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성운
텃밭농부
손바닥만한 크기의 밭을 일군 지 일곱 해째다. 간혹 이런저런 모임에 참여할 때가 있는데, 나를 소개할 기회가 있으면 나는 ‘텃밭농부’라고 내세운다. 수줍은 이름이다. 일구는 면적이 적을 뿐더러 생업을 목적으로 하지 않으니 농부라고 하기엔 뭔가 모자란 것 같아 ‘텃밭’을 내세운다. 텃밭도 마땅히 밭이고 크기에 관계없이 땅을 일구고 씨앗을 뿌려 땀을 쏟아내어 거두니 농부의 일과 다르지 않다. 그냥 농부라고 한들 무슨 흠이겠냐마는, 아무튼 텃밭농부라고 소개한다. 이 이름이 괜찮다. 그러면서 덧붙이는 말이 있는데, 농사를 짓는다고 하지 않고 농사를 배운다고 한마디를 더 보탠다.
나는 여전히 농사를 배우는 중이다. 배울만한 것이 많기 때문이다. 농사는 어려운 일이므로 배우지 않을 수 없다. 땅과 흙, 씨앗, 식량, 농업정책, 농부의 마음, 이런 것들이 내 배움의 주제이다. 이것들을 알아야 농사를 제대로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농업, 농사 관련 매체를 검색하고, 책을 뒤적이고, 농부나 농사 관련된 사람들을 만나면 농사 이야기를 나눈다. 날씨의 변화를 보느라 하늘을 보고, 바람의 방향과 냄새를 맡으려 한다. 벌레를 미워하면서도 저것들도 밭의 일원임을 잊지 않으려 한다. 농사는 씨를 뿌려 거두는 일만이 아니다. 흙을 길러야 하며, 모름지기 하늘에 감사할 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는 지구를 가꾸는 농부
최근에 『미친 농부의 순전한 기쁨』이라는 책을 보았다. 도서관 서고에 꽂힌 책들을 훑어보다가 ‘미친’ ‘순전한’이라는 단어에 눈길이 머물러 펼쳐보았다. 미국 버지니아주의 셰넌도어밸리에서 농장을 하는 조엘 샐러턴이라는 사람이 지은 책이다. 이 책을 읽은 두 번째 이유는 첫 문장 때문이었다.
“나의 직업은 매일 수천 종의 동식물이 타고난 본성대로 건강하고 행복하게 하는 것이다.”
그러니 그도 행복할 것이다. 모든 농부의 소망이다. 농사를 하면서 더 없이 행복한 사람이 지은 책이라면 읽어볼 만하지 않겠는가. 진짜 그랬다. 근엄 진지하지 않으면서도 명쾌하다. 520쪽에 이르는 꽤 두터운 분량이지만, 읽는 내내 즐거웠다.
농사를 바라보는 그의 시각, 삶의 태도도 마음에 들었다. 앞에 인용한 문장 중에 ‘수천 종의 동식물’이라고 했는데, 그는 소와 돼지, 닭, 칠면조를 키운다. 토마토를 비롯한 채소도 재배한다. 그런데 수천 종이라니. 세상의 어느 농부가 그렇게 많은 종류의 동식물을 키우고 재배한단 말인가. 그의 셈법은 특이하다. 땅을 거름지게 하는 풀과 지렁이, 미생물도 그의 농사 목록에 포함된다. 자연의 질서에 따라 농사를 하는 것이니 수천 종이 되는 것이다. 그의 농법이 특이하다고 했지만, 사실 50년 전에만 해도 농부들은 그렇게 농사를 지었다.
우리나라에도 조엘과 같은 농부가 꽤 있다. 어느 조사를 보니 우리나라의 유기농가는 전체 농가의 2%쯤이라고 한다. 우리나라 농가 수는 102만 가구쯤 되는데, 2만 가구가 유기농업을 하고 있는 셈이다. 10여 년 전에도 이쯤이었는데, 더 이상 늘지 않는다. 유기농은 품이 많이 든다. 소출도 화학비료를 쓰는 것에 비해 적다. 그러니 상대적으로 비쌀 수밖에 없다. 비싸니 소비자들이 그들의 농산물을 사지 않는다. 유기농이 설 자리를 잃어가는 이유이다. 농부들의 마음이야 조엘과 같지만, 현실을 그렇지 못하다. 그러니 농부들의 한숨이 깊을 수밖에 없다.
조엘은 다음과 같은 말을 한다.
“비옥한 생태계의 기본은 다년생식물이다. ‘초식동물-포식자-방해-휴식’으로 이어지는 순환구조야말로 지구의 들숨과 날숨이다.”
그는 지구를 가꾸는 농부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찌 이런 위대한 말을 할 수 있겠는가.
