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우頂宇 스님
본지 발행인 | 구룡사 회주
오늘은 윤달2월 초하루이고 어제는 일년 24절기 중 춘분春分이었습니다.
춘하추동春夏秋冬 사시절서四時節序 가운데 하지夏至는 낮의 길이가 가장 길고 동지冬至는 밤이 가장 긴데, 춘분春分과 추분秋分은 지구가 공전하는 태양계의 거리에서 낮과 밤의 길이가 같은 날이기도 합니다.
그래서인지 해가 많이 길어 진 것을 겨울보다 긴 밝음으로 느낄 수 있습니다.
하루하루는 불과 몇 분씩 길어져 가고 있을 뿐인데도 한 달이 지나고 동지로부터 석 달이 되니 이렇게 낮의 길이가 한참 길어진 것을 느끼며 알게 됩니다.
지구는 1년이 365일에 24절기가 맞물려 있는데, 양력과 음력은 조금씩 벌어진 간격을 양력으로는 4년마다 2월 달에 윤閏달을 두고 음력은 3년마다 윤달을 두어 그 간극을 맞춰가며 일 년을 조화롭게 이어가게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윤달은 더 있는 달이라 해서 공달, 덤 달, 여벌 달이라고도 합니다.
『화엄경華嚴經』 「십지품十地品」의 제9 선혜지善慧地 역바라밀다力波羅密多 수행법을 통해서 드러나는 경계에 대해서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보살이 제8 부동지不動地에서 부처님께서 큰 신통력을 나타내시어 시방의 모든 국토를 진동하시니 한량없는 억천만 부사의不思議한 경계가 드러나고, 일체를 알고 보는 가장 높은 부처님께서 몸으로 큰 광명을 널리 놓아서 한량없는 모든 국토를 밝게 비추며 중생들로 하여금 안락함을 얻게 한다.”
부처님께서 시방국토十方國土를 진동한 다음 몸으로 광명을 놓아, 한량이 없는 모든 국토를 밝게 비추고 중생들로 하여금 안락함을 얻게 하신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열반하셨을 적에 불경佛經과 불화佛畫에 아난존자阿難尊者 등, 제자들은 슬피 눈물을 흘리고 있었지만, 천상에서는 부처님이 오신다고 좋아서 춤추고 악기를 연주하는 모습으로 그려진 것처럼, 20년 전 월하 노스님께서 열반하셔서 다비식을 치를 때 수많은 불자들과 함께 직접 목격한 광경입니다.
노스님께서 열반 하신 날은 음력 11월 11일이라 굉장히 날씨가 추웠습니다.
그런데 다비식 날은 날씨가 봄날처럼 포근하고 좋았으며 운동장에 다비식을 진행하고 있던 저녁 무렵, 통도사 쪽에서 불꽃놀이 하는 것처럼 광명의 불꽃이 일어나는 것을 많은 대중들과 함께 목도하며 환희심을 일으키기도 했습니다.
그 광명을 놓은 방광하는 장면을 촬영한 사진으로 많은 불자들이 가지고 있기도 하고 우리 절 구룡사에도 계단에 걸려있습니다.
경봉스님께서는 젊은 시절 극락암에서 정진하고 계실 때 통도사 밖 동네에서는 영축산에 산불이 났다고 소방차까지 출동하여 한밤중에 통도사까지 와보니 타는 데는 없는데, 환한 불빛이 경봉 노스님이 정진하고 계시던 극락암 쪽에서 비추더라는 것입니다. 낮에는 햇빛이 강해서 하늘에 별빛이 보이지 않지만, 별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중생들도 지혜 광명의 빛을 가지고 있습니다. 낮에는 하늘에 별빛이 보이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 않을 뿐입니다.
