받지만 나뭇가지 길이가 짧고 잎의 무게가 가볍다. 그래서 막강한 힘을 가진 우두머리 나무보다 힘이 약하다.
산책할 때 나무 아랫부분인 땅부터 천천히 살펴보면 나무 세계의 서열을 어렵지 않게 파악할 수 있다. 이때 나무줄기의 지름을 보면 나무의 서열을 파악하는데 도움이 된다. 이 경우 예외 없이 적용되는 법칙은 나무 굵기가 굵을수록 서열이 높다는 것이다. 적자생존의 원칙이 지배하는 숲에서는 가장 강한 나무가 집중적으로 성장하기 때문이다, 가장 큰 나무들은 수관의 면적도 크기 때문에 가장 많은 양의 당, 단백질, 목재를 생산할 수 있다.
빛은 치열한 생존 경쟁에서 승리하는 데 가장 중요한 요인이다. 수관을 크게 키울 수 있는 나무일수록 잎이 많이 달리므로 지속해서 햇빛을 받을 수 있음은 물론이다. 따라서 모든 나무들은 주변 나무들을 앞질러 최대한 크게 성장하려고 한다.
키가 큰 나무일수록 지렛대 효과도 커진다. 나무는 수 톤에 달하는 나뭇잎과 나뭇가지의 무게를 감당해야 한다. 몸집이 큰 나무일수록 균형을 맞추기 위해 많이 흔들린다.
폭풍이 불어 닥치면 나무의 밑동에 엄청난 지렛대 힘이 작용한다. 한 연구결과에 의하면 나무 한 그루당 12~1,000킬로뉴턴미터 크기의 힘이 작용한다고 한다. 이 물리량을 무게로 환산하면 약 100톤이다. 그러니까 폭풍이 이 무게만큼의 힘으로 나무를 잡아당기고 있는 셈이다. 이렇게 강력한 힘이 나무에 작용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면 폭풍에 나무 한 그루가 성냥개비처럼 뚝 부러지는 것을 보고 새삼 놀라지 않을 것이다.
원래 나무의 무게는 어떤 폭풍이 불어도 견딜 수 있을 만큼 무겁다. 나무줄기의 지름이 두 배로 증가하면 폭풍에 대한 안정성이 여덟 배 증가한다. 그런데 모든 나무가 이 수치만큼 옆으로 퍼지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모든 나무는 폭풍에 쓰러지지 않기 위해 자신이 얼마만큼의 에너지를 투자해야 할지 누구보다 잘 안다. 몸통 일부가 부실한 나무는 강풍을 이기지 못하고 휘거나 틀어지고 나무줄기의 조직이 긴장되거나 압축되어 변형이 일어난다. 그래서 추후 이런 일의 재발을 막기 위해 나무줄기가 점점 굵어지는 것이다.
숲의 관점에서 보면 나무는 언제든지 쓰러질 수 있다. 결국 이웃 나무들은 안정성과 힘들 때 의지할 든든한 어깨를 잃는 셈이다. 폭풍은 이러한 전환기에 훨씬 더 위험하고 치명적인 연쇄반응을 일으키기 시작한다. 불안하게 서 있던 나무가 바람이 불면 허무하게 쓰러지면서 이웃 나무들도 연쇄적으로 무너뜨린다. 이러한 현상은 질서장연하게 서 있는 침엽수림에서 특히 자주 발생한다.
반면 원시림에서는 이러한 일이 잘 발생하지 않는다. 키가 크고 몸통이 굵은 나무들이 버티고 있는 원시림은 어떤 폭풍이 불어도 완강하게 저항한다. 거세게 몰아닥치는 폭풍과 원시림이 충돌하면 바람의 강도가 약해져 폭풍으로 인한 손실이 훨씬 줄어든다. 어린 나무들은 바람이 들지 않는 곳에 낮은 몸으로 숨어서 피해를 가장 적게 입는다. 뿐만 아니라 거대한 나무 중 일부가 쓰러지면 그 빈자리를 채울 것이다.
새 봄 우리가 맞이하는 나무들은 온갖 시련을 견디고 우리 앞에 서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