지구라는 존재를 생각의 우선순위에 두자는 발상은 인류의 오랜 생각이었지만, 요즘 들어 공감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기후위기의 현실이 이런 생각을 널리 퍼지게 했다. 사실, 인간은 지구라는 존재에 전적으로 기대어 살아가는 존재다. 인간을 먹여 살리는 곡식과 육류, 옷감, 집 등 의식주와 에너지, 이동수단, 여가와 취미 활동을 가능하게 하는 모든 것이 지구가 제공하는 물질이 있기에 가능하다. 온갖 꽃과 나무가 어우러진 숲과 강, 바다는 아름다움을 느끼게 하고, 쉼과 영감을 준다. 그것도 거저로 준다.
지구를 앞세우자는 생각은 당연한 것이지만, 지구가 깊은 병이 들어서야 이를 깨닫고 있다. 이런 시각에서 본다면 인간은 똑똑할지언정 겸허한 존재는 아니다. 지혜롭지도 않다. 이제라도 지구의 안위를 돌봐야 한다는 생각에 이른 것은 그나마 다행이다. 앨도 레오폴드의 ‘땅의 윤리’, 토마스 베리의 ‘위대한 과업’ 등의 영향이 적지 않았다. 특히 토마스 베리는 지구법을 주창했는데, 인간은 지구에 사는 무수한 존재들과 조화로운 관계를 맺기 위해서는 비인간 존재들이 살아갈 권리를 보장하는 지구법을 제안했다. 이에 호응하는 움직임이 세계적으로 일고 있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지구법학회에서 지구법 운동을 이끌고 있다. 최근에는 ‘지구종교’라는 개념도 논의되고 있다. 지구종교는 “인간과 지구의 상생을 위해 지구를 하나의 공동체로 인식하며 지구를 공경하는 종교”(허남진·이우진, ‘지구위험시대의 지구인문학’)라고 할 수 있다. 이제 종교도 생태적, 지구적 기반에 서지 않을 수 없는 시기가 되었다.
거창할 것 없는 시농제
엊그제 밭에서 올해의 첫 모임을 가졌다. 매년 이맘때에 농사를 본격적으로 시작하기에 앞서 하는 시농제와 같은 것이다. 거창할 것은 없다. 겨우내 어떻게 지냈는지 안부를 묻고 함께 밭을 휘 둘러보고, 올해도 재미있게 농사를 하자는 덕담을 나누고 점심을 함께 먹는 것이다. 올해는 밭의 식구들이 늘었다. 세 사람이 새로 들어왔다. 이들과도 인사를 나누었다. 화장실을 새로 고치기로 했다. 비와 햇볕을 막아줄 쉼터도 다시 만들기로 했다. 공동작업 목록을 정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각자의 밭은 알아서 가꾸되 공동작업을 통해 서로 도움의 미덕을 쌓아간다. 잘 진행되면 가까운 사이가 된다. 친구를 얻는 기쁨을 누릴 수 있다. 그렇지 못하면 내내 불편해진다. 사람 관계가 그런 것이니 어쩔 도리가 없다. 그러나 밭에 나오면 생각의 품이 넓어지니 대개는 좋은 관계가 만들어진다. 서로 도우려 한다. 이게 밭의 힘이다. 밭에 나오면 사람들이 조금은 착해진다.
지난 가을에 심어놓은 마늘, 양파, 대파를 살펴보았다. 마늘은 세 잎 정도 나왔다. 저조한 편이다. 서산 마늘밭의 마늘은 다섯 잎 이상 나왔는데, 이 정도면 큰 마늘을 기대할 수 없다. 100개쯤 심은 양파는 절반 가까이 죽었다. 추위를 이겨내지 못한 것이다. 그래도 이만하면 우리 식구들이 내내 먹고도 남을 양이다. 전문적인 양파 농가에서는 비닐을 덮어 보온한다. 녹비작물로 심어놓은 호밀은 파랗게 싹을 내밀었는데, 한 뼘쯤 자랐다. 햇볕이 더 따스워지면 온밭을 파랗게 덮을 것이며, 더 지나면 푸른 바다의 물결처럼 출렁일 것이다. 시금치는 이제야 싹을 내밀었다. 내 밭은 달팽이처럼 느리다.
3월 5일이 24절기 중 세 번째인 경칩驚蟄이다. 경칩은 글자 그대로 땅속에 들어가서 겨우내 잠을 자던 동물들이 깨어나서 꿈틀거린다는 말이다. 그러나 우리 밭의 흙은 아직 풀리지 않았다. 삽이 들어가지 않는다. 아래까지 녹으려면 더 많은 햇볕을 쬐어야 하겠지만, 봄은 오고 있다. 아니 봄은 이미 부드러운 바람을 타고 와있다. 오광수 시인은 3월이 왔으니 웃으라고 한다.
웃으세요
3월이 되면,
말라버린 척,
굳어버린 척,
외면했던 빛깔들을 되살리고
조용하니 생명 하나하나의 손을 잡고
웃으세요.
-오광수, ‘3월이 되면’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