“여러 종류의 음악을 한꺼번에 연주하여 가지각색 곡조가 각각 다르나 모두 다 부처님의 위 신력과 묘한 음성을 내어서 찬탄하도다. 고요하고 부드럽고 때 없는 이들 들어가는 지위를 따라 잘 닦아 익히니 마음이 허공과 같아서 시방에 나아가서 부처님 도법을 널리 설하여 중생을 깨닫게 하도다.”
신라의 원효 스님도 『금강삼매론金剛三昧論』에서, “있다고 할까 아니 한결같은 목숨이 텅 비어 있고, 없다고 할까 아니 만물이 다 여기로부터 나오네. 그것은 광활한 것이다. 대 허공과 같이 사私가 없는 것이다. 그것은 평등한 것이다. 큰 바다와 같이 지극히 공평한 것이다. 그것을 일컬어 도리 아닌 지극한 도리라 하며 그것을 일컬어 긍정 아닌 대 긍정이라 하는 것이다. 그것을 목격한 대장부가 아니고서야 누가 언설을 넘어선 대승을 논하고 사려가 끊긴 대승에 깊은 믿음을 일으키게 할 수 있으랴.”하셨습니다.
이처럼 깊고 깊은 심오한 이치를 어떻게 드러내서 일으키게 할 수 있을지 걱정하고 의심할 일은 아니라는 가르침입니다. 달은 하나이지만 여러 세간에 걸쳐 모두 비추듯이 음성이나 생각이 없지만, 골짜기에 메아리가 울려 퍼지는 것과 같다는 가르침입니다. 그러니, 만약 자비慈悲로 중생을 이익 되게 하기 좋아하거든 보살菩薩의 행할 일을 설하여 주고 만약 가장 수승한 지혜의 마음을 가진 이에게는 가장 높은 여래, 부처님의 법을 보여 주면 된다는 것입니다.
만약 자비심으로 중생들을 이익되게 하는 것을 좋아하는 보살이라면, 보시布施와 회향廻向과 육바라밀六波羅密과 십바라밀十波羅蜜과 사섭법四攝法과 사무량심四無量心 등 보살이 행할 일을 다 설해주면 됩니다. 중생을 위해서 보살행을 하는 것이 진정한 불교임을 가르쳐 주면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 다음 선혜지라 하는 것이 어느 경계인가 하는 것을 금강장보살金剛藏菩薩이 해탈월보살解脫月菩薩에게 말씀하는 대목이 나옵니다.
금강장보살이 해탈월보살에게 말하기를, “불자여, 보살마하살이 이와 같은 한량없는 지혜로 생각하며 관찰하고는 다시 더 수승한 적멸의 해탈을 구하며 다시 또 여래의 지혜를 닦으며 여래의 비밀한 법에 들어가며 부사의한 큰 지혜의 성품을 관찰하며 모든 다라니와 삼매의 문을 깨끗이 하며 광대한 신통을 갖추며 차별한 세계에 들어가며 힘과 두려움 없음과 함께 하지 않는 법을 닦으며 부처님을 따라 법문을 굴리며 크게 가엾이 여기는 본래의 원력을 버리지 아니하려는 보살이 제9지 선혜지에 들어가게 되었다.” 이런 말씀입니다.
10가지 행법 중에 먼저 세 가지 행법은 사실대로 아는 일인데, 선업善業은 안온하여 좋아할 만한 결과와 열반을 얻어 영구히 중생을 구제하는 업입니다.
그러나 악업惡業은 불선업不善業이라고도 하는데, 좋아할 만한 것이 못 되는 결과를 받게 되는 업입니다. 착하게 살면 천당天堂 가고 올바르게 살면 극락極樂에 갑니다. 기독교에서는 구경究竟이 천당이지만, 우리 불교에서의 천당은 육도六道중의 하나입니다. 지옥도地獄道, 아귀도餓鬼道, 축생도畜生道, 아수라도阿修羅道, 인간도人間道, 천상도天上道의 하나일 뿐입니다. 복진타락福盡墮落이라, 복이 다하면 떨어져 어디로 갈 것인지 모릅니다.
