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0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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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선한 행위를 필요로 한다

정성운
텃밭농부


봄날은 어찌 이리도 따뜻하고 다정한가. 햇살이 이마에 내려앉으면 눈이 따스함에 겨워 스르르 감긴다. 부드러운 바람이 일렁이는 먼 남녘의 바다 내음이 코앞에 다가온 듯하다. 이은상 시인은 이런 날이 흥겨워서 “봄처녀 제 오시네”라고 노래했다. 봄날은 어찌 이리도 추운가. 시베리아 한랭 기단의 거센 바람이 머리칼을 마구 휘젓는다. 저 머나먼 곳 고비사막에서 승천한 모래 먼지가 부유하고 있다. 봄날은 이리 어지럽다. 갈피를 잡지 못하겠다.
사람이 봄날의 변화무쌍을 닮은 걸까. 사람은 따뜻하고 냉정하다. 강하고 나약하다. 피비린내 진동하는 전쟁을 치르기도 하고, 평화를 염원하며 간절히 기도한다. 세상의 온갖 것을 움켜쥐려는 욕망 덩어리이기도 하며, 마지막 하나까지 내어주는 거룩함이기도 하다.


빛을 좇는 게 사람이지만 그림자 늘 공존


봄날에 밭에 나왔다. 이 시간을 얼마나 기다렸던가. 겨우내 걸음을 하지 않았으니, 몇 달 만인가. 3월 초의 밭은 봄과 겨울, 두 계절이 공존하고 있다. 그늘진 데에는 잔설이 아직 녹지 못했고, 흙은 얼어있다. 아직 씨앗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흙을 밟으면 물이 흠뻑 배어나 신발창을 적신다.
사람도 계절을 닮아 늘 둘 이상이 공존한다. 빛이 비추어 그림자가 지듯이 늘 그렇다. 빛과 그림자가 동시에 공존하는데도 빛을 좇는다. 그게 사람의 일이다. 사람은 늘 빛을 쪼이려 하고, 자기의 하는 일이 빛나는 일이기를 바란다. 환상이다. 그림자는 애써 외면한다. 그게 또한 사람의 일이다. 빛과 그림자를 같이 보고 느끼고 알아채서 살아가는 일이 또한 사람의 길이다. 이게 어렵다. 그래서 부처님은 고구정녕苦口叮嚀 실상을 보라고 하셨다. 실상은 연기(관계)와 중도에 있다.
지난 2월 8일, 글쓴이가 참여하고 있는 작은 모임(자연의 권리를 생각하는 불자들의 모임, 자생불)에서 작은 행사를 치렀다. 자생불은 지난 1년 동안 ‘자연의 권리’ ‘지구종교론’을 주제로 공부하고 이야기를 나누는 모임을 가졌는데, 회원들 사이에서 두 주제를 불교계에 널리 알리자는 제안이 있었다. 이에 ‘불교! 자연과 자연의 권리를 말하다’는 제목을 붙여 공개적인 대화마당을 열었다.
‘생태윤리와 불교’(박병기 교원대 교수), ‘지구종교론의 전개와 불교의 과제’(글쓴이), ‘자연의 권리 도입 현황, 한계 및 과제’라는 3개의 주제 발표와 소그룹 토론으로 진행했다. 소그룹 토론을 통해 생태위기 극복과 자연의 권리 구현을 위한 불교의 실천과제를 모았으며, ‘자연과 자연의 권리를 위한 불자 선언’을 채택해 발표했다. 불교에서 자연의 권리를 보장하고 지지하는 선언문을 발표한 것은 처음이다. 이 선언문의 발표자는 이날 행사에 참석해 선언문의 내용을 제출한 39명이다. 자생불은 “이 선언은 발표자 스스로에 대한 다짐이며, 동시에 이를 선언으로써 널리 알리는 것은 선언에 담긴 내용의 실천자로서 나를 사람들과 자연에 전하는 행위로서, 자생불이 동참자의 확대와 내용의 수정·보완 작업을 지속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선언은 전문과 ‘자연’ 8개 조, ‘인간’ 9개 조로 구성돼 있다. 이곳에 전부를 옮겨 널리 알리고 싶으나, 지면의 한정이 있으니 전문만 옮긴다.