그래서 올바로 살아야 극락정토極樂淨土에 간다고 했습니다. “한 부처님 출연하시면 만 중생이 깨달음을 얻고 한 법당 이룩되면 곧 사바세계娑婆世界 안에 극락정토 이루어진다.” 무량수경의 가르침 입니다.
선업의 결과는 열반을 얻어 영구히 중생들을 구제하고자 하는 업이기 때문에 좋지만, 악업은 좋아할 만한 것이 못 되는 결과를 받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두려워하며 살 일도 아닙니다. 무기업無記業도 있기 때문입니다. 무기업은 두 가지에 속하지 아니해서 선과 악의 결과를 받지 않는 업입니다.
개미 한 마리가 지나가는데 일부러 가서 밟으면 악업입니다. 그런데 지나가다가 불식간에 밟혀 죽었다면 그것은 의지가 작용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기록되지 않는 무기업입니다. 그러니 매사를 너무 쩔쩔매며 살 일도 아닌 것입니다.
선과 악의 결과를 밟지 않는 것이 정업입니다. 유루有漏와 무루無漏와 세간世間과 출세간出世間과 유위有爲와 무위無爲의 법을 여실하게 행하되 정업淨業을 닦으려고 노력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살생殺生하지 아니하며 방생放生하고 남의 물건에 손대지 아니하고 어렵고 힘든 이에게 나눔을 주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가르침입니다.
얼마 전 열반하신 대만 불광산사의 성운 대사님이 이처럼 유루와 무루와 세간과 출세간과 유위와 무위의 법을 여실하게 행하되 정업을 닦아 평생 어렵고 힘든 이에게 나눔을 주는 삶을 살다 가신 이 시대의 큰 스승이셨습니다.
이시대의 모든 사람들에게 유언처럼 남기신 가르침을 전하며 법문을 마치려고 합니다.
“태어날 때 가지고 온 것도 없고 죽어서도 가지고 가지 못합니다.
제 일생을 돌아볼 때 인간 세상을 위해서 제가 무엇을 가져왔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인간 세상에 수많은 환희와 좋은 인연을 가지고 갑니다. 나에게 희사해 주고 지지해 주고 함께 동참해 주신 수많은 불자와 많은 도반들의 축복을 잊을 수 없으며 각골명심의 도움의 인연 역시 잊을 수 없습니다.
내가 일생으로 받아왔던 부처님 은혜와 호의가 더 할 수 없게 방대하니 인간 세상에서 저는 아주 가치 있게 살았다고 생각합니다. 세세생생으로 저는 부처님을 위해서 헌신하고 기여하면서 대중에게 봉사하며 4가지 큰 은혜에 보답하고자 사무량심四無量心 자慈⋅비悲⋅희喜⋅사捨를 행하고자 합니다.”
우리 인간은 누구나 할 것 없이 공수래공수거空手來空手去입니다. 저는 자신 있게 여러분들에게 권할 수 있고 제 자신에게도 대단히 고마워하는 게 있습니다. 저는 아무것도 가지고 있는 게 없습니다. 그리고 그 무엇도 내 것이라는 애착을 가지고 집착하고 있는 물건도 없습니다. 그래서 인생을 정리하는 차원에서 스스로 다짐한 신조가 있습니다.
“살아 있으면서 죽은 것처럼 살아가자.”
죽고 나면 아무것도 가질 수 있는 것은 없습니다. 평생 살아오면서 지었던 업業덩어리를 제8아뢰야식第八阿賴耶識에 담아놓은 것 빼고는 없습니다. 그 제8아뢰야식에 담겨져 있는 업만이 다음 생으로 가지고 갈 수 있는데, 그것이 짐이 되어 나를 데리고 갈 뿐입니다. 그러니 살아생전에 죽은 것처럼, 내려놓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한 삶을 사는 불자가 되기를 바랍니다.