‘자연과 자연의 권리를 위한 불자 선언’


자연의 모든 존재는 연기적 존재로서 상호 연결되고 상호의존적인 존재이며, 함께 살아가는 생명공동체의 구성원이다. 자연의 구성원이자 일부인 인간이 자기 삶의 주인이듯이, 자연도 자기의 주인으로서 그 자신의 모습대로 존속하고 살아갈 권리가 있다. ​
인간은 자연을 약탈, 훼손, 남용, 오염시켜 기후위기를 야기하고 있으며,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지구공동체의 생명을 위험에 빠뜨리고 있다. 인간과 자연이 연기적 관계임을 망각하고, 인간이 자연을 지배, 통제할 수 있다는 인간중심주의적 오만과 이분법적 세계관에 바탕한 사회 제도와 시스템에서 비롯된 것이다.
기후위기 등 지구공동체를 위협하는 구조와 체제, 문화, 법령 등의 변화가 절실히 요구되고 있으며, 이를 위해서는 자연의 고유한 존재 목적과 내재적 가치를 인정하고, 자연 또한 자신을 지키고 보호할 권리를 가진 주체임을 받아들이는 과감한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
인간은 자연이 존재하는 범위 내에서만 살아갈 수 있음을 깨닫고, 지구상의 모든 존재의 평안과 안락을 위해 다음과 같이 선언하며, 이의 실현을 위해 과감하고 적극적인 행동에 나설 것을 천명한다.


선언이란 단어의 의미는 널리 내용을 알린다는 점에 있지만, 우리는 ‘나의 다짐’이라는 쪽에 더 무게를 둔다. 선언은 나아가 새로운 세상, 전환을 향한 전망을 제시하며, 전망 실현의 자기 다짐과 강력한 권고의 필요성에 기인한다. 지금은 생태문명으로의 전환의 시대다. 자생불은 올 1년 동안 자연의 권리 선언의 내용을 더 가다듬고 참가자를 확대하는 일에 힘을 기울일 것이다. 아울러 선언은 한계가 뚜렷하다. 법적인 강제력이 없다. 선언을 행한 당사자들이 선언을 삶 속에서 실현하지 않으면 공허하다. 그러므로 우리의 선언은 다짐이 될 수밖에 없다.
이날 모임에서는 선언과 함께 ‘생태위기 극복과 자연의 권리 구현을 위한 불교적 과제’를 제안했는데, 참가자들의 다양한 의견을 모으니 아래와 같이 15개로 정리되었다. 이 또한 여기에 옮겨 많은 불자들에게 전하려 한다.


1. 소욕지족의 생활양식을 널리 확산한다.
2. 생명존중의 가치를 불자를 넘어 사회적으로 가치의 중심에 놓게 한다.
3. 화쟁사상을 바탕으로 사회적 갈등 해결의 가이드를 제시한다.
4. 일체중생(유정·무정) 실유불성悉有佛性 사상으로 자연과 비자연의 경계를 허무는 일을 한      다.
5. 소비주의와 성장주의가 기후위기와 생태계 파괴의 원인임을 알리고 소비를 줄이는 운동을     한다.
6. 자연과 자연권에 대한 대중적인 공감대를 만들어 가기 위한 다양한 생태담론을 생산한다.
7. 환경오계 등 새로운 생태적 시민윤리운동을 전개하고, 불자들의 신행활동에 접목한다.
8. 비인간존재와 미래세대의 권리를 포함하는 생태민주주의를 알리고 실천한다.
9. 자연과 더불어 함께 살아가기 위한 구체적인 실천 지침을 만든다.
10. 자연과 자연의 권리 보장을 인정하는 선언을 하고 실천을 위해 동행한다.
11. 미래세대와 자연의 권리를 보장하고, 이를 대변하는 부처(예: 미래자연부)나 기구(예: 만물      위원회)를 둘 수 있도록 헌법 개정과 법률 제정을 추진한다.
12. 채식운동, 발우공양 사회화 등 새로운 식문화운동을 대중화한다.
13. 불교의 생태전통을 찾아 확산하고, 생태 중심의 불교교리서를 제작한다.
14. 기후위기 시대 새로운 인간상(호모 인드라네티우스 Homo Indranetius)을 구현하기 위해      녹색불자 교육 및 실천 활동을 전개한다.


사람의 세상은 선한 행위를 필요로 한다. 가만히 두면 나빠지는 경향이 있다. 욕망의 힘이 세기 때문이다. 욕망은 채워지기 전에는 쉽게 포기하지 않으며, 충족되지 않는다. 갈애渴愛라고 표현했다. 갈증을 해소하려 소금물을 마시는 것과 같다. 그래서 불교에서는 계戒를 설設했다. 선언은 계와 다르지 않다. 내가 속한 작은 모임의 몸짓이 많은 불자들에게 가 닿기를 바라며 두 손 모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